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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학교: 일(로먼 크르즈니릭

게으름의 미학

버트란트 러셀은 ‘게으름에 대한 찬양’에서 “세상에는 지나치게 많은 노동이 행해지고 있으며, 노동이 미덕이라는 믿음이 사회에 엄청난 폐해를 끼치고 있다” 라고 했다. 경제성장과 기술진보로 선진국 국민들은 대부분 하루 4시간만 일해도 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너무 많은 일을 한다는 것이다. 러셀은 현대인들이 여가의 미덕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했다. 여가란 수동적으로 보내는 심심풀이 시간이 아니라 인간의 잠재력을 넓혀주는 활동을 의미한다러셀은 또 “삶을 위해 필요한 만큼, 적당한 시간만큼 일하면 과학에 관심있는 사람은 과학실험에, 화가는 그림 그리기에 마음껏 빠져들 수 있다. 결과물이 얼마나 훌륭하든 그렇지 않든 굶을 염려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변호사로 성공한 어느 변호사는 변호사로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업무를 수행할 때 사기꾼이 된 것 같다고 했다. 변호사로 생활할 때 연극하는 기분 같다고 한다. 돈을 벌지는 못해도 취미로 시를 쓰는 것이 진짜 직업 같다고 했다. 변호사 일은 삶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순수의 영역에 두고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는지 모른다. 삶의 성취감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동호회 활동을 하는 일에 충분히 시간과 에너지를 쏟을수 있는 여유로운 직업을 찾는 것도 풍요로운 삶을 사는 한가지 방법이다. 의미있는 직업이 반드시 당신의 삶 전체를 차지하라는 법은 없다. 여가활동은 돈벌이가 되지 못하지만, 헌신적으로 추구한다면 또 다른 성취감을 안겨줄 수 있다. 직업이 반드시 수입이 많아야한다는 구시대적 사고에 너무 얽매이지 말자.

 

줄어든 수입을 기꺼이 즐기고, 가장 효과 있는 탈산업시대에 빠르게 퍼져나가는 소박한 삶을 지향 하는 것이 중요하다.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물질주의와 소비주의에 반대하고, 의미 있는 존재를 추구했던 전통을 따른다. 소박한 삶의 창시자인 조 도밍후에즈, ‘돈 사용 설명서’로 유명한 그는 월스트리트에서 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기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면서 죽어가는 것을 봤다고 했으며, 모두들 아침에 출근할 때보다 더 죽을 상이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수입이 늘어나도 어지간히 재정관리를 잘하지 않는 한은 돈은 늘어나는 만큼 쓰게 되어있다. 반대로 일을 줄여서 또는 마음이 원하는 일을 하느라 수입이 줄어들어도 그럭저럭 적응하며 살게 되어 있다. 실제로 가장 값비싼 소모품인 ‘시간’이 충분해지므로 돈 많던 시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다. 돈을 쓰지 않는 데서 얻는 즐거움은 상상 이상으로 크다. 몸을 직접 움직여서 끊임없이 뭔가를 한다. 돈이 없어 비싼 레스토랑에서 친구들을 쉽게 만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소박한 삶 덕분에 자신을 깊이 되돌아보고, 인생의 모든 것을 가치있게 여기게 된다.

 

