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열심히 일하라는 유혹(2)

돈버는 일이 우리 삶의 나머지 부분까지 밀고 들어오면서 어쩔 수 없이 다른 것들이 밀려나고 있다. 아이들과 같이 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있다. 밀려나는 것이 또 있다. 친구, 배우자, 부모, 소명이라고 생각하는 활동, 재미있는 일들, 단순한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큰 성취감을 주는 활동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 마음속에서 밀려나고 있다.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다른 모든 것들이 엄격히 통제되고 있다. 아이들은 꽉 짜여진 일정에 맞춰 이것 저것 하느라 분주히 움직이고 주말은 항상 심부름, 행사, 접대, 사람들과의 바쁜 만남 등으로 가득 차 있고, 이러는 동안에도 머리 속에는 항상 무언가 가득 차 있다. 아직 끝내지 못한 일, 아직 만나보지 못한 고객, 다가오는 마감 시간 등 마치 거실 밖에서 들리는 자동차 소음 처럼, 이 모든 것들은 삶의 나머지 부분을 충실히 살아보려고 하는 당신을 가만히 놓아두지 않는다.

 

많은 단순 근로자들이 일정하게 인상되는 봉급을 받으며,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던 20세기 중반의 대량 생산시대는 사라져 가고 있다. 생산직 근로자들은 중산층에서 밀려나고 있다. 배우자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우는 미국인 수가 30%를 넘고 있다. 여성들은 직장을 가지게 되고 남성들은 경제적 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남편의 수입 감소를 보완해야 할 필요성이 일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유일한 이유라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잘 살고 있는 상류층 사람들도 더 열심히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더 힘을 쏟는 것일까? 이미 말한대로 수입예측이 힘들고, 거의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오늘은 많이 벌수도 있지만 내일은 그 액수가 줄어들고, 다음 주에는 하나도 없을 가능성이 있다.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안정된 직장을 가졌던 과거에는 미래에도 물가인상에 맞춰 조정된 봉급이 나올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내일 나오는 고지서의 요금을 내기 위해서는 오늘 더 열심히 일할 수 밖에 없다. 미래의 수입을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에, 수입이 괜찬은 일이라면, 가능한 한 열심히 일하려 한다. 빚을 지는 경우도 많다. 빚을 지게되면 내일이 되면 없을지 모를 오늘의 기회를 받아들여야만 하는 부담감만 커질 뿐이다. 즉 햇빛이 내리 쬘 때, 건초를 만들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다.

 

기업은 언제라도 외형을 줄이고 해외로 사업을 이전할 수 있다.  아니면 다른 주의 기업과 합병해 그 지역으로 옮겨 갈 수도 있다. 회사에 어떤 변화가 생기든 다음 달 고지서는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전문직이나 관리직에 있는 사람들도 햇빛이 내리 쬘 때 건초를 만드느라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기업이나 비영리단체가 상황에 더 기민하게 대처하기 위해 봉급과 같은 고정비용을 가변비용으로 바꾸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기업들이 불확실한 시장의 경제적 리스크를 근로자 쪽으로 옮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새롭게 떠오르는 신경제에서는 이미 강조한 것처럼 소비자는 무한한 선택의 기회를 가지며, 언제라도 그 선택을 바꿀 수 있다. 따라서 지금 당신이 판매자로서 매우 잘 나간다면, 지금 이 상태를 최대한도로 이용하고 싶어할 것이다. 엔디 위홀은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15분 동안 유명해진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이제 30초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사람들의 주목을 끌어야 하는 시대다. 항상 무언가로 사람들을 충족시켜주지 않으면 안된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회가 왔을 때 이를 최대한으로 활용해야 하는 부담이 있게 마련이다. 현재 주목 받고 있는 사람들 역시 자신의 바람보다는 더 오랜 시간, 더 열심히 일 할 것이다.

 

신경제에서 사람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만드는 또 다른 한가지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고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의 경제체제는 안전과 느슨한 경쟁에 그 기반을 두고 있으며, 최소한도의 혁신 정도였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체제는 불안정과 치열한 경쟁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가능한한 최대한의 혁신을 이루어지고 있다. 런 상황에 그냥 바람부는대로 흘러갈 수 없다. 경쟁자가 당신의 시장을 깨고 들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경쟁은 모든 곳에서 치열헤지고 있다. 고객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야말로 모든 사람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뜻이다.

 

기업들은 상대방을 입찰에서 이기고 계약을 따냄으로써 고객을 유지하지 않으면 안된다. 어떤 프로젝트에 입찰하면서 현재 능력 이상의 조건을 약속하는 경우도 흔히 있다. 이전보다 더 싼 가격에 하겠다거나, 이전보다 더 어려운 조건의 제품규격을 소화하겠다는 것, 아니면 작업완료 속도를 더 빨리 하겠다는 약속 등이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지난번 마감 시한은 맞추기 어려웠다. 지금 마감시한은 더욱 더 어렵다. 비용을 줄이고 지난 프로젝트보다 작업효율을 높이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한다. 밤 늦게 퇴근하고 다시 아침 일찍 나오는 생활이 반복되고, 마감시한이 다가올 수록 하루는 더 길어진다. 가족이나 친구와 보낼 시간이 생겨도 마음은 여전히 프로젝트쪽으로 가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신경제에서 더 열심히 일하게 하는 마지막 요소는, 지난 몇십년 동안 부와 소득격차가 더 벌어졌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자리에 도달하지 못했을 때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 벌어진 격차 속에서 정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충동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의미있는 인생철학 개발에 대한 설문을 대학 학생들에게 해마다 제시했다. 1968년에는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41%였다. 1998년에는 74%가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반면에 의미있는 인생 철학 계발은 그 반대였다. 현재 학생들이 취하는 행동은 수입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결정된다. 직업차이에 따라 그 수입격차가 커지면서 조금만 위로 올라가도 과거보다 더 많은 영향을 미치며, 반대로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도 그렇다. 오늘날 부모 가 자녀들이 제대로 된 학교나 대학에 들어가는데 더 잡착하는 것도 그만큼 폭이 커졌기 때문이다. 

 

다운 시프팅(downshifting)은 이름 그대로 기어를 아래로 내리면서 삶의 속도를 늦추는 것, 돈을 덜 벌지 몰라도 스트레스에서 벗어나기 위해 단순한 삶을 추구하는 것을 말한다. 아마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고, 현재의 구조가 유지되는 한 앞으로도 그렇게 하지 않을지 모른다. 사람들은 하는 말과 행동은 환경에 따라 달라진다. 열심히 일하고 싶어하는 것은 앞으로 수입이 과거보다 그 전망이 불투명하고, 경쟁이 더 치열하고, 수입의 불균형이 더 심화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심리적으로 그렇게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니라, 매우 역동적인 시장 속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 속에서 매우 높이 올라갈 수도, 아니면 아주 낮은 곳으로 추락할 수도 있다. 얼마나 혹은 얼마나 낮게 우리 위치가 변할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앞으로 어떤 기회가 올지, 또 언제 그런 기회가 올지도 예측 불가능하다. 우리가 아는 것이라고는 이런 상황을 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 현재 우리 자신을 매우 세게 밀어 붙이는 것 밖에 없다.

'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줄어든 가족(1)  (0) 2012.03.29
자신을 팔아라  (0) 2012.03.28
열심히 일하라는 유혹(1)  (0) 2012.03.26
과거 고용방식의 종말(2)  (0) 2012.03.23
과거 고용방식의 종말(1)  (0) 2012.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