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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스리니바산 S. 필레이 지음,

깊이깊이 더 집중하라.

우리가 인생을 바라볼 때 두가지 생물학적 과정이 진행된다. 하나는 기억, 타고난 성향, 사회적 환경이 우리가 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수동적인 과정이다. 또 하나는 무엇을 보느냐와 그것을 어떻게 보느냐를 스스로 선택하는 좀 더 적극적인 과정이다. 우리가 어떤 대상의 좀 더 밝은 면을 보기로 할 때 우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기로 적극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주의를 자발적으로 제어할 수 있지만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것으로 주의를 돌리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주의는 어떤 사물이나 인생상황의 한 측면에 선택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사고과정이다. 주의는 인간의 스포트라이트다. 주의는 '위험한 세계에서 방심하지 말고 주변을 감시하라'와 같은 뇌의 지시에 따라 세상위를 이리저리 비춘다. 인간의 뇌에서 주의는 전두엽과 두정엽의 정교한 조화가 필요한 복잡한 과정이다.

 

용기는 두려움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어떤 것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주의가 두려움에 사로 잡히도록 내버려두면, 두려움은 점점 커진다. 하지만 다른 것에 집중하도록 주의의 스포트라이트를 돌리면 우리의 뇌는 이에 따라 반응할 것이다. 편도체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것을 멈추게 하고 싶으면, 편도체에 적절한 대안을 제공해야 한다. 두려울 때는 회복탄력성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두려움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역경에서 벗어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은 부정적인 대상보다 긍정적인 대상으로 주의의 초점을 돌리는 데에서 비롯된다. 진정한 회복탄력성은 전념, 활력, 역경 앞에서 유머, 인내, 낙관, 신념, 이타성에 의존한다. 우리는 노력하면 전전두피질, 두정엽,기저핵의 신경회로에 접근할 수 있다. 이 부위들은 모두 주의를 처리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믿음 영향을 준다. 노력하지 않으면, 이 부위들은 적게 활성화 된다. 누구나 추구할 무엇이 필요하다. 그것을 도전이라 부를 수도 있고, 목표라고 부를 수도 있다. 그것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들어 준다.

 

한 사물이나 상황에 선택적으로 집중하는 생물학적 과정을 '주의'라고 했다. 하지만 주의에는 또하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있다. 바로 깊이다. 실제로 무아지경에 빠지려면 집중에 더하여 깊이가 필요하다. 피아니스트들이 많은 연습을 한후, 실제로 공연때는 연주가 흘러가는 대로 두어야 훌륭한 연주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뇌가 방해한다. 두려움이 자동적으로 굴러가는 일상의 과정을 방해하고, 우리의 사고를 마비시켜 인생의 음악을 멈출수 있다.  긍정적인 사고를 발달시키고 두려움을 줄이는 첫번째 단계는 전두두정엽 피질이 긍정적인 일에 초점을 맞추게 하는 것이다. 두번째 단계는 그 목표에 집중하는 것이다. 연습을 반복하면 아것이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그렇게 되면 자동적인 과정이 우리를 목표로 데려가도록 맡기면 된다. 즐기는 것은 두려움이 없을 때 나타나는 특성이다. 즐거움에 주의를 기울임으로써 두려움에 힘을 제공하는 대신 머리속에 다른 내러티브를 떠올려 두려움을 무력화 시키도록 하는다.

