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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애니멀(데이비드 브룩스, 이경식

도덕은 본능이다.

사이코패스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감정의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끔찍한 죽음을 보여주어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는다. 사이코패스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끔찍한 고통을 줄 수 있다. 그 와중에도 정서적인 고통이나 불편함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직관주의적 관점에서는 기본적인 투쟁은 무의식 공간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인간은 모두 깊은 이기적 충동을 즉, 자신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 남들보다 우월하게 보이기 위해서, 권력을 휘두르기 위해서,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가지려는 충동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살인자는 자기와 똑같이 온전하게 인간적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죽이지 않는다. 살인자의 무의식은 우선 범행 대상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버린다. 그 인간은 자기와 같은 인간이 아니라고 왜곡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고 또 사랑 받는데 도움이 되는 일련의 감정을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책임을 내팽개치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고,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는 사람들을 인정하는 도덕적 감정 역시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다.

 

인식행위는 매우 복잡한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어떤 장면을 받아들이는 행위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있는 의미를 가늠하고 평가하며 감정을 생산하는 행위다. 산이 있는 풍경을 바라본다고 치자. 그 풍경이 아름다운지 아닌지 굳이 판단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도덕적 판단도 이와 비슷하다. 어떤 상황에서 얼굴을 붉혀야 할지, 말아야 할지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 반응은 저절로 나타난다. 사람의 혀에 쓴 맛, 신맛, 단맛, 짠맛 등 제각기 다른 맛을 인식하는 수용체가 있듯이 도덕적인 여러 기준 역시 특정한 상황을 인식하는 수용체를 마련해 두고 있다인간은 스스로를 다양한 집단으로 분리한다. 이들은 자기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내면적인 충성심을 느낀다집단이 공유하는 공통점이 아무리 임의적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또한 어떤 집단의 구성원은 집단의 충성심을 위반하는 사람에게는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혐오감을 느낀다. 사람들은 자기 집단에 속한 사람과 다른 집단에 속한 사람을 0.17초 만에 구별할 수 있다.

 

뇌는 조화롭고 완벽한 세상이 아니라, 불완전한 세상에 적응해야만 한다. 각 개인은 여러 명의 도덕적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여러 도덕적 자아는 각기 다른 상황에서 현실화 된다. 한 사람안에 여러명이 들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될수 있으면 도덕적으로 행동하려는, 혹은 도덕성이 의심받을 때 스스로 합리화 하려는 강한 충동을 가지고 있다. 보편적인 도덕적 감각을 가진다는 것은 사람들이 늘 선하고 도덕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게 보이고자 하는 깊은 동기부여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어떤 행동이 바람직하고 추구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행동을 피해야 하는지, 구분하는 수백만 가지 기준을 수시로 들이댄다. 집단규칙을 어긴 사람들에 대해 늘 이야기한다. 서로에 대한 연결성을 강화하려는 목적이기도 하고, 자신에게 우리를 하나로 묶어주는 기준을 상기시키려는 목적이기도 하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여러가지 제도를 경험한다. 제도는 처음 가족에서 출발해서 학교, 직장으로 확장된다. 특정한 규칙와 의무를 갖추고 있는 각 제도는 하기로 예정되어 있는 일을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가르친다. 우리가 속해 있는 여러 제도의 규칙을 흡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현재의 우리가 된다.  우리는 날마다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함으로써 발달시킬 수 있는 근육을 가지고 태어났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날마다 꾸준하게 좋은 습관을 연습함으로써 튼튼하게 키워나갈 수 있는 도덕적 근육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문화와 국가에 태어났다. 특정한 뇌 화학물질과 유전적인 특성을 가지고 태어났다. 우리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우리는 때로 끔찍하게 싫어하는 사회적 조건에 내동댕이 쳐지기도 한다. 비록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우리가 풀어나갈 이야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통재권을 행사할 수 있다.

 

무의식적인 감정은 한층 우월하지만 독재를 행사하지는 않는다. 이성은 저 혼자서 춤을 출수 없지만 그래도 꾸준하고 미묘한 영향력을 발휘해서 슬쩍슬쩍 옆구리를 찌를 수는 있다. 사람들이 농담으로 말하듯이, 우리가 자유의지를 갖고 있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하지 않을 의지는 갖고 있다. 우리는 도덕적으로 행동할 수는 없어도 충동은 억누를 수 있다. 성숙함이란 머릿속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각기 다른 성격과 기준을 가진 여러 개의 자아를, 될 수 있으면 많이 이해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