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의 삶을 훼방놓는 것이 사회적 불안이나 취업에 대한 두려움과 같은 내적 두려움뿐만 아니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에 대처하는 문제와 관련한 외적 두려움이기도 하다는 사실를 깨달았다.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많은 재난으로 인한 두려움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다. 예를 들어 최근에 일어난 일본 지진과 지진해일이 일어나 지금 전세계 사람들이 핵재앙의 보이지 않는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다. 뇌의 두려움 중추인 편도체가 두려움에 극도로 민감하다. 그래서 우리가 실제로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거나, 두려움을 의식적으로 자각하지 못할 때 조차도 보이지 않는 두려움이 우리의 감정 뿐 아니라, 사고에 까지 혼돈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떻게 하면 뻔히 보이는 두려움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두려움에도 제대로 대처할 수 있을까?
인간이 가진 조건은 철옹성은 아니지만 강하다. 그것은 진화 사슬의 저 아래 쪽에 속한 동물들이 갖고 있는 원시뇌의 힘을 바탕으로 하지만, 생각하고 말하고 자신을 표현하는 인간만의 특별한 능력을 제공하는 굉장한 뇌조직 껍질에 둘러싸여 있다. 무의식인 뇌의 원시적인 힘은 바짝 웅크린 채 눈 앞에 닥친 위험의 징후를 찾으려고 주변을 살핀다. 우리가 태양에 생명을 의존하듯 거기에 의존한다. 그렇지만 인간 본성의 대부분이 그렇듯이 무의식이 제공하는 정보는 양날의 칼이다. 이 열기는 우리를 보호하지만 제대로 조절하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상을 입힐 수도 있다. 숨막힐 정도로 부지런하고 우리를 과잉보호하는 무의식인 뇌와 의식적인 뇌는 이렇게 긴장을 빚는데, 이러한 탓에 우리는 일상적으로 마음이 동요를 겪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무의식적인 두려움의 보이지 않는 우리에 갇혀 있다. 이 우리를 열려면 먼저 그것을 알아야한다. 두려움의 내적 작동 메커니즘을 좀 더 깊이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면서도 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할까? 왜 의식이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목표지점에 도달할 수 없을까? 많은 사람들이 그래서 괴로워한다. 의식적으로 최선을 다하지만 가고자하는 곳에 닿지 못한다면, 의식 밖의 어떤 것이 우리 모르게 우리가 동의하지 않았는 데도 우리를 다른 방향으로 몰고가는 것이 틀림없다. 나는 이것을 '인간 본성의 이안류'라고 부른다. 이안류는 해안 가까이에서 바다쪽으로 되돌아가는 강력한 해수의 흐름이다. 무의식은 마음의 이안류이다. 멀리서 보면 잔잔하다. 그래서 알아차리기 쉽지 않으며 예측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그 한복판에는 두려움이라는 무시무시한 힘이 도사리고 있다.
1990년에 기능적 뇌영상기법이 나왔다. 이것을 fMRI라고 부른다. 마침내 과학자들과 의사들은 감정 상태에 따라 뇌혈류가 어떻게 바뀌는지를 실제로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뇌는 신경조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신경조직은 뉴런과 다른 분화된 세포들, 그리고 그 세포를 둘러싼 물질을 포함한다. 신경조직은 살아있다. 전선처럼 이 신경조직을 전원에 꽂으면 전류가 흐르기 시작한다. 뇌 신경조직에는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문자 그대로 전원이다. 그리고 전류처럼 전원(사건)이 발생시키는 전력(신체감각, 감정)의 성질이 전류의 성질을 결정한다. 전선은 전원에 연결되기만 하면 전류를 흘려보낸다. 인간 뇌도 그렇다. 태어난 순간부터 우리는 잠자든 깨어있든 온갖 사건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뇌에는 항상 전류가 흐른다. 전류처럼, 우리 뇌에 도달하는 전력의 성질이 뇌에 어떤 종류의 전류가 흐를지를 결정한다. 전력이 두려움일때는 두려움 회로에 전류가 흐른다. 심지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만드는지 알 수 없을 때 조차 전류는 흐른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시각적으로 전달되는 감정을 어떻게 감지할 수 있을까? 우리가 태어나는 순간부터 세상이라는 전원에 연결된다는 개념만 받아들인다면, 두려운 무엇이 자기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두려움 회로가 어떤 식으로든 감지했다는 설명이 된다. 앞을 볼 수 없는 환자의 뇌는 망막이 보내는 신호를 받아 그것을 경로에 전달함으로써, 그것을 의식하게 만들수 있었다고 한다. 두려운 무엇을 전혀 보고 있지 않을 때, 우리 뇌는 어떻게 두려움을 감지할 수 있을까? 두려움을 못보는 맹인이라 해도 그 사람의 뇌는 여전히 그를 둘러싼 위험의 단서들을 포착하여 두려움 회로로 그 전류를 흘려보낸다. 과학자들은 이것을 맹시 라고 부른다. 주변에 뭔가 두려운 일이 일어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뇌가 그것을 포착할 것이다.
