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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섹스 (알랭드 보통 지음,

섹스에 대한 생각

누구나 성생활을 하지만, 우리는 거의 예외없이 자신이 어떤 식으로든 섹스에 대해 이상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섹스를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하지만 톡 까놓고 말해서 섹스에 관한 한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은 거의 없다. 대부분이 죄책감과 노이로제, 병적공포와 마음을 어지럽히는 욕망, 혐오 등에 시달리고 있다.  남들은 섹스에 대해 기분 좋고 온당하며, 강박적이지 않고 지속적이며, 안정된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자신은 왜 그렇지 못한가하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책망하고 고문한다. 전세계 어느 곳을 막론하고 수천년에 걸쳐 사람들은 섹스에 관해 쓸데없는 당혹감과 죄책감에 시달려왔다. 그러한 감정들은 종교적  편견과 사회관습의 사악한 결합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현대에 들어서면서 부터는 오히려 기대감과 자신감,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대의 사람들은 섹스가 기분을 좋게 하고, 신체적으로도 활력을 주는 유익한 유희로서  이를테면 테니스와  비슷한 정도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현대인의 삶에서 유발되는 과도한 스트레스를 풀기위해  누구나 가능한 한 자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천사는 부동의 사실 한가지를 홀가분히 외면하도록 도와준다.  우리가 섹스에 대한 욕망으로부터 쉽게 자유로워질 수 없다는 말이다.

 

인류가 수천년 동안 섹스로 인해 그토록 혼란스러워 했던 것도 그저 우연의 일치가 아니었다. 종교적 억압이라든가, 사회적 규율들,금기들이 본능을 억누르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들이었으니 당연히 그랬을 수밖에. 어쨋거나 그 본능이라는 것은 단순히 마음으로사라지길 바란다고 해서 사라지는게 아니다. 과거에 우리가 섹스 때문에 괴로워했던 이유는 섹스가 본질적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저항하기 힘들고, 이성을 잃게 하는 충동이기 때문이다. 섹스는 대체로 성취욕과 전혀 일치하지 않았으며, 문명사회에 속한 다른 것들과 제대로 통합 되기란 불가능하다섹스는 우리의 기대와 달리 사랑위에 얌전히 앉길 거부한다. 아무리 길들이려고 애써도 평생말썽을 일으킨다. 관계를 파탄으로 몰고 가거나, 생산성 향상에 지장을 주기도 한다.  또한 섹스는 때때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무, 가치관에 모순된다. 두 사람의 생물학과 심리학과 타이밍이 절묘하게 들어맞아 만족스런 섹스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드물다. 거의 평생 동안 섹스에 관해 갈망과 불안을 떠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어쩌면 우리의 숙명인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는 것만으로 우리의 문제가 말끔이 사라지길 기대하는 것은 금물이다. 책은 단지 서로의 고통을 확인 하게 한다. 물론 따뜻한 조언으로 위로를 주기도 한다.

 

우리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종족을 번식하도록 유전적으로 프로그래밍되어 있다.  그리고 섹스의 쾌감은 배우자와 함께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하는데 쏟아붓는 뼈빠지는 수고에 대한 보상으로서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실생활에 맞닥뜨리는 성경험과 단절되어 있다. 우리의 행동에 대한 전반적인 동기는 설명해 줄 수 있지만, 왜 누군가를 저녁 식사시간에 집으로 초대해서 어찌어찌 해서 서로 어찌할 수 없는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동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 어머니는 단지 우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따뜻한 눈길을 보낸다. 그러다 차츰 변화가 생긴다. 더 이상 젖꼭지를 물지 못하게 되고, 거의 모든 부위의 신체접촉을 꺼리게 된다. 부모님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점차 우리 존재 자체에 흐뭇해 하는  마음이 시들해지고, 우리가 뭔가를 잘해 열광해 준다. 이제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는 우리가 하는 것에 더 큰 관심을 갖는다. 주위 사람들에게도 모진 조언도 듣게된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자립을 얼마나 잘해내느냐에 따라 우리를 대하는 태도를 달리하는 것이다.

