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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일(로먼 크르즈니릭

직업선택

구체적이지 못한 일에 대한 조언은 공허하다. 일말의 불확실함도 느끼지 않은 채 직업을 선택하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진로를 정해놓고도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해 막연한 두려움에 빠진다. 우리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할때 어떤 사람들은 이왕 가기로 한 길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보라고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어떤 직업을 선택할지 결정하기가 이처럼 힘든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혼란의 근원부터 규명해야 한다.  어느 웹사이트에서 1만2천 개에 달하는 직업목록을 소개한다.  직업선택이 너무도 어려운 근본적인 세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직업 선택의 확대가 갈수록 크지고 있지만 우리는 심리적으로 그것에 대처할 능력이 갖춰져  있지 않다.  둘째 우리가 받은 교육, 특히 어린 시절에 선택한 과목, 교육과정이 훗날 직업의 선택를 결정해 버린다.  셋째 과학적 방법이라 신봉하는 적성검사는 직업을 찾는데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 인생의 상당부분은 우리를 둘러싼 강제적인 힘에 의해  만들어진다.

 

역사의 상당기간동안 직업을 정할때 사람들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일이라는 것은 자유선택이 아닌 운명과 필요의 성격을 띤 문제였다. 산업혁명이후 직업선택의 폭이 몰라보게 넓어졌다. 이는 엄청난 순기능을 했지만, 역기능도 없지 않았다. 직업선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고민한 사람으로  칼 마르크스를 꼽을수 있다.  그는 18세기와 19세기에 봉건제도가 무너지고, 임금노동이 등장 하면서부터 어느 정도 변화와 희망이 생겼다고 보았다. 노동자들이 저마다 팔고자 하는 어느 시장에서든 자신의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자유로운 노동력 판매자가 된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 자유가 허구라고 주장했다. 노동력의 잠재적인 구매처가 대부분 등골 휠 정도로 힘든 산업노동직이었기 때문이다. 극심한 빈곤과 탄광,  방직공장에서의 지옥같은 노동의 시대인 동시에,  공교육의 확대와 개인 재능에 개방적인 새로운 직업의 등장으로 직업선택의 혁명이 이루어진 시대이기도 하다.

 

직업선택에 관해 19세기에 일어난 주요 사건이 공공교육 확대라면, 20세기에는 일하는 여성의 숫자가 늘어난 것이다. 1955년에 피임약이 처음 개발된 이래 여성이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원치않는 임신이나 육아의 방해를 받지 않고, 직업의 기회를 가질수 있는 기회가 커졌다. 그러나 여성들이 획득한 자유는 남녀 모두에게 심각한 딜레마를 동시에 안겨주었다. 가정과 일의 균형을 맞추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서구국가에서 직업이 운명에서 선택으로 점차 변했고, 우리는 그 변화를 유산으로 물려받았다역사적으로 볼 때  오늘날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100년 전보다 훨씬 많은 기회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윗세대들이 볼 때 당신은 행운아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직업을 선택하고 성취감을 주는 일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고 힘들어 할까심리학자 배리 슈워츠는 현대인은 선택지가 너무 넓은 데다 거기에 능숙하게 대처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슈워츠에 따르면 선택의 역설은 첫째 너무 많은 선택권은 자유가 아닌 무기력을 초래한다. 그래서 많은 전화 회사가 있지만 쉽게 포기해 버리고,  이미 이용하고 있는 전화 회사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둘째 설령 무기력 상태를 극복하고 결정을 내린다해도 선택지가 적은 경우보다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 떨어진다. 역설의 주요 원인은 '언제나 더 나은 선택을 할수 있었는데' 라며 이미 내린 결정을 후회하고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직업선택은 자격 요건이나 경력에 따라 당신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가 제한되므로  무턱대고 가장 매력적인 조건을 선택할 수도 없다. 그러나 언제나 가능한 선택권은 있게 마련이다. 선택과잉에 대처하는 방법은 없는걸까?  슈워츠는 크게 두가지를 제안 한다. 첫째 선택지를 제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둘째 최적화보다 만족을 추구한다.  완벽한 청바지를 사려고하기보다 그 정도면  괜찮은 청바지를 사여한다는 뜻이다. 즉 기대를 낮춤으로서 선택 과잉이 일으키는 불안과 시간낭비를 상당수 피할수 있다.

 

직업을 구하는 건 쇼핑 차원과 다른 문제라고? 물론 그렇다. 선택지를 쉽게 제한 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일은 우리의 삶에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므로, 그 정도면 괜찮은 수준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일을 통해 나를 성장시키고 더 큰 성취감을 얻고 싶다면, 작은 만족에 안주하지 말고 보다 큰 만족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선택할 직업이 너무 많다는 것 말고 다른 원인은 없는 것일까?  자신이 정말 좋아하고 잘하는게 뭔지 미처 깨닫기도 전에 주입된 교육을 바탕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그 과거에 얽매인다는 사실이다. 학교교육 과정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평범하게 자란 사람이라면, 청소년 때 자신의 진로를 정하고, 이때 선택한 교육의 길은 이후 수십년 동안 직업생활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교육은 우리를 특정한 직업군에 가두어버린다. 자신의 성격이나 미래의 관심사를 올바르게 평가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래의 관심사를 안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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