직업을 유지하려면 그만큼 돈도 들어간다. 정장, 가방, 출퇴근비, 간식비, 스트레스를 날릴 수 있는 비용.... 가벼워진 비용으로  생활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열심히 일해 성공하라'는 이데오르기가 지배하는 현대사회에서 노동윤리를 외면하기는 쉽지 않다. 삶을 풍요롭게 가꿀 시간, 여유가 많은 직업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성취감을 주는 일을 찾는 여정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대다수는 일을 하면서 아이를 직접 돌봐야 한다. 자녀가 취학전이라면, 절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아이에게 할애해야 한다. 귀여운 아이와 산책길에서 즐겁게 웃는 장면은 TV 속에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계속 매달리고 징징대는 아이가 무슨 전생의 원수 같다. 하루 종일 일과 아이와 집안 일 사이에서 허둥대다 보면 나 자신을 위한 여유도 사라지고, 서로 집안 일을 떠밀다가 부부관계도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밖에서 성공하겠다는 야망도 점점 희미해지고, 일로써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부푼 꿈도 사라진다. 불안정한 꿈보다는 불만족한 현실에 익숙하니 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만만치 않은 현실이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일과 가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겠다고 나선다. 1980년대 이후 정서적으로 안정되고 공부도 잘하는 아이들, 행복한 결혼생활, 좋은 직업을 가진 슈퍼우먼이 선망의 대상이 되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의 도전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남녀를 불문하고 행복한 가정생활을 꾸리는 동시에 일에서도 만족할만한 성취를 거두는 것이 과연 가능하기는 할까?  남들은 멋있고 능력 있는 프로페셔널과 자상한 부모의 역할을 저리 잘하는데, 나만 왜 이 모양일까 싶어 자괴감이 드는가?  당신이 겪는 시간 부족과 심리적 긴장감은 대부분 사회와 문화적 요소가 가져온 결과다.  당신의 위기가 아니라 사회의 위기라는 말이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원인중 하나는 여성의 사회참여가 늘어난 데 비해, 가정생활에 대한 남성의 태도는 별로 바뀌지 않는데 있다저녁 식사준비에서부터 한밤중에 일어나 우는 아기를 달래는 일까지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많은 가사에 책임져야 한다.

 

심리학자 파울라 니콜슨이 최근에 발표한 연구결과는 남편이 육아를 똑같이 분담할 것이라는 초보 엄마들의 기대는 백에 아흔아홉은 착각이라는 사실에 드러나 있다. 아기가 태어나자마자 남성은 생계부양자라는 전통적인 역할로 물러난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성에게 대부분의 육아를 떠넘긴다. 가정을 위해 일을 조정해야 하는 쪽은 아빠가 아니라, 엄마라는 것이다. 미디어에서는 여성이 일과 가정, 남편, 자녀, 사회생활을 전부 아무렇지도 않게 척척 해결하는 동시에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여가시간에 외국어를 배운다거나 자기능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선동한다. 그 결과 평범한 여성은 불안과 우울증에 시달린다. 전통적인 두 부모 가정의 경우, 여성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자녀와 많은 시간을 보내려면 남편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가사 일 절반은 남편이 부담해야 한다. 여성이 일과 육아를 둘다 해내지 못하면, 그것은 개인적인 부족함 때문이 아니라, 남편이 집안 일에 손하나 까딱하지 않기 때문이다. 두 마리토끼를 잡으려면 남녀가 함께 맞섬으로써 현명한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아이가 생기면 남자도 예전과 같이 생활할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하며, 여성도 일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도맡아야 한다는 생각도 버려야 한다.

 

인생은 여러 단계로 이루어지고 각 단계마다 당신의 다른 모습이 표현된다. 일에 모든 것을 바쳐 집중하는 단계가 있고, 그 다음에는 육아에 헌신하는 단계를 거치며 또다시 일로 돌아가는 단계가 찾아온다. 성공한 직장인에서 전업주부로의 정체성 변화가 얼마나 힘든지 깨닫게 된다. 엄마라는 역할은 돈벌이도 되지 않고 승진 가능성도 없지 않은가? 전업으로 육아에 매진하는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보람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인생에 의미와 방향을 제시해주는 숭고한 일이라는 것이다. 부모라는 직업에는 돈이나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 인간관계의 보상이 따른다. 돈독한 부부 및 자녀 관계가 형성된다. 살다보면 안정된 직업이 꼭 필요할 때도 있다. 무조건 게으름의 혁명에 동참하라는 것도 아니다. 일에 온몸을 바쳐서 인생의 활력을 얻는 사람도 있다. 살다보면 타협이 불가피할 때도 있다. 개인적인 두려움과 사회적 관습, 고정 관념에서 자유로워져 모험심을 발휘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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