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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나 한잔 들고가게!

사랑한다는 것은?

 

요즘 사랑은 참 흔하다. 세상살이가 불안하니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모든 생명이 위기를 느끼면 꽃을 피우려는 것 처럼. 하루에도 몇번씩

사랑을 확인하지 않으면 불안하다. 이때 사랑의 표현은 보호와 의존의

의미이다. 남성의 보호하고 싶은 마음과 여성의 의존하고 싶은 마음의

표현이다.

 

이메일이나, 휴대폰 메세지나, 인터넷을 통해 쉽게 사랑을 말한다.

그러니 사랑이 가볍고 쉽다. 사랑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느낌이나 말로 하는 것도 아니다. 사랑은 복합적인 감정이다.

고통과 시련 뒤에 그 결실로 사랑은 따라 온다. 그리고 사랑 뒤에는

고통과 시련이 숨어 있다.

 

사랑도 공부가 필요하다. 사랑은 오랜 세월 동안 배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사랑은 오랜 세월 동안 쌓아가는 것이다. 마음이 허전하다고,

뭔가 그립고, 아쉽다고 사랑하는게 아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좋은 점뿐 아니라, 잘못을 볼 아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크게 뜬 눈으로 헤아릴 줄

안다는 뜻이다.

 

사랑은 오랜 시간동안 상대를 공부하고, 상대가 관계하고 있는 것을

이해하고, 서서히 밀접하게 하나가 되어 가는 것이다. 하나이지만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샴쌍동이처럼, 어느 한쪽의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다. 둘이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많은 세월과 노력이 필요하다.

 

늙어가는 아내에게

 

내가 말했잖아.

정말, 정말, 사랑하는, 사랑하는,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은, '너, 나 사랑해?'

묻질 않어

그냥, 그래,

그냥살어 그냥 서로를 사는 게야.

 

말하지 않고, 확인하려 하지않고, 그냥 그대 눈에 낀 눈꼽을 훔치거나

그대 옷깃의 솔밥이 뜻어주고 싶게 유난히 커보이는 게야, 생각나?

 

지금으로부터 14년 전, 늦가을,

낡은 목조 적산 가옥이 많던 동네의 어둑어둑한 기슭,

높은 축대가 있었고, 흐린 가로등이 있었고

그너머 잎 내리는 잡목 숲이 있었고, 그대의 집, 대문 앞에선

이 세상에서 가장 쓸쓸한 바람이 불었고

 

머리카락보다 더 가벼운 젊음을 만나고 들어가는 그대는

내 어깨 위의 비듬을 털어주었지

그런거야, 서로를 오래오래 그냥, 보게 하는 거

 

그리고 내가 많이 아프던 날

그대가 와서, 참으로 하기 힘든, 그러나 속에서는

몇 날 밤을 잠 못 자고 단련시켰던 뜨거운 말,

'저도 형과 같이 그 병에 걸리고 싶어요.'

그대의 그 말은 에탐부톨과 스트롭트마이신을 한알한알 들어내고

적갈색의 빈 병을 환하게 했었지.

 

아, 그곳은 비어 있는 만큼 그대 마음이었지

너무나 벅차 그 말을 사용할 수 조차 없게 하는 그 사랑은

아픔을 낳게 하기보다는, 정신없이, 아픔을 함께 앓고 싶어하는 것임을

한밤, 약병을 쥐고 울어버린 나는 알았지

그래서, 그래서, 내가 살아나야 할 이유가 된 그대는, 차츰

내가 살아갈 미래와 교대되었고....

 

이제는 세월이라 불러도 될 기간을 우리는 함께 통과했다.

살았다는 말이 온갖 경력의 주름을 늘리는 일이듯

세월은 넥타이를 여며주는 그대 손끝에 역력하다.

 

이제 내가 할 일은 아침 머리맡에 떨어진 그대 머리카락을

침묻힌 손으로 짚어내는 일이 아니라

그대와 더불어, 최선을 다해 늙는 일이리라.

 

우리가 그렇게 잘 늙은 다음

힘없는 소리로, '임자, 우리 괜찮았지?'

라고 말할 수 있을 때, 그때나 가서

그대를 사랑한다는 말은 그때나 가서

할 수 있는 말일 거야.

 

--황지우님의 '늙어가는 아내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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