 

우리의 겉모습중에 남들에게 반감을 사거나 겁을 먹게 만드는 부분이 있다면 감춰야 하고, 옷과 헤어 스타일에 돈을 써가며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연출해야 한다. 어른이 되면서 천국에서 추방당한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 몸을 매개로 사랑받고 싶은 욕구, 다른사람 품에 안기고 싶은 욕구,  이 모든 본능적인 욕구로 인해 이상주의적 열망에 사로잡혀 키스하고 싶고,  같이 자고 싶은 누군가를끊임없이 찾는다.  평소 우리와 눈이 마주치는 사람들 대부분은 섹스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고, 그런 것을 그 당시는 생각조차 하지않는다.  그러다 키스의 순간이 찾아오면 다른 존재에게 자신을 열어주려 한다. 키스에서 느끼는 흥분의 상당부분은 육체적 행위의차원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오히려 상대방이 자신을 정말 좋아한다는 메시지를 깨달으면 흥분이 생겨난다. 

 

창세기를 보면 조물주가 아담과 이브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할 때 큰 벌을 내리는데, 그 벌 가운데 하나가 육체에 대한 수치심이다. 우리가 옷을 입는 것은 단지 비바람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맨살을 보얐다가 남들에게 혐오감을 일으킬까봐 두려워서 이기도 하다. 태어날부터 우리가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수치심은 사춘기부터 생겨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들의 눈에 좋게 비칠 모범적인 모습과 비교해 보면 남자의 욕망은 스스로도 용납하기 힘들다.  오르가즘에 달한 후에 기운이 빠지고, 죄책감에 휩싸인다. 침실에서 벌어지는 일은 각자가 내밀하게 간직해온 성적자아들이 마침내 죄스러운 고독에서 벗어나 서로를 받아들이는 행위인 셈이다.  침대 외에서 하려는 것은 문명사회에서 기대되는 것과는 분명 대립된다. 하지만 침대 위에서 그것은 더 이상 망측하거나, 괴상한 짓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현실에서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상황이 많다. 사회적 통제에서 벗어나는 경이로운 느낌을 제대로 느껴보기 위해서는 관습에 대해 각성해 봐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미친듯이 좋아할 때는 언제고,  시간이 가면 배은망덕하게 식상해져 버릴 위험이 다분한 오래된연인 사이에서 알몸을 아무렇지 않게 내보이는 경우 성적 자극이 떨어진다.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예의 바르게 행동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요받는다.  보통은 공격성, 무분별함, 탐욕, 경멸 우리의 내면에 도사린 의심의 여지없이 악한 본성을꾹 참고 억누르지 않으면 문제가 많은 사람으로 누구에게도 관심과 애정을 얻지 못한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호감을 얻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생각과 기분을 거리낌 없이 모조리 드러내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그런 까닭에 섹스를 통해 우리의 내밀한 자아를 드러내 보이고, 또 인정받게 되는 순간 우리는 성적 흥분을 느끼게 된다. 그때 우리에게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살다보면 일상에서 남들에게 냉대를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또한 상사의 악의적인 결정을 억지로 따라야 하는 경우도 많다.  연인 사이의 충성스러운 애착은 무례함의 강도가 높아질수록 더 강해지는 경향을 보인다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기준으로 볼 때,무례함은 놀랍고 경악스러운 것일수록 기분은 더 강하게 느껴진다. 섹스를 통해 얻는 쾌감은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의 존재를 발견하는 과정이다. 자신의 가치와 존재의 의미를 함께 나눌수 있는 또 다른 사람을 찾는 순간 느끼게 되는 흥분이다. 섹스는 특유의 다정함, 격렬함, 열정, 쾌락이 지배하는 반면, 삶의 일상적인 측면들은 반복, 지루함, 억압, 어려움, 냉담으로 가득하다. 이 둘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섹스후 허전하고 비참한 기분에 젖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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