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셜애니멀(데이비드 브룩스, 이경식

본성을 거스르는 시스템 (1)

예전에는 힘깨나 썼던 사람들이 식사를 하면서 전혀 중요하지 않은 일을 놓고 심각하게 대화를 나눈다. "중상류층이 느끼는 분노를 처리해야 한다"  "월급의 60%를 사립학교 수업료로 지출하여 쓸 돈이 남아 있지 않다" 등등....  그들은 풍토병의 일종인 지위경쟁으로 고통받고 있다. 로스쿨 졸업자로서 경영학을 전공한 사람들에게 분개하고, 정가에 발을 들여놓은 사람으로서 뉴요커에 분개한다. 그들은 기름을 바른 것 처럼 미끄러운 기둥을 올라가는데 유용한 사회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다. 실제로는 친하게 느끼지 않으면서 친한 척 할 수 있는 마음가짐, 만나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능력,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효과적으로 복종하는 섬세한 요령 등이 그런 기술이었다. 그러나 중년에 들어서 '대단한 지위'만으로 인생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기가 외톨이라는 점도 깨닫는다. 인생을 바쳐서 자기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하고만 인간관계를 맺는다. 동료와 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는 전혀 시간을 들이지 않았다. 일상에서 누릴 수 있는 평범한 친밀함은 높은 자리에 올라갈수록 더욱 파괴되었다. 자기 상처를 치유하려고 애를 썼다. 자기가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수평적 관계형성 욕구를 워낙 오랫동안 눌러왔기 때문에 우정을 쌓는 기술은 겨우 여섯살짜리수준이다.

 

좌파와 우파의 개인주의는 두 가지 정치운동을 낳았고, 또 성공시켰다. 하나는 1960년대 정치운동이고 또 하나는 1980년대 정치운동이다. 한 세대동안 어느 진영이 집권하든 간에 정치분야에서 바람은 주로 자율성과 개인주의, 개인의 자유를 향해 불었지 사회나 사회적인 의무 혹은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향해서 불지 않았다. 좌파, 우파 가릴 것 없이 이들은 모두 사회적인 병폐를 경제관점에서 설명하려 들었고, 해결책 역시 돈과 관련해서 제시했다. 가족 정책이나 어린이 교육, 공동체 인간관계 등을 주제로 책을 쓰는 사람들은 찌질이 취급을 받는다. 당신이 상원의원을 어렵게 만나서 어린이가 올바른 성인으로 성장하는데는 모자간의 인간관계가 중요하다고 말하면, 상원의원은 버려진 애완견을 치료하는 치료소 건립을 위한 모금운동을 펼치는 사람을 바라보듯이 당신을 바라볼 것이다. 정치인들은 매우 사회적인 사람들이다. 하지만 정책과 관련된 생각을 하는 순간 정서와 관련된 모든 것을 깡그리 잊어버린다. 이들은 기계론적으로 생각하며 양으로 측정할 수 있고, 예산안으로 구체화 할 수 있는 것들만 진지하게 생각한다.

 

정치인들은 물질적인 조건을 긍정적으로 제조정했지만, 사회적인 인간관계를 소홀히 하는 바람에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나쁜 결과가 나왔다. 좌파가 저지른 실수가 몇가지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선한 의도를 가진 개혁가들은 서민 거주지를 가슴 아프게 여기고는, 새집을 마련해 주겠다고 주택사업을 추진했다. 그러나 서민 주거지는 볼품 없기는 했지만, 상부상조의 관습과 공동체적인 유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면서 사람들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더 나아졌지만,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

1970년대 복지정책도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훼손했다. 정부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개선되었다. 그렇지만 가정을 지켜온 관습은 파괴되고 말았다. 우파가 낸 정책 역시 실패의 연속이었다. 탈규제의 시대에 월마트 같은 거대 연쇄점이 지역의 소규모 상인들을 압살 했고, 이 과정에서 소상인들이 한몫 거들던 지역 공동체의 끈끈한 정이 파괴되었다.

