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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과거 고용방식의 종말(2)

매년 일정한 수입을 보장해 주던 안정적인 일자리는 일부를 제외하고는 사라졌다. 구매자의 선택 범위가 넓어지고, 이동이 쉬워짐으로써 어느 조직이든 조직원에게 일정한 수입을 계속 보장해 주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졌다. 이렇게 급변하는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직은 모든 고정비용을 구매자의 선택에 따라 가능한 가변비용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 결과 수입을 예측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일자리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영구직이나 정규직 등으로 분류되던 것이 일자리다. 그 일자리가 이제는 매달 혹은 매년 그 봉급의 차이가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을 실제적인 측면에서 의지할 수 있는 일자리라고 할 수 는 없을 것이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은 여러 경우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소프트머니로 살고 있다. 소프트머니는 수입이 매 기간마다 계약이나 매출에 따라 변동된다는 의미다. 전체 민간 노동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되는 임시직, 시간 근로직, 근로자나 프리랜서, 계약직 등이 늘어나고 있다.

 

정규직 근로자의 봉급에서 판매커미션, 개인보너스, 팀보너스, 이익분배액, 초과근무수당, 스톡옵션과 같이 업무 성과와 관련 있는 수입의 비중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런 수입은 증가하는 만큼, 쉽게 감소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업내에서도 프로젝트나 고객에 따라 이동하는 직원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 소규모 기업이 대부분의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지만, 소규모 기업은 대기업보다 사라지는 속도가 빠르다. 소규모 기업의 평균 근무연수는 4,4년으로 1000명 이상 대기업의 8,5년과 비교된다.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고 대학을 졸업한 후 6년 동안은 전체의 60%가 소프트웨어 프로그램머로 일하지만, 20년이 지나면 단지 19%만이 남는다고 한다. 이들은 자신의 가치가 얼마안가 없어진다는 것도 알고 있다. 창조력과 나이는 반비례한다. 역사상 위대한 음악 작품은 대개 젊은 음악가에서 나왔다. 위대한 연구실적은 젊은 과학자, 위대한 시는 젊은 시인에게 나왔다. 나이든 사람은 창조력만큼은 아닐지라도, 계속해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경험과 지혜, 판단력 등으로 부족한 창조력을 메우고 있다.  공식적인 근로시간이 엄연히 있지만 이에 상관없이 모든 남성과 여성이 항시 대기상태에 있어야 한다. 직장과 집을 구분해주던 물리적 경계도 희미해지고 있다.

 

전체 근로자의 거의 1/3이 하루에 최소한 얼마동안은 집에서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어느 곳에서 일을 하든지 관계없이 이동전화, 호출기, 이메일, 팩스 등으로 항상 고객과 연결할 수 있다. 다른 프로젝트를 위해서나 다른 고객을 만나기 위해 항상 이동한다. 신경제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동안 돌아간다. 남녀 모두 낮에 일하기 때문에 저녁이나 밤에 쇼핑하고, 볼일도 보고 외식도 해야 한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그 시간에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신경제가 하루 24시간 1주일에 7일이 돌아가는 이유중 하나다. 또 잠이라고 모르는 세계화된 시장의 증가도 그 원인일 것이다. 다국적 기업, 전세계적인 증권시장, 불면증에 시달리는 고객, 모두 24시간 깨어있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인재를 끌어오고 또 빼앗기지 않기 위해 높은 임금, 계약금, 스톡 옵션, 연말 보너스, 핼스클럽회원권, 회사내 운동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단순직 근로자의 임금과 수당이 삭감당하고 있다. 혁신을 이끌어 낼 인재에 대한 수요는 공급을 초과하고 있다. 또한 단순 생산업무는 기계나 해외근로자에 의해 더 적은 비용으로 가능하다. 1980년대까지 상위 20%가 차지하는 소득이 약 40%이고, 60%의 중산층이 차지하는 소득이 54%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가장 가난한 20%의 몫이었다.

 

1990년대에 오면서 격차가 벌어지기 시작하여 상위 20%의 비중이 증가하여 20세기 말에 총가구 소득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게 되었다. 중산층의 몫은 48.6%로 그리고 가장 하위층에 돌아가는 몫도 줄어들었다. 20세기말에는상위 5%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1990년대 주가 인상분의 85%가 부유한 10%에게 돌아갔고, 40%가 상위 1%의 몫이 되었다. 부유층과 중산층은 현재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지만, 빈민층은 이 두계층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20세기말 현재 270만명, 미국 최상위 1%가 보유하고 있는 재산은 중하위층 1억명의 재산과 같다. 미국이 대부분 이들의 소유라는 말이다. 소득격차의 심화라는 엄연한 현실을 반박할 수는 없다. 미국 경제가 아무리 호황을 누린다해도 세탁소에서 일하는 직원이 월금을 올려달라고하면 다른 사람을 쉽게 구할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기에다 많은 돈을 지불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용주는 근로자가 건강해야 자신에게 유리했으며, 근로자 또한 다른 사람이 아프면 골치가 아픈 면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프로젝트나 새로운 일자리를 따라 이동을 거듭하는 고용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는, 스스로 건강이나 퇴직연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고용의 개념이 없어진 시대에는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 더 좋은 조건을 찾아 전세계로 눈을 돌릴 수 있는 극도로 불안정한 시장의 거센 돌풍속에서 대부분의 근로자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가면 갈수록 자기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사회보장 제도는 줄어들고 있다. 자기 이웃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통신, 운송, 정보분야의 신기술로 소비자의 선택범위는 대폭 확대되고, 모든 고객이 더 좋은 조건으로 구매하고 또 그 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더 쉬어졌다. 넓어진 선택과 쉬워진 이동, 이 두가지로 인해 모든 분야에서의 경쟁은 치열해졌으며, 모든 판매자는 줄기차게 혁신을 가해 비용을 줄이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야만하는 상황이다. 물질적인 삶의 측면에서 보면 우리들 대부분은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좋은 상황에 살고 있다.

 

우리가 단지 소비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생계를 위한 일에 하루 대부분을 바치고 있는 것이 우리 실상이다. 또한 우리는 가족, 친구, 지역사회라는 많은 관계속에서 살고 있다. 신경제가 주는 많은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이런 변화를 겪을수 밖에 없다. 기술이 모든 구매자에게 더 많은 선택과 쉽게 이동할 수 있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모든 판매자들은 더 불안해 하고 있다. 구매자에게 득이 되는 활발한 경제와 기술혁신이 판매자를 불확실한 그리고 불안정한 상태로 만들고 있다. 이제 거의 모든 수입은 더 불안정해지고, 미래에 대한 예측이 더 힘든 상태가 되었다. 재능과 야망을 겸비한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기회가 제공된다. 산업시대와 비교했을 때 이들은 일반 봉급생활자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