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하게 비용을 삭감하라고 강력하게 요구하는 투자자중에 대규모 자선단체, 퇴직연금, 그리고 심지어 노조연금기금도 있다. 이런단체에 투자하고 있는 우리들은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한 경쟁이 다른 모든 상황의 배후에 있는 셈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앞에서 말한 현상의 일부를 내가 발생시켰다고 말하는 것이다. 내 퇴직연금을 관리하는 포트폴리오 매니저가 내 저축액에 대해 가장 높은 수익률을 올리지 못한다면, 나는 다른 펀드로 옮길 것이다. 과거 어느때 보다도 더 쉽게 옮길 수 있다. 그 사람도 이것을 알기 때문에 이것에 맞게 행동한다. 또 우리는 무의식중에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다하면서, 이 모든 현상을 다그치고 있다. 우리 자신이 임금을 인하하고, 노조와 싸울 것을 요구하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대규모 생산시대 때보다 더 격렬하게 노조와 싸우도록 간접적으로 기업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 중 일부는 우리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고 있는지 알게되면, 소비자와 투자자로서의 행동방식을 바꿀수 있을지 모른다. 노조가 있는 기업제품인지, 아이들이 만든 상품인지.... 또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방식으로 기업활동을 하는 기업에만 투자하는 사회적인 책임을 지는 뮤추얼 펀드로만 투자를 국한시킬 수도 있다. 더 비싼 상품을 사야한다거나, 투자에 대한 수익률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온다고 할지라도 이런 조치를 취하는 쪽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한 희생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일까? 누가 그렇게 생각할까?
기업과 직원간의 유대감이 전통적으로 강한 문화, 예를 들어 유럽이나 일본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도 이런 유대감이 무너지고 있다. 이는 당신이나 나 같은 해외투자자들이 실제적으로 이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기업은 미국자본을 필요로 한다. 1988년 프랑스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알카텔은 연간 이익이 당초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주가는 55% 떨어졌다. 이렇게 떨어진 주가는 6개월후 원위치 되었다. 이는 1만 2천명에 달하는 해고 조치와 같은 대규모 비용삭감책이 큰 원인으로 작용했다. 투자자들은 최고의 수익률을 올리는 곳으로 언제나 옮길 준비를 하고 있다. 이런 투자자들은 유럽 기업들도 미국 기업과 같은 길을 가도록 자극한다. 즉 적대적 기업매수를 강행하고, 주가를 극대화시키지 못한 경영자를 해고하고, 또 임금이 더 낮은 나라로 사업체를 옮긴다.
정치적 조치를 빨리 취하지 않으면, 기업들은 유럽을 떠날 것이다. 대기업의 경고다. 모든 나라들이 투자수익을 중시하는 해외 투자자들에 대한 의존도를 높이고 있다. 사회에 뿌리 깊게 전통을 내리고 있는 유서 깊은 기업을 유지시키며, 세계자본의 급속한 유입을 막는 곳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대가는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유대감이 덜한 사회보다는 혁신속도가 느리고 더 좋은 상품이나, 세계의 자본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어떤 조직 내에서 서로 간의 신의를 지킬 경우에도 긍정적인 면이 있다. 물론 직원과 공급업체에 잘해주면 돌아오는 것이 있을 수 있다. 직원이 직장을 옮기게 되면, 이에 대한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근로자의 걱정거리나 요구사항에 대해 노조가 효과적으로 대변해 주고, 이에 따른 생산성이 높아지는 경우도 가끔 있다. 비용을 줄이기 위해 1달러까지 압력을 받아야 하는 단순한 공급업체가 아닌 동반자 관계로 대접받는 업체가 더 적극적으로 고객 데이타를 공유하고, 전체 공급체인의 효율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식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경우가 자주 있다.
기업이 사회적 의무를 분명하게 보여주면 대외적인 이미지가 좋아질 것이다. 그러나 투자자에 대한 수익 극대화의 필요성보다 근로자나 공급업체 혹은 사회에 대한 의무가 더 크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른 이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이 기본목표를 더 충실히 이행하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정도의 의미를 지닐 뿐이다. 어떤 관계를 끊을 경우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다면 그 관계는 단절될 것이다. 신경제에서는 기업의 손익계산서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근로자나 공급자, 그리고 지역사회에 대해 무조건 친절을 베풀지는 않을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심지어 반감을 살만한 것도 계속해서 되풀이 되면 결국에는 받아들이게된다. 또 받아들여진 후에 많은 곳에서 되풀이 되면, 결국에는 일반적인 기준이 된다. 한때는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여겨지던 기업행위가 일반적인 관습이 되어 자리잡고 있다.
요즘 시대에는 해고를 당하면 화를 내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 사람에게 흠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업무수행 능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이유로 해고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과거경제는 고객과 투자자, 기업, 공급업체, 근로자. 지역사회간의 관계가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할 때 보답을 해주었다. 그러나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에서는 이 모든 기대에 수정을 가하고 있다. 상업적인 관계는 더 이상 영원한 것으로 보지 않는다. 사람들이 자신과 거래하는 모든 사람이 더 좋은 조건이 나타나면, 그 쪽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또 실제 그렇게 하고 있다. 현재 떠오르고 있는 사이버 환경에서 기업이나 단체가 그 경계선을 점점 잃어가고 있기 때문에, 어떤 기업이나 단체에 대해 신의를 지킨다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것이다. 과거에는 조직을 보면 그 조직의 모습을 알수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많은 사람들을 조정하고 조율하는데 있어, 관료사회 같은 피라미드 조직은 점점 더 이상 필요 없어진다. 사람들 스스로 인터넷을 통해 조정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수히 많은 디자이너, 마케팅 전문가, 계약업체, 발송업체가 하나의 그룹으로 마치 하나의 기업처럼 활동하고, 내일이면 또 다른 그룹을 만들어 사업해 나갈 수 있다.
모든 소비자와 투자자가 점점 더 쉽고 빨리 더 좋은 조건으로 이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 같은 소비자와 투자자는 인터넷이나 환상적인 기능의 소프트웨어와 같은 기술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으며, 모든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조여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기업들은 현재의 편리함을 위해 모인 사람들의 집합체로서의 성격을 점점 더 강하게 띠어가고 있다. 자신이 속한 단체나 기관으로부터 신의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른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또 자신들이 신의를 지킬 생각도 없다. 이들에게 사업적으로 맺어지는 관계는 그냥 스쳐지나가는 존재일 뿐이다. 그냥 그 관계로부터 과연 무엇을 얻어낼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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