무의식적인 뇌가 두려움을 처리하는 데에는 0.01초에서 0.03초가 걸리고, 그 후 의식적인 처리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처리란 바퀴가 돌아가고 있다는 뜻이다. 뇌가 가담하여 어떤 견인력을 얻기 시작한 것이다. 잠검제동장치(ABS)를 장착한 자동차는 얼음 위에서 미끄러져 브레이크가 걸리면, 자동으로 속도를 늦춘다. 두려움은 거기에 노출된지 0.01초가 지나면 '뇌의 ABS를 이용해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다. 그리고 0.03초가 흐르면 뇌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는 사실을, 그래서 미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차린다. 0.4초가 지나면, 뇌는 두려움의 성질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을 대부분 알게 되고, 두려움은 아주 쉽게 의식으로 불려나올 수 있다. 뇌가 이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감지할 때마다 우리 인생에 브레이크를 걸고 있다고 상상해 보라. 정작 우리는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존재를 알지도 못하는데, 무의식적인 두려움 앞에서 끊임없이 걸리는 브레이크 때문에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여정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우리가 우리 내부에서 두려움을 일으키는 많은 것을 전혀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한 것들이 우리 뇌 속에서 전류를 발생시킬지라도 말이다. 지하철을 타고, 운전을 하고, 사무실로 걸어들어갈 때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온갖 것을 생각해 보라. 우리의 의식은 아무것도 감지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편도체는 주변에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전류가 전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문제가 없다. 하지만 너무 많은 전류가 흐르면, 회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없어 시스템이 다운된다. 무의식적인 두려움도 뇌에 비슷한 영향을 준다. 무의식적인 두려움은 편도체에 전류가 흐르게 하지만, 두려움이 너무 과하면 편도체는 오작동을 하거나 작동을 완전히 멈추고 만다. 뇌의 한 복판에 위치한 편도체는 뇌속의 고속도로를 따라 의식적인 뇌와 연결되어 있다. 편도체와 의식적인 뇌 사이에는 항상 신호가 오간다. 따라서 우리가 편도체로 흘려보낸 전류, 즉 감정이나 감각은 의식의 작동과 의식적 사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돈을 더 많이 벌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그 사람의 대뇌 피질이 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조직되어야 한다. 항해를 떠난 배처럼, 피질은 A지점에서 출발해 돈을 벌게될 B 지점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그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돈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갖는 부정적인 생각이 방해할 수도 있다. 그래서 A지점에서 B지점으로 가려면 이런 두려움의 폭풍속에서 단호하고 조심스럽게 항해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돈 생각을 할 때 두려운 느낌이 든다면 이야말로 편도체가 활성화 된다. 전두엽 피질이 목표를 향해 일사분란하게 노력할 수 없다. 돈을 벌려는 노력이 이안류에 휩쓸려 목표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 편도체가 항상 감시모드로 있고, 우리가 품은 모든 두려움에 항상 반응하며 이 교란을 항상 피질로 퍼뜨린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편도체가 두려움을 등록하는 데에는 0.01초면 충분하다. 이런한 편도체 파문이 우리의 뇌와 인생에 끊임없이 영향을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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