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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스리니바산 S. 필레이 지음,

왜 희망이 필요한가?

희망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을 때 어떻게 현실의 구성요소가 될 수 있을까? 돈을 충분히 벌지 못할끼봐 두렵다면, 어떻게 담보 대출금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겠는가? 우리는 눈앞의 사실들을 근거로 희망을 품을지 말지 선택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통해 우리의 두려움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두려움을 정당화하는 대신 희망을 이용해 두려움을 없애면 어떨까? 인생의 짐은 곤란이나 두려움의 실제 무게와 관련이 있다기보다 우리가 그것에 얼마나 많은 주의를 기울이는 냐와 관련이 있다.

 

두려움은 사람들이 품으려고 노력하는 낙관과 희망의 느낌을 크게 해칠 수 있다. 어머니들의 두려움은 자식이 수술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그 결과 자식의 회복에 부정적인 결과를 미치기도 한다. 사람마다 성취의 의미는 다르다. 어떤 사람에게는 자식을 낳는 것이 최고의 성취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백만장자가 되는 것이 그렇다. 내 경험으로 보건대 무슨 종류의 성취이든, 성공한 사람과 성공하지 못한 사람을 구별하는 한가지 중요한 원리가 존재한다. 바로 성공한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노력할 때, 기존 사실들에 덜 의존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난관을 인정하는 한편, 목표를 이루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그것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찾는다.

 

성공한 사람들은 가능성을 따지기보다는 확률이 더 낮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필요한 일에 뇌를 집중한다. 하고 싶다는 이유로 확률이 더 낮은 것을 추구할 때, 우리는 희망을 품는다. 그리고 희망은 단지 희망적 사고에 그치지 않는다. 희망은 어려운 무엇을 성취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다. 뇌의 행동 중추는 우리가 내리는 지시를 따른다. 우리가 불가능에 주의를 집중함으로써 우리 뇌에 어떤 것이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주면, 뇌에게 야망을 추구하지 말라고 설득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뇌에게 그 불가능한 것을 이룰 방법을 묻는다면, 뇌는 우리의 야망을 위해 일하기 시작할 것이다. 전자의 태도는 두려움에 바탕을 두고 있고, 후자의 태도는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있다. 두려움에 바탕을 둔 메시지와 희망에 바탕을 둔 메시지는 뇌에 매우 다른 지시를 내린다.

 

뇌는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믿으면, 그 목표를 향해 희망 없이 정한 항로와는 엄청나게 다른 항로를 정한다. 우리는이 지도를 운동지도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우리가 뇌에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짜인 액션플랜이다. 이 액션플랜은 우리가 무엇을 상상하느냐에 크게 좌우된다. 인생의 변화를 꾀하려면 먼저 자신이 이루려는 모습을 상상하면 된다. 그러면 뇌가 목표로 가는 길을 정할 수 있다. 행동에는 희망이 필수적이다. 희망을 품는 것은 어떤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인생에서 원하는 많은 것이 이전에 누군가 실제로 한 것이다. 배우자, 돈, 아이 ,사랑.... 이 모두는 우리 이전에 누군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달성한 것들이다. 희망은 세상을 헤쳐나가는 한 가지 방식을 제공한다. 희망은 답이 아니다. 그러나 희망은 상상을 자극하는 존재로서, 우리가 올바른 질문을 던지도록 돕는다.

 

희망은 의식적 자각밖에서 처리된다. 이렇게 희망이 위험과 똑같은 지하감옥 안에서 활동한다면, 두려움과 맞서 싸워줄 훌륭한 군사로 희망을 고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희망과 두려움은 둘다 편도체 활성화를 필요로 하고, 둘중 더 강한 것이 편도체를 장악하여 자기 마음대로 부린다. 감정들이 편도체에 의해 처리되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순서는 힘으로 결정된다. 가장 강한 군사가 줄의 맨 앞으로 간다. 두려움이 가장 강하다면 그것이 편도체의 힘을 틀을 쥐고, 그 줄에 서는 모든 군사를 지배할 것이다. 희망이 더 강하다면 희망이 두려움보다 먼저 처리될 것이다.

 

'주의'는 인간의 가장 든든한 자산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주의에 직접 접근할 수 있다. 우리는 하려고만 하면 언제든 주의를 동원 할 수 있다. 희망과 두려움은 우리의 주의를 끌기위해 경쟁하고, 우리는 희망에 주의를 기울이는 결정을 의식적으로 내릴 수 있다. 디팩 초프라는  "만일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거기에 주의를 기울이기만하면 그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의가 우리의 감정상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주의는 우리가 감정에 도달하기 위해 택할 수 있는 하나뿐인 길이다. 하지만 교통의 흐름은 양방향이다. 즉, 주의는 감정에 영향을 미치고, 감정은 주의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어떻게 느끼느냐가 우리도 모르게 주의의 방향을 결정해 버릴 수 있다. 불안감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불안을 조장하거나, 두려운 것들을 더 잘 찾아낸다. 두려움과 불안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는 이러한 상태를 '예기불안'이라고 부른다. 어떤 의미에서 이것은 불안 그 자체보다 훨씬 더 나쁘다. 그들은 불안을 기다릴 수 없다. 불안이 위협적인 또 한가지 이유는 감정을 제어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 두려운 결과가 일어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는 빨리 해치워버리고 싶어한다.

 

우리가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일 때 켜지는 뇌회로는, 우리가 두려워 할 때 켜지는 회로와 직접 연결되어 있다.수많은 뇌 영상연구에서 사람들이 불안에 떨 때는 어떤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우리가 느끼는 두려움이나 불안의 양이 실제로는 우리가 두려움에 기울이는 주의의 양과 관련이 있다. 긍정적인 감정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긍정적인 감정에 주의를 기울이면 긍정적인 감정을 불러온다. 현실은 '무엇이라고 하기보다는, 우리가 그 무엇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이다'라고 한다. 현실의 성질은 객관적인 현상의 집합이 아니라, 개개인의 지각, 생각, 역사, 감정에 의해 채색된다. 한 사람에게 약이 다른 사람에게 독이될 수 있다. 우리가 희망이라는 렌즈를 통해 인생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그 희망이 앞으로 겪을 모든 경험의 바탕이 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우리가 두려움의 렌즈를 희망의 렌즈로 바꾸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희망적인 전망은 곧 불가능성의 다른 표현이라 생각한다. 즉 현실을 회피하고 싶은 절박함과 바람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최근에 기름값이 얼마인지 봤어요?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아요? 뉴스 방송들은 미래에 대한 비관적인 전망을 늘어놓으면서 우리의 희망을 고사 시키고 두려움을 불어넣는다. 연습을 하면, 바라보는 렌즈를 의식적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렌즈를 바꾸는 것은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는 것에 해당한다. 우리는 어느 정도는 자발적으로 주의를 돌릴 수 있지만, 뇌의 학습능력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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