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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내혁명( 하루야마 시게오)

뇌가 젊어야 장수한다.(1)

과식이나 편식, 화학물질의 영향 등이 특히 수명을 단축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또 철야를 하거나 밤낮을 거꾸로 사는 생활도 바이오 리듬을 깨뜨려 몸에 무리를 준다. 그리고 부족한 운동량이 몸을 녹슬게 하는 것이다. 뇌가 튼튼하고 근육만 어느 정도 붙어있다면,100살 이상 사는 것은 간단한 일이다. 뇌를 돌보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리 몸을 단련하고 식사에 신경을 써도 아무 소용이 없다. 건강과 장수를 위해 머리를 쓰라는 것은 플러스 발상을 습관화라는 것을 의미한다. 플러스 발상을 하면 뇌내 모르핀이 분비된다. 뇌내 모르핀이 분비되면 뇌세포가 활성화된다. 성인병은 그 원인의 80%가 누적된 스트레스, 즉 마음의 병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의학은 병이 난 국소만 치료하고, 가장 중요한 마음의 치료는 소홀하게 다루어 왔다. 암이 발생하면 환부를 잘라내거나 방사선으로 태워 버린다. 하지만 발병 원인을 파악해서 그 원인을 제거하지 않는 한 암이 재발할 것은 뻔하다. 이런 관행은 잘못된 의료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고치지 못하는 이유는, 현재의 의료제도가 이미 병이 난 환자만 상대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병을 치료하는 시설도 중요하지만,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이 휴식을 취할 시설도 필요하다. 장기별 의학은 병의 가지수 만큼 치료법도 많다. 게다가 그 치료법은 국소의 병을 치료하는 데만 전념하기 때문에 그 병은 낫지만, 또 다른 병을 유발시키는 경우도 많이 발생한다.

 

벌레나 세균이 자라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인간도 살수 없다. 인류는 농약을 사용해서 곤충이나 작은 동물은 물론 세균까지 모조리 죽여가면서 겉보기에만 훌륭하고, 먹음직스러운 야채나 과일을 재배하는 데 열중했다. 하지만 이것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다. 국소치료를 하는 약물이나 화학물질이 섞인 식품, 음료수 등이 이같은 공존을 깨뜨려서 문제를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성인병 대부분은 혈관 이상에서 시작된다. 당뇨병이나 통풍, 고혈압이나 동맥경화도 결국은 혈관이 막힘으로 인해 생기는 병이다. 그런데 혈관이 막히는 현상을 피하는 방법이 두가지다. 그중 하나는 근육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근육은 심장과 마찬가지로 피의 흐름을 원활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근육이 약해지면 피의 흐름이 그만큼 약해진다. 또 하나의 혈관을 막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지방의 섭취를 줄이는 일이다. 콜레스테롤이나 중성지방은 혈관이 쌓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연소 되면 큰 문제는 없으나, 지방은 근육 속에서만 연소되는 특성이 있다. 그러므로 지방을 연소시키기 위해서라도 근육을 단련시킬 필요가 있다.

 

나이 많은 사람이 과격한 운동을 하면 해를 입을 가능성이 많다. 따라서 나이가 들수록 운동량이 감소하는 현상은 자연의 섭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역시 동물이기 때문에 운동을 중단하면 안된다. 움직이지 못하면 인간은 동물과 마찬가지로 죽는다. 장수의 세번째 포인트는 뇌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활동은 뇌의 명령을 받는다. 면역체의 기능 역시 뇌의 통제를 받는다. 따라서 뇌를 쇠퇴시킨다는 것은 건강을 악화 시킨다는 것과 직결된다. 건강과 장수에 도움이 되는 뇌 활용법은 플러스 발상이다. 세계 어디를 가도 오래 사는 사람들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끙끙 앓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혹독한 상황에 처했다해도 잠자리에 들때는 미래의 꿈이나 희망 혹은 인생의 계획을 떠올리는 것이 좋다. 과거의 즐거운 추억을 되새기는 것도 좋다. 편안한 기분으로 잠들면 뇌세포가 활성화에 자극을 주고, 근육에도 좋은 자극을 주어 운동한 것과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심한 스트레스가 쌓여 그것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더라도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플러스 발상으로 바꾸려고 노력해야 한다.

 

세상에는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도 있지만 지나치게 건강해서 인생을 헛되이 낭비하는 사람도 적지않다. 이런 사람은 대개 돈 버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거나,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와 명예를 탐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것 자체는 크게 비난할 일이 아닐지 모른다. 직장인도 회사 일에만 열중하면 당시는 만족할지 모르나, 정년이 가까워지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걸까? '하는 회의를 품게 된다. 기분이 최고조일 때도 남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또 이와 반대로 구사일생을 했거나 실의의 밑바닥에 빠져있을 때, 혹은 큰 병을 얻어 죽음에 대한 체험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역경을 딛고 다시 일어서면 기존의 사고는 백팔십도 달라지게 된다. 건강이 지나치게 좋아서 인생을 헛되이 보내는 사람은 불을 환하게 밝히고, 계란을 줄줄이 낳는 양계장의 닭과 같다. 그 닭은 머지않아 알을 못 낳게 되고 결국 닭고기로 팔리는 신세가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중에 어이없이 일찍 죽어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이것 역시 그런 사례 가운데 하나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