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두려움(스리니바산 S. 필레이 지음,

왜 나는 외로울까?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나지만 어디서나 사슬에 묶여 있다(장자크 루소)

해마다 100만이 넘는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지켜보고, 올해 태어난 아기의 절반이 열여덟살이 되기 전에 부모의 이혼으로 고통받을 것이다. 이와 같은 통계 수치들은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더 깊이 갇히고 있고 그로 인해 더 나쁜 일을 겪고 있다. 혼자 있는 것은 정신과 신체에 모두 영향을 준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뇌에 성장을 촉진하는 피드백이 제공된다. 타인으로 부터 입력이 전혀 없을 때 뇌는 성장을 자극할 재료를 전혀 갖지 못한다. 이혼이 필요한 경우도 많지만 신체적 정신적 여파는 매우 크다. 나는 그 동안 인생의 반려자를 진심으로 찾고 싶지 않아 하는 사람들을 한 사람도 못봤는데, 그것이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우여곡절과 인간의 특성 때문에 이따금씩 서로 연결될 기회가 막힐 수 있지만,  냉소는 대개 누구와 함께하고 싶은 커다란 욕구에 대한 방어심리다. 반사회성 인격장애는 어린시절에 학대를 당하거나 정서적 유대가 제대로 맺어지지 않아서 생긴다. 이러한 나쁜 경험이 뇌의 정상적인 애착을 방해하고, 그 대신 깊은 불신, 두려움, 격리를 유발하기 때문이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자기자신이나 타인을 신뢰할 수 없다. 신뢰는 애착의 필수적인 구성요소들 중 하나다. 신뢰는 다양한 요인으로 깨질 수 있지만, 신뢰를 위협하는 가장 큰 문제는 두려움이다. 왜 우리는 싫어하는 직업에 애착을 느낄까? 어쩌면 우리는 더 성취도가 높은 새로운 직업을 시작하는 두려움보다 원래 직업의 익숙함을 선택한 것일지도 모른다. 

 

외로움은 곁에 아무도 없어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와의 단절이 타인과의 단절을 이끌어 내는 내적상태다. 사람은 홀로 있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든 외로울 수 있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짧은대화속에 깊은 지식이나 감정을 소통할 기회가 전혀 없으면, 단절된 느낌이 들고 외로워진다. 그 속에서모든 사람들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느라 전전긍긍 한다. 타인 혹은 사회 전반과 어떤 애착을 형성하느냐를 결정하는 데는 다양한 힘이 작용한다. 유년기, 사춘기, 성년초기에 애착과 관련하여 어떤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사람들과 관계맺는 습관이 형성된다. 관계에서 우리는 다가가거나, 회피하거나 얼어버린다. 그리고 이 방식에 따라 깊은 무의식적인 경로가 형성될 것이다. 우리는 유전자, 조건화,  과거 경험의 결과로 이러한 애착방식을 발달시키고, 뇌가 연결을 형성하기 시작하면 이 방식이 고정된다.

 

안정애착은 오랜 기간,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안정애착을 형성한 사람은 역설적으로 의식적인 애착행동을 놓아버리고, 관계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관계가 저절로 발달하게 한다. 이러한 자율성, 독립성, 자기확신이 안정애착의 기초를 다져준다. 안정애착이 형성되었을 때 사람들은 누군가 자신을 떠날 것이라는 걱정에 끊임없이 사로잡혀 지내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과의 관심을 계속 유지하기에 충분한 존재임을 믿는다. 상대방의 태도에 대한 일관성을 기대한다면 안정애착은 불가능하다. 모든 인간관계의 단순한 진리는 때로는 사람들에게 의존할 수도 있고, 때로는 그럴 수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도 당신을 실망시킬 수 있다. 관계의 초반에 서로 헌신하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이지만, 이것이 장기적인 습관으로 굳어지면 두 사람 모두의 성장을 가로막는다. 안정 애착을 맺으면 애착만 쉬워지는 것이 아니라, 상실도 쉬워진다.

 

애착이 온갖 종류의 갈등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오래 지속되는 관계를 만들려면 대단한 결심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데에서 안정애착이 온다. 안정애착을 형성한 사람들은 타인의 분노를 다루는데 익숙하고, 관계에서 생기는 복잡 미묘한 감정을 살필 줄 안다. 지속적인 애착이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롭기만 한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 때 안정애착이 생긴다. 애착불안을 갖고 있을 때 사람들은 거부당하고 버림 받을까봐 두려워한다. 모든 관계에는 거부당하거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따른다. 많은 부부싸움이 불안애착의 결과이다. 상대방이 떠날 것이라는 두려움이나 불안이 깔려있고, 이 두려움이 불안한 사람을 감정적으로 동요하게 만든다. 배우자나 연인이 떠나는 것은 작은 죽음과 같다. 안정적인 자아감이 확립되어 있지 않다면, 배우자나 연인이 떠날 때 자기 이미지가 무너져 내리고 그래서 공포에 사로잡힌다. 우리는 대체로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을 근거로 옳고 그름을 판단한다. 만일 누구를 잃는 것이 두렵다면 그 불안을 없애고 싶어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방법이 상대가 떠나기 전에 자신이 먼저 떠나는 것이다. 또 다른 사람은 그런 상실이 일어나기 전에 뭔가를 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떤 방식의 애착을 형성하고 있든, 관계가 얼마나 덧없는지 안다. 우리들 대부분은 결코 어떤 이를 잃지 않을 것 처럼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상실감에 맞닥뜨린다. 이런 경험을 한번만 하고 나면 또 다시 그런 일이 일어날까봐 노심초사하게 된다. 이런 끊임없는 긴장은 매우 파괴적일 수 있다. 회피애착 반응의 경우 한 사람이 애착을 파하는 것은 전적으로 애착이 가져오는 불안이 두렵기 때문이다. 애착을 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과 거리를 두고 의존을 피한다는 것을 안다. 그들이 너무 가까워질 경우 자신이 실제로는 애착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드러날까봐 두려운 것이다. 회피애착반응은 흔히 연인이나 절친한 친구를 잃는 것 같은 강렬한 실망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생긴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자신을 고립시키고, 고독한 인생을 살거나 애착의 대체물로 함께 있기를 택한다. 함께 있기와 애착은 차이가 있는데 함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같이 있지만 애착을 형성하지 않는 것이다.

 

사회가 점점 더 일 지향적으로 되어가고,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애착부재나 홀로 지내는 인생을 취함으로서 우리는 왜 혼자 지내는 생활이 문제가 없는지 합리화 하려고 한다. 그렇지만 다들 속으로는 혼자 지내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고, 따라서 이 상태를 이해할 필요를 느낀다. 합리화는 필사적으로 애착을 피하려는 데서 비롯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