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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애니멀(데이비드 브룩스, 이경식

치명적인 실수들

기업가가 늘 하는 말, '실패는 없다'는 말을 한다. 또 실패는 학습의 한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에 위로 받는 사람은 없다. 쉬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일한다. 그런데 갑자기 길을 잃어버린다.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이렇게 썼다. " 사람의 마음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을 할 수 있기를 끊임없이 갈망한다. 이 욕망은 우리가 갖고 있는 열정과 추진력의 기초다." 사업에 실패한 그녀는 잘 차려입고 스타벅스로 갔다. 서류 가방과 휴대폰, 노트북을 늘 챙겼다. 사실 직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 시간을 보낸다는게 여간 힘들지 않았다. 마치 건강한 사람들만 사는 나라에서 혼자 장애자 같았다. 내면의 측면에서 보자면 일종의 유배상활과 마찬가지다.

 

커피를 들고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해야할 일과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런게 없었다. 여기저기 커피 집을 전전했다. 딱히 갈데가 없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아 바쁜 척했다. 장기적인 실업상태를 경험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나중에라도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 훨씬 높다. 그리고  생애 나머지 기간동안 직장에 더 악착같이 매달리며 위험회피 경향이 강하다. 어떤 사람은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서 달라진다는 생각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달라진다고 생각한다. 전자의 경우는 주변에 온갖 흥밋거리가 늘려있다. 독서를 하면서 무엇인가를 알아간다는 것도 즐겁다. 후자는 위로 올라가는 사다리, 즉 임무가 필요하다.

 

인간의 마음은 자만을 만들어 내는 기계다. 인간의 의식은 본인이 실제로 어떤 일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했다면서 허위로 공로를 인정한다. 또 실제로는 아무런 권한이나 결정을 하지 않는데도, 어떤 것을 제어한다는 환상을 만들어낸다. 사람들은 자기자신이 거둔 행운에 도취되는 경향이 있다. 주식거래자가 며칠 연속해서 돈을 벌게 되면 뇌에 도파민이 마구 분출되어 과도한 자신감을 갖는다. 그 행동은 단순한 행운이 아니라 자기가 만들어낸 성과이며, 시장의 움직임을 완전하게 파악했다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주가하락의 위험에는 눈이 멀게 된다.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수많은 사업부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온갖 다양한 관점과 기대가 존재하고, 이런 것이 부딪히고 조화를 이루며 어떤 지점에서 균형을 찾을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할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회사의 집단 사고는 딱딱하게 굳었고, 지적인 동질성의 문화가 회사 전체를 지배한다. 사람들은 언제나 동일한 판단을 내린다. 회사가 앓고 있는 거대한 문제점을 보지 못해서 생긴 일이 아니다. 거대한 괴물은 회사 도처에 있다. 그들의 방법론은 이미 훈련되어 있다.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오랜 철학적 전통의 노예들이었다. 합리주의라는 이 전통은 인간 역사를 논리와 의식의 진보과정으로 파악한다. 이성, 즉 인간이 가진 능력의 밝은 부분이 열정과 본능, 즉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동물적 특성을 상대로 싸운 과정을 인간의 역사로 본다는 말이다. 이성이 점차 감정을 누르고 승리한다. 사람의 영혼은 이성, 정신, 욕망이라는 세부분으로 나뉜다고 플라톤은 믿었다. 이성은 진실을 추구하고, 최고의 완벽인 인간이 되기를 원한다. 정신은 인식과 영광을 추구하고 욕망은 쾌락을 추구한다. 합리주의는 모호함과 의심에서 비롯되는 불안의 짐을 덜어주며 확실성을 약속했다. 인간본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그 시대의 지배적인 기술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17세기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새로운 기계를 창조했고, 사회를 인식하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세계는 하나의 기계다'라는 은유가 '세계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다'라는 은유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기계적인 시대' 혹은 '산업시대'에 사람을 기계와 같은 구조를 갖춘 존재로 보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당시에 인간을 이해하는 과학은 공학이나 물리학과 닮은데가 많았다. 합리주의은 환원주의적이다. 문제를 세부 요소로 쪼개기 때문이다.

 

사회과학자는 열정이나 무의식적인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에서 사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가정한다. 또 이성을 완전하게 의식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가정한다. 이렇게 보자면 기업이나 사회, 국가, 우주는 모두 거대한 기계이며, 원인-결과라는 불변의 모형을 통해서 돌아가고, 따라서 자연과학은 행동과학이 당연히 복제해야 하는 모델이다. 18시기말 프랑스 혁명주의자들은 합리적인 토대위에 세상을 새롭게 시작한다면서 사회를 잔인하게 난도질했다. 사회적 다원주의자들은 인간 혁명의 완벽한 법칙을, 적자생존을 확실하게 보장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법칙을 발견했다고 상상했다. 기업주들은 공장노동자들을 최대효율을 내는 톱니바퀴로 개조하려고 시도했다.  선진국 과학기술 분야 전문가들은 전세계 저개발국가를 대상으로 대규모 개발계획을 실행하려고 시도했다. 물론 해당 저개발 국가의 관점이 아니라, 선진국 관점에서 입각한 계획이다. 합리주의적 방법론은 인간의 의식적인 인식을 매우 높이 치면서 무의식적인 인식의 영향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자는 눈으로 보거나 양을 측정하거나 형식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후자는 구름과 같아서 비선형적이며 보기 어렵고 형식화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합리주의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방법론으로 측정할 수 없는 정보는 모두 내쳐버리는 경향이 있다.

 

합리주의는 의식적인 정신을 바라보며, 이것이 전보라고 가정한다. 무의식적인 과정이 가지는 중요성은 조금도 인정하지 않는다. 합리주의자는 인간행동의 과학을 꿰뚫었다고 주장하며, 특권과 권위를 누린다. 아담스미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감정 그리고 타인의 칭찬에 대한 갈망과 추구가 인간행동의 동력이라고 믿었다' 합리주의는 그저 그들이 숨쉬는 공기속에 있으면서 그들이 설정하는 가설과 구사하는 방법론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것이 반짝반짝 빛이 날 때, 오래된 것은 모두 쪼그라드는 신세가 된다. 하청업체를 쥐어짜고 계약을 축소한다. 직원들은 더 적은 금액으로 더 많이 일하라는 지시에 고개를 떨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