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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우리의 恨, 돈

한에 울던 한국인 이제 욕망 때문에 운다. 한국에도 노숙자도 많고 무직자도 많다. 갑자기 병에 결리거나 가장이 파산해 집안 전체가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도 많다. 한끼 먹을거리를 걱정하는 이들도 우리 주변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러나 대부분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거나 스스로의 무능함을 자책하지, 한국이라는 열등한 나라에서 태어난 자체가 불행의 원천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드라마에나 현실에나 눈물짓고 울부짖는 불쌍하고, 가련한 주인공들이 있다. 드라마 속의 눈물의 대부분은 옛날 영화 ' 미워도 다시 한번' 같은 어쩔수 없는 운명으로 겪는 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대로 살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와 질투 때문인 경우가 많다.

 

드라마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자기 욕심을 죽이고, 구체적인 대상이나 숭고한 이념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들을 칭찬하는 설정은 거의 없다. 갈등과 불만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군가 절대적 권력을 행사해 모두를 숨죽이게 한다는 뜻이다. 또는 사회구성원들이 아예 미래에 대해 포기해 무력감과 냉소주의만 가득하다는 뜻일 수도 있다. 갈등이 많을수록 역설적으로 사회는 더 역동적이다. 인생을 열심히 살아야 분쟁도 생긴다. 누군가 시켜서 사는 가짜 인생은 결국 엇나가거나 중간에 포기하게 된다. 사실 정직함만 따지면 서너살 짜리 아이들이 일등이다. 다만 자신들의 욕망에 충실한 아이들은 대부분 거짓말을 못하고, 자신들의 행동 때문에 타인들이 불편해지거나 기분 상할수 있다는 판단력이 부족하다. 한을 안고, 억울하고, 불행하게 늙어간 어른들은 그런 자신들의 삶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너하고 싶은 대로 살아라'고 주입시켰고, 자식들은 어른들을 보면서 '저렇게는 살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우리는 흔히 통장잔고= 인생점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기를 당하거나 도둑 맞았을 때 화가 나는 것은 꼭 돈 때문이 아니다. 왜 그런 바보같은 선택을 했는지 우선 자신에게 화가나고, 자신을 우습게 여기고 속여 이익을 챙긴 상대방에 대한 분노가 사실은 더 크다. 돈은 우리가 생존하는데 필요한 도구지만, 심리적 에너지 상징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자갑이 든든하면, 사람들을 만나도 자신감이 생기고 저금 통장에 다만 돈이 얼마라도 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는 기분이 달라진다. 현실에서 강도, 절도, 사기 등을 당했을 때 직장을 잃거나 투자한 돈이 휴지조각이 되었을 때는 우울증이나 공황증상도 경험한다. 그 돈으로 꼭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진 현상을 자아에 대한 심각한 위험과 비슷하게 자각하기 때문이다. 재산이란 단순히 통장에 기록된 숫자가 아니라,  내 인생이 얼마나 성공적이었는지 또 내가 얼마나 잘났는지에 대한 증거로 여겨지기도 한다.

 

무슨 짓을 했어라도 내 핏줄은 자손만대 책임지겠다는 핏줄 지상주의도 돈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처럼 돈에 대한 집착은 열등감, 가족의 역동, 자존심의 상실 등 심리적으로 복잡한 측면이 있다. 돈이 없어 걱정이라며 가난을 호소하는 부호들도 많다. 큰 부자들은 큰 손들에게 사기를 당하고, 중산층들은 펀드와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반토막 나고, 아예 없는 사람들은 끼니꺼리가 없어 절도범이될 수 있다는 차이 뿐이다. 삶에 대한 고통은 돈이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돈이 많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갖고 있던 것을 빼앗겼다는 박탈감이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더 황량하게 만든다.  부자가 오히려 더 구두쇠이고,  가난한 사람들이 더 관대한 것은 돈을 빼앗기는 기분을 아무래도 부자가 더 많이 느끼는 탓일 수 있겠다.

 

정신이나 영성에 대한 관심이 물질에 대한 관심으로 대치된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욕을 온전히 배제하면서 자기실현을 한다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사지육신이 멀쩡한데도 험한 일을 하지 않겠다며, 부모도움으로 살아가는 젊은이들 또한 겉으로는 물욕이나 명예욕이 없어 보이지만 게으름의 노예가 되었다는 점에서 진정한 개성화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돈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자신이 입고 쓰는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이 일해야 하고, 또 물려받은 재산은 결코 떳떳하게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점에 대한 인식이 없다.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사람들 역시 돈 콤플렉스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결혼시장에서의 첫번째 조건이 배우자의 수입이라고 한다. 결혼은 현실이라는 조언은 낭만적인 기대 때문에 엉뚱한 판단을 하지 말라는 것이지, 사업계약하듯 조건만 따지라는 것은 아니다. 나는 식당에서 남기지 않을 만큼만 주문하기, 집 냉장고에서 음식 버리는 일 없기, 나만을 위한 자동차 굴리지 않기, 명품 브랜드 사지 않기, 값비싼 보석으로 치장하지 않기 등 나름대로 원칙을 세위 지키는데, 때로는 주변에서 궁상스럽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삶에 대한 나름대로의 원칙을 가지고 지키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삶에 대한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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