 

소련이 붕괴한 뒤에는 자유시장 전문가들이 러시아로 물밀듯이 몰려갔다. 이들은 민영화, 사유화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조언을 했지만, 정작 번영의 진정한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공동체의 신뢰와 법과 질서를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미국은 한 국가의 독재자와 정치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쉽게 그 나라를 재건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라크를 침공 했다.  남의 나라에 쳐들어간 사람들은 한 세대에 걸친 독재가 이라크 문화에 끼친 심리적인 영향과 사람들의 내면에 웅크리고 있는 증오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정치인은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파악할 수 없는 무형의 요인들이 있다. 간단히 말해서 정부는 물질적인 발전을 강화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런 노력은 물질적인 발전의 토대가 되는 사회적, 정서적 발전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정부만 공동체적인 유대감을 말살하는게 아니다. 문화 분야에서의 혁명은 오랜 전통과 전통적인 가족 구조를 파괴해왔다. 사람들이 맺는 관계는 느슨해졌다. 스스로를 통제하는 마음,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 한 사회속에서 연대감을 느끼는 마음 등이 자리 잡았던 인간관계의 그물망이 힘을 잃어버렸다.

 

인적자본이 없는 사람에게는 재앙이었다. 가족구조는 해체되기 시작했다. 특히 교육을 덜 받는 계층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건강한 사회조직이 없음으로서 정치는 양극화 되었다. 한 정당은 국가를 대표하고, 다른 정당은 시장을 대표하게 되었다. 한 정당은 돈과 권력을 정부로 집중하려 하고, 다른 정당은 이것을 바우처 및 그 밖의 시장 메카니즘으로 이동시킨다. 두 정당 모두 시민의 삶을 중재하는 제도나 관습을 무시했다. 사회적으로 파편화된 국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정당주변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로서는 이 말고는 매달릴게 없었다. 정치가와 언론인들은 이 심리적 진공상태를 이용해 정당을 종교집단으로 변질시켜 완벽한 충성을 요구하고, 또 거기에 대해서 보상을 해준다. 정치가 시민을 상대로 정체성 집단을 서로 많이 획득하려는 경쟁에 나서면, 이제 타협의 가능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내편과 네편 사이에 벌어지는 전쟁이 되고 만다. 심지어 아주 작은 양보 조차 도덕적인 항복 처럼 비친다. 정치는 이제 더 이상 협상이 아니다. 명예 혹은 집단의 우월성을 다투는 경연일 뿐이다.

 

사람들은 정부가 언제나 옳은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않으며, 국가 지도자에 대해 냉소적이고 신랄한 태도를 보인다. 이런 사회에서는 형제애로 서로 연결되어 있지 않으며, 함께 누구를 위해 희생하자는 부름에 즉각 응답하지 않는다. 누가 내 뒤통수를 치기전에 내가 먼저 남의 뒤통수를 쳐야 한다는 냉소적인 정신세계가 만연하다. 정부의 부채는 급증한다. 그러나 부족한 세수를 며련하기 위해 어쩔수 없이 감당해야 하는 희생을 사람들은 꺼린다. 사회적인 신뢰가 실종되면서 정계는 야수인 난폭한 투쟁현장으로 바뀐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인간관계의 건강성에 따라 결정된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제도는 사회속에 존재하는인간의 행동을 뒷받침 하는 무의식적인 선택구조에 영향을 미친다. 제도는 도덕적인 선택을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고, 거꾸로 좀먹는 환경을 조성할 수도 있다. 한 시대는 경제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지만, 다음 시대는 사회를 중심으로 할 것이라고 믿는다.

 

19세기와 20세기에 사회주의자라고 자처했던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의 사회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국가주의자였다. 사회보다 국가를 더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이었다. 진정한 사회주의는 사회적인 삶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경제적인 공동체에 초점을 맞출 수도 있을 것이다.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 한배를 타고 있다고 생각할까? 아니면 계급과 계급사이의 격차가 넘을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생각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