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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히스토리(데이비드 크리스천, 밥

도시는 왜 출현했는가?

농경 출현으로 세계 최초의 대규모 문명이 어떻게 시작했는가? 문명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잉여 농산물의 덕택으로 농경이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하고, 전문화할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사회에 새로운 역할이 출현했을 뿐만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계급질서가 생겨났다. 농경문명을 이해하기 위한 핵심적인 열쇠는 복잡성의 증가이다. 복잡성은 인구가 늘어남으로써 증가한 으로 보인다. 그러나 보다 큰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서 주어진 지역에서 더 많은 자원, 특히 더 많은 식량자원을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  1만년전과 5000년전 사이에 시작된 농경 덕분에 인류의 인구는 500만명의 10배인 5000만 명으로 증가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수렵채집자로서 살고 있었고, 아마도 5000년전부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농민이 되어 살았을 것이다. 약 6000년전부터 어떤 공동체는 가축화된 동물을 활용하는 보다 생산성 높은 방식을 찾기 시작했다. 동물의 가죽이나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도살하는 방식 대신 가축을 살려두면서, 그들이 만들어낼 수 있는 생산물, 즉 가축의 가죽, 우유 혹은 짐을 끄는 힘을 아용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진정 에너지 혁명이었다.

 

인간은 75와트의 힘밖에 운반하지 못하지만, 말은 거의 10배를 운반할 수 있다. 쟁기를 끌기 위해 가축 힘을 이용함으로써,  어떤 공동체들은 그야말로 사람의 힘으로 경작할 수 없었던 토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더 생산성을 높이는 혁신은 관개시설이었다. 농경기술이 갈수록 복잡해지고 더욱 생산성이 높아지면서 결국 훨씬 인구밀도가 높고 더 복잡한 사회가 등장했다. 우리는 이 사회를 농경문명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변화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처음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동일한 시기에 나일강 유역을 따라 촌락이 확산되고, 농경이 더욱 높은 생산성을 가지게 되면서 마침내 처음 으로 대규모의 촌락, 그리고 그 후에는 도시가 나타났다. 5000년 전부터 메소포타미아 남부에서 '수메르' 라고 부르는 지역에 최초의 진정한 도시가 출현했다. 이 도시 인구들은 최대 5만명 정도였다.  도시에는 사원과 궁이 있었고 복잡한 관개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데, 그 지도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약 3500년전에 진흙에 조각하여 제작된 것이다.

 

도시 출현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특히 농경 생산성이 높아짐에 따라 작은 양의 잉여 생산물이생겼다는 사실 때문이다. 전문가들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도공과 상인, 성직자와 군인이 출현했다. 5-6억전에 최초의 다세포 유기물의 출현과 더불어 발생했던 것과 거의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개인들은 상호간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일종의 조정 메커니즘이 필요하게 되었다. 도공은 상품을 팔기 위해 상인이 필요했고, 정부는 군인이 필요했다 분쟁을 해결할 법원이 필요했고,  거대한 관개체계를 유지할 사람이 필요했다. 모든 사람들은 더욱 더 복잡해지는 이 모든 관계를 관리하기 위한 사람이 필요했다. 권력을 조정해 줄 사람 들이 필요했다.  그러나 권력 중재자들이 더욱 강력해지고, 더 많은 자원을 갖게되면서 유급 집행자를 고용하기 시작했다. 인류는 진정한 국가와 진정한 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농민은 자연환경에서 생물권에서 자원을 추출한다. 그러나 무력을 사용하여 농민으로부터 자원을 착취하는 엘리트 집단이라는 새로운 계층이 농민계층 위에 올라섰다. 아주 강력해서 사회의 90%이상을 차지하는 대다수의 농민으로부터 자원을 착취하는 소규모의 사람들이 군림하게 되었다. 위계질서 밑바닥에는 소규모의 비천한 계급 혹은 노예계급이 있었다.

 

농경문명은 세계의 여러 지역에서 출현했다. 이들 문명들은 다른 언어, 다른 종교적 전통, 다른 예술적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모든 문명에는 거대한 도시가 있었다. 도시에는 사원, 궁궐 등 이른바 기념건축물이 있었고, 지배자가 있었고, 위계질서가 있었다. 과세제도와 군대가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지탱한 것은 엄청난 인구의 농민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주요 도시 밖에서 거주했다.  또한 농경 문명은 문자를 가지고 있었고, 문자는 집단학습을 가속화 했다. 문자는 권력자들이 자원을 지속적을 관리하는 과정에서 회계체계로부터 출현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문자의 진정한 분야인 문학과 역사를 만들어내었다.

 

파푸아뉴기니에서는 농경문명이 출현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재배되는 뿌리 작물이 저장될 수 없었기 때문 이다. 또 농경 잉여 농산물을 생산할만큼, 그리고 전문가 집단을 지탱할만큼 충분히 생산성이 높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약 4000년 전에 이르러 중국, 한국을 포함한 여러 아시아 지역에서 농경문명이 출현 했다. 약3000년전에 아시리아 제국과 같은 거대한 제국들이 나타났다.  중국과 이집트에서도 거대한 제국이 나타났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에 도착했던 500년 전에, 잉카와 아즈텍 제국은 굉장히 거대한 지역을 지배하고 있었다. 농경문명을 지탱했던 농경기술처럼 농경문명은 지난 4000년이 넘게 천천히 진화하고 확산되었으며, 더욱 발전하여 더 복잡해지고 더 많은 인구를 부양했다. 1000년전에 이르러 지구상의 대부분의 인류가 농경문명 안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농민이었을 것이다.  인류의 인구증가는 새로운 수준의 복잡성을 낳았고, 새로운 기술의 발명은 우주에 대한 이해를 계속 심화 시켰다. 여기서 '기술'이란 자원을 뽑아내는 능력의 향상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