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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애니멀(데이비드 브룩스, 이경식

문제를 해결하는 실체

프랑스 계몽주의는 데카르트, 루소, 볼테르, 콩도르세가 이끌었다.이들은 미신과 봉건주의 세상에 맞선 철학자들로 미신의 세상을 이성의 선명한 빛으로 생생하게 까발리고자 했다. 영국 계몽주의 지도자들은 이성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이들은 합리주의자이긴 했지만 이성은 한계가 있으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믿었다. 에드먼드 버크는 " 보통 우리는 자연스럽게 터득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의 이성에만 의존해서 살고, 서로의 이성을 거래하게 될까봐 두렵다. 왜냐하면 개인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양은 그다지 크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변화는 제도의 근본적인 성격을 바꾸는 재조직 과정이다. 이에 비해 개혁은 제도의 본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결함을 보수해서 본질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치료과정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은 논리의 힘 덕분에 다른 동물과 구분되는 합리적 동물이라 상상했다. 마르크스주의자를 비롯한 19세기와 20세기 사상가들은 인간은 삶의 물리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물질적인 동물이라고 상상했다. 그러나 영국 계몽주의자들은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상상했다.

 

기억은 어떤 정보를 단순히 되살리는 것이 아니다. 정보를 다시 조직하는 것이다. 나중에 일어난 일이 그 전에 일어난 일의 기억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말이다.  무의식은 또 전체적인 맥락에 극단적으로 민감하다. 어떤 사람이 현재 느끼는 감정은 그 사람이 하는 모든 종류의 정신활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무의식은 충동적이다. 그래서 지금 당장 좋은 느낌을 원한다. 그 결과 우리는 체중을 줄이겠다는 장기적인 욕망을 인식하면서도 도넛을 포기하지 않는다. 

 

무의식은 모형을 찾는다. 심지어 모형이 전혀 없는데서도 모형을 찾아내고 모호하게 일반화한다. 무의식은 수학에 무척 약하다. 1차적 인식은 위험이 매우 크고 빈도가 낮은 위협을 과도하게 경계한다. 반면 일상생활에 존재하는 평범한 위험은 무시한다. 무의식은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심각한 약점을 보이기도 한다. 무의식은 또한 의식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도 복잡한 과제를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다. 운전하는 법을 배우는데는 의식적인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한번 숙달되고 나면 운전법에 관한 지식은 무의식 갚은 곳에 저장되어 음악을 듣거나,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대화를 나누거나, 커피를 마시면서도 얼마든지 운전을 할 수 있다. 또 의식적으로 판단하지 않고도 낯선 사람에게는 정중하게 대하고 필요없는 갈등을 피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고통을 느낀다.

 

무의식의 또다른 위대함은 암묵적 믿음을 구축하는 능력이다. 암묵적 믿음과 고정관념은 그 사람의 세계를 조직하는데, 이것은 인생을 살면서 정상적인 활동을 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파티에 참석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충분히 예상한다. 무의식은 일반화를 조직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한다. 의식적으로 생각한 사람들은 몇가지 특성만 찍어내는 경향을 보였다. 전채적으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무의식정인 사고는 잠깐만 보고 곧바로 판단하고는 이른바 스냅판단( 초면에 상대방의 외면적인 이미지를 순간적으로 평가하는 것) 사고와 동일하지 않다는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물이 없을 때 생존하는 물고기의 비밀은 이렇다. 물이 차 있을 때 녀석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지형을 머리에 입력한다. 물이 빠진 뒤에는 머리속 지도를 이용해 어디가 움푹 꺼진 물이고, 어디가 솟아올라 물이 없는 지역인지 무의식적으로 파악하고, 물웅덩이를 찾아서 뛰어 오른다. 인간 역시 물고기 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지식을 축적하는데 솜씨가 있다. 인간은 9만 세대를 이어오면서 지형을 탐험하고, 처음 가는 나라에 발을 내디딜 때 마치 어린 아기 처럼 모든 것에 주의를 기울인다. 모든 것이 차례 대로 그 사람의 눈에 포착된다. 주변의 모든 것을 자기 것으로 받아들이는 수용성은 본인이 물리적으로 어떤 장소에 있을 때 가능하다. 어떤 사람에게 익숙하지 않으면 절대 그 사람을 알지 못한다. 일본 속담에 '어떤 것을 연구하려 하지말고 그것에 익숙해져라'고 말한다. 새로운 풍경속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의 독특한 행동을 마음에 새기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생각한다. 사람들이 걷는 방식대로 걷고, 웃는대로 웃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이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여러 모형, 그들로서는 언제부터인가 의식도 하지 않게 된 모형을 본다.

 

측정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던 것이 아름다울 정도로 단순하게 보인다. 마침내 그 순간이 온다. '마침내'라고 했지만, 이 순간은 결코 금방오지 않는다. 몇달 아니 몇년의 끈질긴 관찰 뒤에야 메마르고 지루하고 절망스러운 시간을 견뎌낸 뒤에야 비로소 모든 것이 촉촉하고 간결해 지는 그 순간이 온다. 그리스인은 이 순간을 '메티'라고 불렀다. 메티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특별한 실체에 대한 정신적인 지도를 가지고 있는 셈이다. 메티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상황의 일반적인 속성을 이해할 뿐 아니라, 그 상황의특별한 속성까지도 이해한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그 흐름은 가장 연속적인 범주를 결정하고, 진실과 거짓에 대한 기준, 실체와 겉모습에 대한 기준, 아름다움과 추함에 대한 기준, 운동과 휴식에 대한 기준,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대한 기준을 결정한다. 지혜는 과학적인 지식이 아니라, 우리가 어쩌다 놓이게 된 환경을 파악하는 특별한 민감성이다. 또 지혜는 영원한 조건 혹은 알수 없는 요인과 충돌 없이 살아가는 능력이다. 지혜는 경험법칙의 안내를 받는 능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