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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일(로먼 크르즈니릭

삶의 성취감

당신의 일은 속박인가, 자유인가?

경제학자 E.F. 슈마허는 그의 저서 ‘굿 워크’에서 자유에의 갈망을 詩적으로 묘사한다.

 

나는 끝없는 경쟁에 내 삶을 바치고 싶지 않다.

나는 기계와 관료제의 노예가 되어 권태롭고 추악하게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바보나 로봇, 통근자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누군가의 일부로 살고 싶지 않다.

나는 내일을 하고 싶다. 나는 좀 더 소박하게 살고 싶다.

나는 가면이 아닌 진짜 인간을 상대하고 싶다.

내겐 사람, 자연, 아름답고 전일적인(하나의 전체로서 통일을 이루고 있는) 세상이 중요하다.

나는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인간이 되고 싶다.

 

사람들이 직업에 만족하지 못하는 대표적인 원인인 만성과로는 하루도 멈출 날이 없고, 하루 종일 스트레스와 복잡하고 긴 출퇴근 전쟁 때문에 녹초가 된 채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와서 하는 일이라곤 소파에 파묻혀 TV를 보는게 고작이다. 취미생활? 친구와의 약속? 가족간의 대화? 피곤이 이 모든 것을 잠식한다.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상사가 싫을 수도, 주말에도 업무문자가 날아들어 마음대로 쉬지 못하는게 불만스러울지 모른다. 치열한 경쟁에 휘말리고, 돈의 노예로 전락해 일과 생활의 균형이 무너졌다고 투덜거릴 수 있다. 이들이 바라는 것은 자유시간이 더 많아지고, 인간관계를 돌보고, 본연의 자신을 찾는 것이다. 애석하게도 경쟁에 치이는 현대인에게는 사랑해서 시작한 일을 계속 사랑하도록 해주는 여유가 없다. 일의 과중한 부담에 질식된 나머지 좋아했던 일을 증오하면서 떠나는 이들도 적지 않다. 당신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는가? 자유에는 당신도 알겠지만 대가가 필요하다.

 

'순간의 안전을 얻기 위해 자유를 포기하는 자는 자유도 안전도 누릴 자격이 없다.'  벤저민 프랭클린 말이다. 안전과 자유의 두가지 욕망을 조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경제가 불안정할 때일수록 사람들은 안전한 직업을 선호한다. 인간은 탯줄이 잘리는 순간부터 혼자라는 외로움 속으로 던져지고 정서적, 물질적 안전을 찾으려고 한다행복한 결혼생활을 영위하거나, 공동체의 일원임을 느낄 때 우리는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직장 또한 안전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공간이다. 이처럼 안전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에 속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개인의 자유를 찾으려는 열망 또는 강력하다. 역사적으로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려는 욕망은 사회적, 정서적 투쟁의 불씨로 작용했다. 똑같은 업무를 수행하는 단조로움과 속박에서 자유로우며,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일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고, 언제, 어떻게 일할지 결정할 자유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보스가 되고 싶어한다. 세상에는 자기만의 땅이나 가게, 사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가장 원하는 것이 자율성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영업이 주는 자유에는 확고한 책임감이 따라야 한다. 18세가 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은 '아나키즘이 개인의 자유와 사회적 협력을 위해 기업과 권위주의적인 정부기관의 영역밖으로 공간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율성을 꿈꾸는 사람의 내면에는 아나키스트가 잠재해 있다. 최근에 많은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자율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회사의 복지정책으로 적극 홍보한다.어떤 사람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대기업에서 일할 때처럼 안정감이 없어졌다고 속상해 하지말고, 그런 안정감 따위는 에초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직장인들도 하루아침에 해고 되거나, 병에 걸릴 수도 있다. 인생은 아무리 짧은 순간에도 우리 마음대로 흘러가리라는 보장이 없으니까? 

 

최근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시장이 요구하면, 누구든 소모품처럼 폐기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절감했다. 자유를 맛본 그들이기에 되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제는 자신의 직업을 스스로 창출하는 가장 근본적인 형태의 자기고용방식도 고려해 볼만하다. 자신에게 딱 맞는 맞춤 직업을 갖고 싶어하는 열망은 앞에서 지적한 대로 인간다운 삶과 개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르네상스의 이상에서 유래한다. 이제는 인생을 일에 맞추는 대신 인생에 맞는 일을 창출할 기회가 생겼다. 맞춤 작업은 말 그대로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 우선 순위에 따라 직접 설계한 직업이다. 본인 스스로 일하는 시간과 방식을 결정할 수 있다. 오늘날 스스로 직업을 만드는 현상은 빠른 속도로 보편화 되고 있다. 인터넷은 맞춤직업의 가능성에 혁명적 변화를 일으켰다. 언제든지 당신이 원하는 형태의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은 이미 조성되어 있다.

 

안전과 자유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자유를 선택하라고 하고 싶다. 인간의 본질은 새로운 경험에 있다. 방랑자이자 탐험가인 크리스토퍼 맥킨들리스는 자유로운 삶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속으로 들어갔다. 여전히 대다수의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면서도 안전과 순응, 보신주의에 길들어서 상황을 바꿔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정된 미래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험정신에 가장 해로운 것이다. 인간이 발전할수 있는 가능성을 막아버리기 때문이다. 우리는 직업안에서 자유와 자율성을 느끼는 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자유가 반드시 직업을 통해 추구해야 하는 것일까? 지금의 일에서 벗어나는 것이 당신이 진짜 원하는 것인가? 당신에게 다른 처방은 노동윤리를 버리고, 게으름의 철학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누구나 마음속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담아 둔채 억지로 일어나서 일터로 향한다.

 

왜 좋아하지도 않는 일을 힘들게 하면서 사는 것일까? 첫째 먹고살기 위해 당연히 치러야 하는 현대 노동에 나타나는 파우스트적 거래다. 둘째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종교적 노동윤리 때문에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그리고 일중독 때문일 수도 있다. 일을 하면서 행복해 하는 것도 아니면서 사서 고생을 하다니?  하루 12시간을 일한다고 모두 워크홀릭은 아니다. 사람에 활력을 주고 몰입하게 해주는 일을 한다는 뜻일 수도 있다. 우리 스스로 성실하게 일해야 한다는 노동윤리에 지나치게 결박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쯤 의심해 봐야 한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중요한 것은 직업적 성취감이 아니라 ‘삶의 성취감’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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