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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섹스 (알랭드 보통 지음,

포르노

인터넷 옹호자들이 줄기차게 지적하듯 인터넷은 최상의 학습도구로서 전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람들의 단편적인 지식들을 이어준다. 그 결과 끊임없이 활동하는 전 지구적 지성이 구축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전 세계적으로 순수문학의 서적 판매가 부진해진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토록 자극적인 것들과 경쟁하려면 어지간히 흥미롭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포르노 앞에선 고전을 면치못할 수 밖에 없다. 현대의 포르노물은 세세한 부분까지 사실적이다. 포르노물에 나오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시종일관 황홀한 섹스를 즐긴다는 점에서 말이다. 포르노와 관련된 전 인류의 시간 낭비는 가히 충격적이다. 포르노는 존엄, 행복, 도덕성과는 멀어지고 쾌락에 가까워진다. 하지만 이 독약은 뿌리치기가 쉽지 않다. 포르노 공세를 받으면 남자들의 정신세계는 무력해지고 만다. 또한 과학기술의 발달에 따른 심리적 결손을 메워주는데 포르노만큼 강력한 것도 없다. 중요한 일들을 팽개치고 포르노 사이트에서 몇 분 더 은거하고 싶어지는 열망 말이다. 세상에 그보다 더 강한 것도 없다. 과거에는 오락거리라고는 이웃과 잡담을 나누는 것 뿐이었다. 은은한 촛불 아래서 체호프의 소설에 빠져들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만 연결하면 얼마든지 그런 소설 이상의 흥미로운 것들을 접속할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체호프의 소설이 우리의 관심과 흥미를 자극할 가능성이 얼마나 되겠는가?

 

17-18세기의 '좋은사회'란 시민들이 무엇이든 읽고 싶은 것을 읽고, 보고 싶은 것을 보며, 자신의 선택에 따라 어떤 신이든 숭배할 수 있도록 간섭받지 않는 사회라는 이상이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에는 한계가 없다고 여겼다. 개인의 자유에 대한 기본원칙 중에는 존 스튜어트 밀이 자유론에서 '자유란 남들의 자유를 빼앗거나 남들의 자유실현을 방해하려 들지 않는 한, 우리 마음대로 우리의 이익을 추구하는 자유다'라고 했다. 우리의 신체나 정신, 영혼의 건강을 지키는데 타당한 적임자는 바로 각각의 개인 자신이다현대 민주주의에서 가장 특별하고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논의할 때 우리는 '자유'를 꼽는다. 남의 삶에 간섭하거나, 내 삶을 간섭당하는 것은 불행을 초래할 위험이 크므로, 그런 위험을 무릅쓰느니 자신의 구제는 각자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편이 차라리 낫다. 현대의 자유주의 철학이 발전하게된 주된 계기가 종교 교리에 대한 반발에서 시작되었으니 어쩌면 모순되는 게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초지일관 주장해온 것은 자신들의 옳고 그름에 대한 아주 확실한 판단력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사람들에게 가치체계를 강요할 도덕적 의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인간은 격정적이거나 무분별할 때가 많고, 충동적 호르몬과 욕망에 시달리다 금세 판단력이 흐려지기도 한다. 이런 취악성은 인본주의적 자아상에 대한 모욕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릇된 상황에 노출되면 치명적인 길로 내몰릴지도 모른다. 해로운 독소로 인해, 도덕적으로 잘못된 방향으로 갈수도 있고, 악의적 광고로 인해 가치관에 혼란이 빚어질 수도 있다. 독단적이고 압제적인 권위에 모든 자유를 양도하지 않는 수준에서 이루어 져야겠지만, 가끔은 상황에 따라 우리의 권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제한 조치를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구속없는 자유는 역설적으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릴 수도 있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이점을 깨달아야 한다. 성적 격정에 휩싸여 논리적 자아를 완전히 잃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만이, 현실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사람만이 가능할 것이다. 대체로 성욕의 힘에 휘둘리며 살아온 사람들 특히 인터넷 포르노를 경험하면서, 이성적인 중요한 것들을 미루어온 사람들, 섹스 장면을 눈이 아프도록 보고나면, 인터넷 시스템을 끝장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포르노는 술이나 마약과 비슷하다.

 

우리의 인생에는 삶을 제대로 이끌어가려면 반드시 겪어야만 하는 여러가지 고통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견딜수 있는 능력을 키우면서 살아간다. 하지만 포르노는 그런 능력을 갉아먹는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막연한 불안과 권태 같은 모호한 기분을 견딜수 있는 능력을 없앤다. 우 리가 살면서 느끼는 불안감은 뭔가 잘못되었으니 주의를 기울여 끈기있게 해석해내야 하는 신호다. 지금껏 발명된 가장 강력한 오락거리 포르노에 빠져있을 때, 그 해석의 과정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인터넷 전체가 포르노나 다름없다. 우리는 그러한 자극에 저항할 수 있는 선천적인 능력이 없는데 인터넷은 그런 자극을 끊임없이 보낸다. 우리의 머릿속에는 권태가 비집고 들어갈 자리가 없고 권태에 대한 인내심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목욕할 때나 장거리 기차여행을 할 때 즐길수 있는 창의적인 태야말로 좋은 아이디어를 낳는데 꼭 필요하다. 인터넷 포르노가 맹렬한 흡인력을 발휘해 의식으로  들어간 우리를 도로 끄집어 낸다. 그렇게 자신으로부터 퇴출되어 멀어지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의 현재와 미래를 망치기 가장 쉬운 상태가 된다.

 

섹스에는 분명히 중요한 것들의 우선 순위를 외면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종교는 섹스 자체를 잠재적 위험성을 가진 경계해야할 대상으로 보고 있다. 세속적인 세상은 검열에 대한 저항의식이 투철하고, 인류의 성숙함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다. 이슬람교가 여성들에게 히잡과 부르카 착용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왜 비닌하지 않는 것일까? 여자들에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조리 가려야 한다고 강요하는 취지는 남자들의 마음이 아지러워 알라신에 집중하지 못할까 봐서 그렇단다. 세속사회는 비키니나 성적 도발을 거북해 하지 않는다. 가장 큰 이유는 성적관심과 매력이 사람들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온라인상에서 요염한 여자들의 영상을 보지만 금세 별일 없었던 것처럼 하던 일을 계속한다. 종교계는 때때로 고상한 채 한다고 조롱받지만, 욕망의 마력을 적극적으로 의식했기 때문에 경고하는 것이다. 인류의 정신건강을 위해서나 질서와 사랑이 충만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억압은 필요하다. 우리는 일을 해야 하고 배우자에게 충실해야 하고, 자식을 키워야 하고, 자기탐구도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분별력 있고 도덕적이며, 선량하고 야심 있는 사람에게 포르노는 그다지 큰 문제거리는 아니다. 포르노에 푹 빠져 그가 평소에 가진 관심사들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하지만 요즘 나오는 포르노물은 분별 없는 욕망에 자신을 송두리째 내주느라 윤리, 미의식, 지성을 뒷전으로 내팽개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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