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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생활사 (차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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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봄 숲은 여리나 강하다. 손으로 뚝뚝 꺽이는 봄나물의 순은 연하지만 향은 강하다. 봄은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은 생명들에게 구원이다. 피어나는 신선한 잎과 꽃들은 당장 먹을 꺼리가 된다. 봄에 먹을 꺼리를 찾아 숲을 헤매는 것은 짐승만이 아니다. 숲 밖의 사람들에게도 봄은 간절한 계절이다.숲의 다양한 동물들이 식물을 먹이로 삼는다. 꽃잎, 꽃가루, 열매, 나뭇잎, 줄기 등 식물의 모든 조직이 초식동물에게 약탈의 대상이 된다. 적들을 피해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몸속에 적을 골탕먹일 독을 만들거나 가시 등의 장애물을 만든다. 그리고 식물은 조직의 일부가 뜯겨 나가도 전체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발달했다. 대마초는 적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리게 할 목적으로 강력한 환각 물질을 만든다. 담배는 그 독..
큰 나무들의 잎이 피어날 때 쯤이면 어김없이 노란 바람이 분다. 큰 나무의 잎은 피어날 때 잠깐 주저한다. 잎이 벌어지는가 싶은데 성장을 멈춘듯 정지하는 것이다. 그 사이 잎겨드랑이 에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자란다. 바로 큰 나무들의 꽃이다. 큰 나무들이 잎을 피워내는데 게으름을 피우는 것은 꽃에 대한 배려다. 꽃가루가 날라다닐 여백을 만드느라 나뭇잎은 더디 자라는 것이다. 식물들에게 꽃은 생식기관이다. 나무 마다 다른 꽃을 가지는 것은 분명한 종의 경계를 나타낸다. 꽃 밥이 봄볕에 여물면 작은 바람에도 터져버린다. 알알이 벌어진 틈새로 노란 가루가 쏟아지면서 공중으로 비상한다. 노란 바람은 짝을 만날 때까지 공중을 떠 돌다 일부는 웅덩이로, 일부는 땅으로, 일부는 생물의 몸속으로 들어간다. 신갈나무든 서..
나뭇가지에 자잘하게 흩어져 내리는 빛은 따스하고 부드럽다. 예초에 빛이 천지창조 제일의 영광 이었듯, 자연 제일의 축복이다. 만물은 봄 빛의 주문으로 깨어난다. 빛을 가리는 잎이 없어 온전하게 땅으로 내려온 빛은, 적당한 밝기의 길이와 파장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어 땅속의 씨앗들을 부추기기에 안성맞춤이다. 씨앗들은 빛이 전하는 메세지를 충분히 알아듣는다. 일어나라! 봄이 왔다. 빛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식물들은 내부에 빛의 모든 성질을 파악하는 감지기와 전달기, 그리고 반응기를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야 한다. 식물의 세포마다 연결된 통로들과 이를 통해 전달되는 이온의 움직임은 동물의 신경계를 연상시킨다. 식물의 모든 조직에는 개별적인 빛 탐지 센서가 들어 있다. 빛의 탐지와 관련된 수용체는 세포내에..
봄이 오면 봄이면 사람 마음이 설레이는 것은 상승 기류때문이다. 봄바람은 단순한 설렘이 아니다. 그러니 억누를 길이 없으며 억누를 이유도 없다. 사람도 자연이기에..... 봄이 오는 가장 구체적인 징조는 바로 땅이 녹는 것이다. 낙엽은 숲에서 열기를 가두는 보온재이다. 낙엽은 비스듬히 비쳐드는 겨울 빛을 내내 모았다가 땅을 데우고 있다. 수많은 생명들이 낙엽의 보호속에 겨울을 지낼 수 있다. 분해작업은 열을 방출하는 작업이다. 생물의 잔해들이 분해되면서 열이 발생하고, 이 열은 다시 땅의 물을 녹이는 것이다. 푸석푸석한 갈색 낙엽들이 검고 축축해지기 시작하면서 봄이 시작되는 것이다. 떡잎은 식물의 기관중에 가장 단순하며 기능적이다. 떡잎은 순전히 씨앗 속의 영양분으로 자라나, 진정한 잎이 나올 수 있도록 재빠르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