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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노예(로버트 라이시, 오성호

성공의 진정한 의미

대부분의 남자들에게 일이 삶의 전부다. 아침에 일어나면 사무실에 나간다는 생각뿐이고, 저녁에는 퇴근해 있지만 마음의 부는 여전히 일과 함께 있었다. 우리 삶에서 일 이외의 부분이 말라비틀어진 건포도처럼 시들어버린 것은 당연하다. 옛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다. 내 자신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업무상 필요에 의해 보여지는 모습이외 다른 모습은 없었다. 이 사회 맹렬 여성도 일 외에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 모두들 자신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힘들게 일하지 않으면 집세도 못내고, 끼니 걱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계를 꾸려나가는 것과 삶을 꾸려나가는 것, 그리고 이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것이 왜 점점 더 어려워지는가? 

 

우리는 현재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마음속 저 깊은 곳에는 가족의 붕괴와 지역사회의 분화, 그리고 한명의 올바른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어떻게 유지해 갈 것인지를 고민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한 일과 삶의 나머지 부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한 싸움을 단순히 한 개인의 몫으로 여긴다면 균형의 저울을 한쪽으로 기울어가는 사회현상의 큰 흐름을 무시하는 것이다. 단지 한 개인의 선택, 한 개인의 균형에 관한 것이 아니다. 우리들 대부분이 25년전 우리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서 물질적으로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 25년전이라면 현재의 경제기반을 이루고 있는 여러기술, 예를 들어 마이크로 칩이나 PC, 인터넷 등이 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할 때이다.  이제 더 잘 살게 되었으니, 일 이외의 것에 더 많은 관심을 쏟을 것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과거보다 더많은 시간을 일에 매달려 있으며,  일이 아닌 삶을 위해 쓰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물질적으로 벌어들인 것을 일 이외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쪽으로 더 많이 투자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질적인 여러 욕구도 완벽하게 충족되기 때문에 돈을 좋아하는 것이 사회적인 지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2030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는 예측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이 줄어든다는 예측은 아마 틀릴 것으로 본다.  많은 사람들이 어쩔수 없이 과거보다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한가지 묘한 점이 있다.  부자가 되면 될수록 오랜 시간 일을 하며, 또 일을 하지 않을 때 조차 잠시도 일에 대한 생각에서 해방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필사적으로 일에 매달리면 더 잘 살게 될 수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잘 살게 되면  더 필사적인 모습을 띠게 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대학을 나온 사람들이 욕심이 늘어나 돈에 대한 집착이 커진걸까?  단 8%의 미국인만이 돈을 덜 벌더라도 일을 덜하는 것을 원하다고 한다. 독일의 38%, 일본의 30% 영국인의 30%와 비교가 된다. 미국인은 다른 선진국 국민들보다 일 중독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일까?

 

가족을 중시해야 한다는 주장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제시되고 있다.  그러데 왜 가족의 규모는 줄어들고 가족간의 결속은 약해지는 걸까? 자녀 수는 과거보다 더 줄어들고 있거나, 자녀를 갖지 않는 가정도 있다. 한편으로 높은 담과 커다란 대문 안에 잘 사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빈곤 계층은 고립된 채 사회의 무관심 속에 다른 한편에서 따로 살고 있다. 우리 모두 위선의 탈을 쓰고 있는 사람들일까? 아니면 우리 모두 서로를 속이고 있는 것일까? 현재의 상황으로 보면 인류 역사상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가 온적이 없었다. 이 모든 원동력은 물론 기술 발전이다기술 발달은 판매자간의 경쟁을 격화시켰으며  이로 인해 여러 방면에서 혁신적인 아이디어와 기술이 뒤따르고 있다.  살아남기 위해 모든 조직이 비용절감, 부가가치 창조, 신상품 개발 등의 면에서  대폭적인 개선책을 꾸준히 마련해야 한다. 생산성 증가로 인해 모든 면에서 더 좋고, 더 빠르고, 더 싼 상품과 서비스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경제적으로 볼 때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분명히 커다란 득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우리 삶의 나머지 부분에도 같은 의미를 지닐까?  누가 악의를 가지고 이러한 음모를 꾸민 것도 아니고, 사악한 기업이나 돈만 밝히는 사업가가 함정을 파서 우리가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구매자로서 우리가 더 좋은 조건으로 쉽게 바꿀수 있게 되면 될수록 판매자로서 우리는 모든 고객을 유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계약을 성사시키기 위해 더 힘든 싸움을할 수 밖에 없다. 그 결과 우리의 삶은 더욱 더 필사적인 모습을 띠게 된다더 좋은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면 할수록, 이를 해내기 위한 안목과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에 대한 수요는 더 높아진다. 이런 인력에 대한 공급보다 수요의 증가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이들의 수입은 위로 치솟는다. 다른 한편 에서는 치열한 경쟁속에서 기계나 프로그램에 의해  더 빨리 그리고 더 싸게 처리할 수 있거나, 해외 근로자들에게 맡길 수  있는 단순직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임금은 아래로 떨어진다. 그 결과 소득격차는 계속 벌어진다.

 

마지막으로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더 좋은 조건으로 이동이 더 쉬워질수록 교육수준이나 재산,  그리고 건강면에서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 고리를 형성하기가 과거보다 더 쉬워진다.  이런 현상은 주거지역, 직장, 학교, 보험서비스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교육과 경제수준이 떨어지며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기타 리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 다시말해 더 많은 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더 쉽게 배척당한다. 그 결과 사회적 분화현상의 심각성은 더 깊어만 간다. 구매자가 더 좋은 조건으로 더 쉽게 바꿀 수 있게 되면,  우리 모두 그 구매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앞으로 수입예측이 더 어려워지게 되므로 우리 모두 햇빛이 들때 건초를 만드는 것처럼,  현재 보이는 모든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남보다 더 부자가 되느냐 아니면 더 가난해지느냐, 삶의 여건이 더 나은 지역에서 사느냐 그렇지 않으냐 등에 따른 이해관계가 더 커지면서  우리는 승자의 대열에 속하고,  자식들에게도 안전하게 그 자리를 물려주기 위해 가능한 모든 것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신경제의 커다란 혜택을 받고 있다.  신경제가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품, 낮아진 가격,  그리고 치열한 경쟁의 혜택을 모두 입고 있다.  신경제가 대단한 만큼이나  우리는 삶의 일부를 신경제에 빼앗기고 있다. 가족과 삶, 우정, 지역사회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의 일부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손실은 우리가 얻고 있는 혜택과 함께 발생하고 있다.  지금 방향을 바꿀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자신이 원한다면 성공의 일반적인 척도에 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가치는 가지고 있는 총재산과는 다르다고  단언할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가치는 국민총생산의 수치와 같지 않다.  물론 우리는 더 알차고 균형잡힌 삶, 그리고 균형잡힌 사회를 창조해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과연 그러고 싶어할까? 이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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