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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와 그 적들 (이나미 지음)

명품

재력가라고해서 필요 이상의 요구를 하는 환자들의 치료결과가 오히려 더 안좋게 되는 상황을 의사끼리 'VIP신드롬'이라 한다. 환자들이 의사를 자기 고용인쯤으로 여기고, 처방마저 마음대로 좌지우지 한다. 몇 해 전에 죽은 마이클 잭슨은 의사들을 상주시키고, 공연기간에는 병원수준의 의료기와 약을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어디가서 남보다 특별하게 대접 받으면 기분도 좋고 우쭐해진다. 누구나 무의식 속에는 왕자와 공주처럼 살고 싶은 퇴행 정서가 숨어 있다. 의학이란 합리적 과학정서에 기반을 둔 전문영역이기 때문에 전문가의 의견에 반해 떼쓰는 VIP환자에게 끌려 다니면, 오히려 마이클 잭슨처럼 잘못된 치료를 할 가능성이 높다. 돈만 쏟아붓는 사치스러운 의료보다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는 표준화된 치료가 훨씬 더 바람직하다. 너무 많은 사람이 돈은 적게 내면서 대우는 잘 받으려 한다면, 누군가는 손해를 보아야 하고, 그 손해는 결국 국민 전체의 몫이다.

 

거칠고 소박한 밥상과 생활의 가치를 다시 돌이켜보고, 화학약품과 기계의 남용이 아닌 환자의 면역성과 자연 치유력을 키워주고, 아프고 어려운 이웃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따뜻하고 공평하며, 합리적인 모델이 필요하다. 의료란 단순 서비스와 달리 인간의 복합적인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부분이 있다. 수술을 받기 위해 검사를 받기 위해 속옷까지 벗고, 수술대에 누워있는 환자들은 의료진 앞에 무방비로 노출된 무기력한 자신을 경험한다. 현실적으로 모든 의료진이 철저히 자기희생을 해가며 진료에 임할 수는 없고, 또 모든 환자가 의료진에게 존경과 신뢰를 보내지는 않는다. 얼마전까지는 의료진의 권위를 인정하는 분위기였으나 이제 사회가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의료진이나 환자 모두 혼란스러운 면도 있다.

 

권위가 사리진 의료진에 대한 환자와 사회의 바람직한 주문과 기대를 의사들은 지나친 희생으로 받아들이고 또 이 때문에 방어적이 될 수 밖 없는 의사들의 어려움을 환자나 사회는 이기심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응급실 등에서 의사가 행패부리는 환자에게 구타 당하거나 욕설을 당하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고, 의사들의 진료에 대한 고소고발도 증가하고, 의사들의 방어진료 즉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진단과 시술을 자꾸 하게 된다. 명품 열기라 하지만 한번도 사보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많다.  오히려 매스콤 등에서 명품 열기라고 은근히 간접광고를 부추기는 것이 더 문제다. 어떤 명품으로 알고 사용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어떤 계층에 속하는지 정체성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 물건이 아닌 정신적인 그 무엇으로는 상대방과 공통적인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정서적인 교감을 갖지 못한다. 모임에 가면 주로 돈이나 자녀들의 과외, 자기 자랑 등에 불과하다. 만남도 공허할 뿐이고, 그 공허함도 물건으로 채우려 한다.

 

물건에 대한 집착을 극복하려면 우선 자신의 생활을 전반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는 과시적인 모임에만 목숨을 걸지는 않는지 냉철하게 돌아보자. 참자기는 잃어버리고, 남들이 관찰하는 대상으로만 존재한다면 허무한 인생일 뿐이다.  삶은 꼭 무언가 대단한 것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침밥을 맛있게 먹을 때, 꽃을 예쁘게 장식했을 때, 지저분한 주변환경을 정리했을 때, 삶은 창조적으로 변한다. 사람은 창조성이 고갈되면 그것을 보상하기 위해 무언가 구매해 텅빈 마음을 채우려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신이 물건에 집착한다면 어떤 점이 그렇게 공허한지 짚어보아야 한다. 물질숭배의 병증이 가장 도드라지는 것이 결혼식이다. 일생에 한번 뿐이고, 하나 뿐인 자식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남부럽지 않게 남에게 모자라지 않게 호화로운 결혼식을 치르고 싶어한다.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남이 하는 것 다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서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한다옆집 아이가 무슨 분유와 기저귀를 쓰는지 부터 장례식까지 한국의 모든 의식은 자신이 원하는 선택이 아니라, 남의 눈에 비치는 것 때문에 경쟁하고 휘둘리다 빚더미에 앉기도 한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끝이 창대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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