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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섹스 (알랭드 보통 지음,

외도

외도는 유혹적이고 짜릿하다. 잘못된 행동이라고 욕부터 하기전에, 외도가 적어도 한동안은 굉장한 짜릿함을 경험하게 해준다는 점을 인정해야한다. 활기가 넘치는 젊고 매력적인 여성을 앞에 두고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남자라면, 오히려 그의 정신상태를 더 걱정해야 하는게 아닌가? 나이가 들어 가끔씩 죽음을 의식하게 되면, 내 인생에 언제 다시 이런 기회가 찾아올까? 하는 초조함 때문에 대범해진다. 과거에는 삶이 무한대로 펼쳐져 있을 것 같아서 수줍음과 부끄러움이라는 사치를 부를 여유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탈선에 대한 욕망이 전혀 없다는 것은, 오히려 이치에 어긋나고, 부자연스러운 반응이다. 바람을 피우는 것에 단 한번도 구미가 당겨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그를 과연 믿어도 될까? 외도는 배신당한 사람에게는 격분해도 되는 충분한 근거로 인정받는 한편, 외도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몹쓸짓 했으니 죽을 만큼 미안해야 한다고 간주된다. 외도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통상적으로 일어나는 욕망이라면그것이 죽을 만큼 미안해야 할까? 배신당한 배우자들은 대개 이런 서글프고도 충격적인 사실을 너른 아량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게다가 주위 사람들은 그저 배신자는 비난받아야 마땅하다고 부추긴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모든 욕구에 대해 성적으로, 감정적으로 평생의 해결사가 되어줄 수 있을까?  우리가 사랑, 섹스, 가족에 대해 품는 모든 열망이 동일한 한 사람에게만 속해야 한다는 생각이다과거의 어떤 사회에서도, 지금의 우리 사회만큼 결혼제도를 엄중하게 여기거나, 희망적으로 바라보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무지막지한 기대가 없으니, 당연히 그로 인해 엄청난 좌절에 빠지는 일도 없었다과거의 사람들은 사랑, 섹스, 가족에 대한 욕구를 따로따로 구별지을 만큼 현명했다. 서정시인들의 낭만과 자유사상가들의 성적 열정을 조화시킨 관계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 후 결과적으로 우리의 가장 간절한 욕구들이 단 한 사람의의 도움만으로 한꺼번에 해결될 수 있다는 놀라운 개념이 세상 사람들에게 강요 되기에 이르렀다.

 

부르주아계층의 변호사와 상인들은 여유 자금이 마련되면서 야심이 생기고, 배우자감에 대한 눈높이가 높아졌다.  18세기중반까지만 해도 귀족들은 사랑과 섹스, 가족은 각 독립된 것으로 여겼다. 힘과 지위가 있었으므로 가족들의 마음이야 어떻든 무관심 할수 있는 배짱이 있었다. 하지만 부르주아는 에로틱하고, 감성적인 관계를 마음껏 누릴만큼 자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단 한명의 파트너와 법적으로 평생 지속되는 관계를 맺는데 시간과 노력을 쏟게 된 것이다. 거기서 충족감을 얻어려는 생각은 감정적 욕구와 현실적 구속 사이애 놓인 그들의 특유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우리는 안정적인 가정에 대한 소망과 배우자에 대한 진실한 감정이 조화롭게 공존하기 바란다. 부르조아의 이상은 현실에서 절대 존재할 수 없는 환상은 아니다. 로맨틱하고 에로틱하며, 안정된 가정이라는 세가지 기준이 완벽하게 충족되어, 외도 따위로 골치 아플 염려가 없는 결혼이 있기도 하다. 가능하긴 하지만 아주 들물어서 우리의 애간장을 녹인다.

 

결혼을 사랑, 섹스, 가족이라는 우리의 모든 희망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으로 보는 것이 순진한 착각이라면, 그 해결책은 무엇일까?사실은 비밀스러운 모험을 통해 어떤 식으로든 결혼생활의 결핍을 채우려는 시도한다. 결혼생활을 충실히 지키는 동시에 인생에서 가장 강렬하고, 절박한 감정적 쾌락의 기회를 거머쥐는 것이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다. 두 마리 토끼는 언제나 정반대 뛰어간다. 결혼생활에서 우리가 원하는 세가지 요소 즉 사랑, 섹스, 가족은 서로에게 잔인한 영향력과 피해를 입히는 관계다.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사람과의 원만한 성관계를 방해하기도 한다. 사랑하지 않지만, 육체적으로 끌리는 누군가와 몰래 만나는 것은, 사랑하지만 더 이상 흥분이 느껴지지 않는 배우자와의 관계를 위태롭게 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자식을 갖는 것은 사랑과 섹스 양쪽 모두에 위협적인 요소가 될 수 있고, 그렇다고  해서 부부관계나 성적스릴에 몰입하기 위해 아이들을 방치한다면, 가족이 위태로워지고 자식의 건강과 정신안정 역시 크나큰 위헙을 받게 된다.

 

바람을 피우고 다니면 배우자의 사랑과 아이들의 정신건강이 위태로워질 우려가 따른다. 그렇다고 한눈 팔 줄 모르고 너무 고지식하게 살면, 삶의 활기가 사라지고 새로운 관계에서 맛볼 수 잇는 흥분의 기회를 놓치게 된다. 몰래 외도를 하면 스스로의 내면은 점점 피폐해지고,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사랑받는 능력이 위축되기 쉽다. 아이들에게 사랑을 다 받친다면 어떻게 될까? 아이가 다 자란 후 자기 삶을 살기 위해 떠나버릴 때 남는 것은 비참함과 외로움 뿐이다. 그렇다고 부부 로맨스를 위해 아이를 방치할 수도 없다. 결혼식에서 흔한 서약보다 다음과 같은 비판적인 경고가 필요할 것 같다. ‘당신에게, 오직 당신에게만 실망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로인한 불만도 당신에게만 털어놓고, 이 사람 저 사람과 바람을 피우며 돈후안 같은 호색한으로 살면서 여기저기 불만을 퍼뜨리고 살지 않겠습니다. ’

 

18세기 이후로 사랑을 바탕으로 한 결혼관이 확립되면서, 결혼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도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결혼을 하는 이유가 비교적 무미건조한 편이었다. 두 사람 모두 결혼적령기에 이르렀고 서로 얼굴을 보고 사는 것이 견딜만 하고, 상대의 부모님이나 이웃들과 별탈 없이 잘 지내고 싶고, 지켜야 할 재산도 좀 있고, 가정을 꾸리길 바라며 결혼을 결심했다. 반면, 부르조아의 새로운 철학은 결혼에 대해 단 한가지 이유만을 정당화 시켰다. 바로 깊은 사랑이다. 연인들끼리 애태우는 애절함, 볼 때마다 일어나는 육체적 흥분, 시를 읊어주고 싶은 마음,... 보수주의자들이 좋은 말 해주기는 이제 거짓말로 인식하게 되었는가 하면, 예의상 하는 겉치례 대신 본마음을 드러내는 좀 더 감정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온당한 결혼생활에 수반되어야 할 까다롭고, 엄격한 조건들이 새롭게 생겨나기도 했다. 뜨뜻미지근한 부부관계, 자식의 행복을 위해 서로를 참고 사는 것 등은 온전한 인간이 될 권리를 포기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젊은 시절에 대부분이 사랑에 바탕을 둔 결혼관을 가진다. 결혼관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와 문화적 편견을 감안하면, 그러지 않기란 힘들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의혹이 생긴다. 젊은 청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결혼관이 작가나 시인들이 꾸며낸 공상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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