 

우리는 두려움이 뇌안의 여러 구조를 흐르는 전류로서, 주의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두두정엽피질 같은 구조를 방해 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두려움은 전류다. 전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전류는 전자렌지로 요리도 하고, 불도 켜고, 전기기타 소리를 증폭시키기도 한다. 두려움은 뇌의 특정 부위를 흐르는 전류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전기에너지의 향을 돌려, 두려움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뇌의 다른 부위로 흘려보낼 수도 있다. 주의를 집중하면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힐수 있고, 이것을 충분히 연습하면 그 사람이 경험하는 현실의 성질이 바뀐다. 사람들 대부분은 그들이 즉각적으로 지각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즉 우리가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듣고, 냄새 맡는 것이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는 것을 이루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보는 것은 우리가 '그것을 보았다'는 사실을 알기전에 뇌에서 이해되고 해석된다. 지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정확히 현실감지기가 아니다. 그래서  영적 기르침들이 내면을 보라고 주문하는 것이다. 내면을 보는 것은 어려운 연습이다. 그것이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외적인 것에 주의를 집중하면 내면을 볼 수 있게 된다. 주의를 집중하면 마음과 생각의 끊임없는 움직임이 잠잠해지기 때문이다. 생각에 주의를 기울이면, 주의가 한 곳에 고정되어 산만해지지 않는다. 두려움에 차 있으면 주의가 산만해지고, 반대로 주의가 분산되어도 두려움이 활성화 된다. 전두엽피질은 편도체로 전류를 흘려보낼 수 있는 전극과 같지만, 우리가 전두엽피질을 다른 생각으로 채우면 전두엽 피질이 편도체로 아무렇게나 전류를 흘려보내지는 않는다. 하지만 산만하고 혼란한 상태라면, 이 전두엽 전극이 편도체를 마구잡이로 활성화 해 두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우리가 주의를 제어하면 편도체가 영향력 지수가 높은 다른 감정에 반응할 수 있고, 두려움이 없으면 부정적인 감정도 불쾌하게 느껴질 수 있다.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동안, 그 의도에 계속해서 깊은 주의를 기울일 때, 여기에서 의도는 단지 자기안에 있는 어떤 필요가 아니라 목표를 달성하려는 더 깊은 욕구다. 주목할만한 사실은 의도는 필사적인 마음보다는 희망이나 믿음이 연결되어 있고, 원하는 것을 이루려는 절실한 소망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안에 있는 힘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차 있는 마음은 서있는 자동차와 같다. 서있는 차를 타고 있어봐야 아무 곳도 갈 수 없다. 우리는 기아를 바꾸고 가속 페달을 밟아 차를 움직여야 한다. 어떻게 해야 정차에서 운전으로 기어를 바꿀 것인가? 이때 '주의'를 동원해야 한다. 폭음을 하면 숙취를 겪고 피로하고 무기력하며, 운동할 마음이 별로 생기지 않는다. 마음이 깨어있는 사람으로 분류된 사람들은 계속해서 자신의 의도에 따라 육체적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따라서 자신이 지금 느끼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거나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이해하면, 반드시 소망을 이룰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소망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소망을 이해하는 과정을 '음미효과'라고 부른다. 지속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면 미뢰가 초코렛을 음미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를 얻는 과정과 비슷하다. 우리가 시간을 내어, 깨어있는 마음을 연습한다면 머릿속의 생각들이 가진 복잡미묘한 성질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마음이란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은 내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깨어있는 마음은 과거와 미래에 가 있는 주의를 현재로 가져와 이미 일어난 일이나 앞으로 일어날 일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따라서 깨어있는 마음은 의도가 드러나게 하는데 반드시 필요하며, 현재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깨어있는 마음이 생겨나게 하는데 필수적이다. 과학자들은 의도를 운동계획이라고 부른다. 즉 뇌가 행동에 대한 계획을 세워놓으면, 우리는 거기에 주의를 기울여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인간의 뇌에서 전류가 흘러갈 수 있는 길들 중 하나가 전두엽의 주의중추로 부터 두정엽의 의도중추로 가는 것이다. 주의와 의도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것은 양방향으로 작동한다. 주의는 의도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을 돕고, 의도는 우리가 무엇에 주의를 기울여하 하는지 말해준다.  의도는 우리 뇌가 이미 짜놓은 계획이다. 이 계획에 접근하려면 깨어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즉 우리는 현재와 계획에 주의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의도를 깊이 이해했을 때 우리는 목표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