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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섹스 (알랭드 보통 지음,

욕망의 결핍

연애하는 순간에는 이성이고 뭐고 없이 자제력을 몽땅 잃어버린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가슴이 눈 앞에 버젓이 보여도, 그냥 손가락이나 정강이를 보는 것처럼 특별히 시선이 가거나 훙분되지 않는다. 결국 성욕이란 단순히 옷을 벗고 있는 것과는 별로 상관없는 모양이다. 오히려 서로에 대한 흥분의 기대심리로 부터 생겨나는 것 같다. 오랜 연인이나 결혼한 부부사이에서는 상대방과 성관계를 가지려고 시도할 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이런저런 오해와 걱정거리 따위가 전혀 없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다. 이때도 한 쪽만 원한다고 성행위가 정당화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경우든 성생활이 수월해 지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에게 잠자리를 거부당할 때 심각한 상처를 입을 수 있다. 어쨋거나 술집에서 방금 만난 상대에게 매몰차게 거절당해봐야 그렇게 크게 당혹스럽거나 마음 아프지는 않다. 평생 함께 하기로한 약속한 사람에게 성관계를 거부당하면, 훨씬 더 묘하게 치욕스럽다. 섹스는 감정을 풍요롭게 해주는 순수한 유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라고 여겨도 되는 사회 아닌가?

 

우리는 일상과 성애의 영역사이를 원만하게 이동하지 못해 애를 먹는다. 결혼을 하고 나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양육해야 한다. 가정을 꾸린다는 것은 작은 기업체를 운영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만큼 관료적이고 절차적인 기술이 필요해진다. 섹스는 정반대의 덕목들 즉 자유로움, 상상력, 유희, 통제력 상실이 중요하다. 이러한 것은 가정생할을 수행하는데 부적당한 상태가 될 수도 있다. 섹스를 하려면 때로는 치욕스러워 보이는 성적욕구를 드러냄으로써 약자가 되어야 한다. 헌신적인 관계야말로 자신의 성적인 측면까지도 솔직하게 내보이기에 이상적인 관계일 것이라고 대체로 생각한다. 이것이 사랑에 대한 일반적인 통념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해다. 섹스 상대는 생전 처음 본 사람이 때로는 더 편할 수도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룻밤 즐길 사람을 따로 두고 싶어하는 욕망은 과연 남성만 가진 것일까?

 

남자들이 여성을 성모 마리아와 창녀로 나누는 것은 여자들이 남자를 착한 남자와 나쁜 남자로 나누는 것과 유사하다. 여자들은 겉으로는 따뜻하고 자상하며 대화가 통하는 착한 남자에게 끌린다고 말하면서도 성적으로는 나쁜 남자에게 더 끌릴 수도 있다. 창녀와 나쁜 남자의 공통점은 감정적으로 진실하지 못해 진지하게 교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프로이드는 '그들은 사랑하면 욕망이 없어졌고, 욕망을 느끼면 사랑할 수 없다고 했다'.  부부가 일부러 상대의 시선을 신경쓰며 부모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서로가 욕망의 그런 모습을 눈앞에서 보이지 않는다. 엄마, 아빠 역할을 하다보면 양쪽 배우자 모두의 무의식속에서 점점 허물어지기 십상이다. 오랜 파트너와의 관계가 근친상간 금기라는 곤경에 빠지게 될때 다른 파트너를 찾는게 탈출구가 될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상대가 아니다. 친밀한 상대를 새롭게 인식하는 것이다. 오래된 연인이나 침체된 성생활에 활력을 불어넣는 해결책은 파트너를 처음보는 사람처럼 볼줄 아는 것이다.

 

위대한 예술작품들은 우리가 이해한다고 여기던 것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어, 익숙한 겉모습 뒤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매력, 혹은 간과해 왔던 매력을 재발견하게 해준다. 화가는 화가 고유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인상적인 흥미를 끄는 일면을 부각시켜, 우리가 그 쪽에 흥미를 갖고 주목하도록 만든다. 오래된 관계를 무심함과 권태로부터 구제하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시선을 가질줄 알아야 한다.판에 박힌 습관과 일상 아래에 감추어진 좋은 점과 아름다운 모습을 찾아보자는 예기다. 부부사이의 성관계 횟수와 강도가 점차 시들해진 것은 뭔가 잘못되었다는 암시가 아니라, 단지 생물학적으로 필연적인 현상이다. 그런 현상은 언제까지나 행복할 수만은 없다는 사실을 거부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섹스와 결혼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다면 당연히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래된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타협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편이 더 지혜로운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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