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숲은 여리나 강하다. 손으로 뚝뚝 꺽이는 봄나물의 순은 연하지만 향은 강하다. 봄은 겨울을 넘기고 살아남은 생명들에게 구원이다. 피어나는 신선한 잎과 꽃들은 당장 먹을 꺼리가 된다. 봄에 먹을 꺼리를 찾아 숲을 헤매는 것은 짐승만이 아니다. 숲 밖의 사람들에게도 봄은 간절한 계절이다.숲의 다양한 동물들이 식물을 먹이로 삼는다. 꽃잎, 꽃가루, 열매, 나뭇잎, 줄기 등 식물의 모든 조직이 초식동물에게 약탈의 대상이 된다. 적들을 피해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몸속에 적을 골탕먹일 독을 만들거나 가시 등의 장애물을 만든다. 그리고 식물은 조직의 일부가 뜯겨 나가도 전체 생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발달했다.
대마초는 적들에게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리게 할 목적으로 강력한 환각 물질을 만든다. 담배는 그 독성이 얼마나 위력적인지 주변의 다른 식물들에게도 경고의 효과를 발휘한다. 참나물에서, 곰취잎 에서 두릅의 어린 순에서, 발산되는 독특한 물질들은 애벌레로부터 자신을 지켜주고 미생물의 공격을 저지한다. 봄나물의 향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목적을 갖기에 더욱 신비로운 약성을 가지고 있다. 식물들이 자기 몸을 돌 볼 목적으로 만들어낸 쓰고 독한 맛이 사람들에게 약이 된다. 작은 공격자를 물리치기 위해 만든 독성물질이 사람의 미각을 자극하고,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는 약이 된다. 숲이 성장할 때 식물만이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애벌래들이 기어다닌다. 수 많은 숲의 식구들이 함께 성장한다. 동물들은 원칙적으로 식물의 생산물 근거지가 된다.
봄 숲의 연한 신록은 꽃만큼 아름답다. 나무마다 다르게 피어나는 신록을 살펴 보는 것은 다양한 꽃을 감상하는 것과 같은 기쁨을 준다. 나무들은 어린 싹에서부터 구분된다. 상수리 나무의 새순은 붉은 황금빛을 띠고, 갈참나무의 어린 잎에는 은백색의 부드러운 털이 나있고 떡갈나무 새순은 붉은 색이 돌고, 신록나무 새순은 황금 연두빛이다. 너무나 얇은 잎사귀는 나비 날개 같아서 햇빛이 투명하게 자신을 비춘다.신록으로 부드러운 숲에 소나무는 오히려 궁핍하고 메마르다. 묵은 가지 끝에 순은 촛대처럼 솟아 있고, 아직 새잎이 완전이 자라지 않은 소나무는 검은 녹색의 2년생 잎, 붉게 물든 노쇠한 3년생 잎으로 가장 칙칙한 빛을 띤다. 숲은 윤기나는 신록과 거뭇거뭇한 소나무로 얼룩진다.
건조한 겨울을 빠져나오느라 건조해진 바늘 낙엽은 그대로 쌓여, 활엽수 낙엽을 밟을 때의 푹신푹신한 느낌은 없고 미끄럽다. 공기와 물이 침투하기에 너무 치밀하다. 공기는 토양식물이 살아가는 필수적인 대기ㅇ;며, 물은 조직을 와해시키는 장치이다. 그런데 소나무 낙엽은 물리적으로 너무 견고한다. 설상가상으로 침엽 속에는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진 고약한 물질들이 그대로 들어 있다. 탄소원자의 고리들로 만들어진 이 화합물들은 동물들에게 소화장애를 일으킨다. 지렁이도 곰팡이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연히 소나무 낙엽은 분해가 더뎌지고 쌓이는 양은 늘어만 간다. 떨어진 바늘잎을 들추어 보면, 바늘 모양을 그대로 지닌 두터운 낙엽층을 획인할 수 있다. 사람이 긁어주거나 산불이 나지 않는 이상 흙으로 환원이 불가해 보인다. 이런 소나무 낙엽이 분해되는 데는 100년 이상이 걸린다. 참나무와 같은 낙엽수의 분해 기간 보다 3배 이상 길다. 나무는 숲의 지배를 받고 땅은 나무의 지배를 받는다. 땅의 운명은 어떤 나무가 자라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른 봄 바람은 무척 간지러웠다. 아직 가벼운 나무가지를 흔드는데는 그리 힘이 들지 않는다. 낭만작인 봄바람은 사막에서 불어오는 황사바람에 갇혀 버렸다. 숲이 있고 없음의 차이는 엄청난 재앙으로 연결된다. 현대 사회는 먼지를 흡수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유리, 시멘트, 대리석, 모든 것들이 먼지를 붙잡지 못한다. 공기중에 일어나는 자연스런 먼지들이 공중을 떠돌 수 밖에 없다. 숲은 먼지를 흡수한다. 숲에서는 먼지가 일어날 수 없다. 축축한 대기는 먼지를 입자 상태로 내버려 두지 않는다. 먼지는 물에 갇혀 흡착력을 갖고, 나뭇잎의 거친 표면, 솜털 줄기, 울퉁 불퉁한 껍질, 땅위의 낙엽, 모든 것들이 먼지를 붙잡는다.
포를러 나무의 솜탈 씨앗은 바람을 타고 풀풀 날아 다닌다. 물가에 자라는 버드나무 솜털 씨앗은 물에 떠내려 가면서 보금자리를 만든다. 봄날이 무르익어 갈 때 거리에 흩날리는 포를러 나무의 솜탈 씨앗은 때로 사람들을 괴롭힌다. 솜털 옷은 바람에 잘 날리, 뭔가에 잘 달라 붙고 물이 있는 곳에서는 물기를 빨아들여 씨앗을 싹 틔우는 데 도움을 준다. 숨가팠던 봄이 막바지에 이르면 숲은 일시적으로 고요속에 잠긴다. 앞으로 다가올 치열한 여름을 맞이하기에 앞서 잠깐 숨을 고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