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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작동법( 에드워드 L. 데시,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가?

임무는 즐거움이고 즐거움은 임무의 완성이다.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에 따르면 자유로움이란 자신의 한계를 완전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는 진정한 제약안에 존재한다. 이 제약은 남들이 임의적으로 가하는 것이 아니다. 날 수 없는제약, 자연의 힘을 거스를 수 없는 제약, 핵물리학을 이해할 수 없는 제약 등 이다. 하지만 윗사람이 임의적으로 가하는 제약은 자유롭지 않다. 하지만 진정한 제약은 우리가 정말 어떤 존재인지를 말해준다. 우리 각자가 당면한 도전은 자신에게 의미있는 임의적 제약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개인적 자유를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거주 이전의 자유를 누리고 체제안에서 개인적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다. 똑똑하고 열심히 하면 백만장자도 될 수 있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조건은 상대적으로 더 분명하며, 임의적인 제약은 더 적다. 하지만 특정한 방법으로 행동하려는 목표와 필요성은 뜻밖의 결과로 이어진다. 사람들이 자유롭게 추구하는 목표가 통제를 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외적 열망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더 많이 통제받고, 정신건강이 나쁘다. 결과를 얻기 위해 특정한 방법으로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력한 압박이 된 나머지, 자신감이나 자아가 성과에 좌우되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 사람들은 근무시간에 정원을 돌보러 집에 기면서 자유를 느꼈을까? 업무에 온몸을 바치며, 목표 달성에 매진하는 미국인들은 자유를 느낄까? 자유라는 개념은 정치적,사회적 차원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다. 무엇을 어떻게 하면 살아갈 수 있을지를 제약없이 선택할 수 있다면, 자유로운 사회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라면 미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더 자유롭다. 이렇게 사용되는 자유 개념은 체제 차원에서는 외적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자유를 의미한다. 각 개인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국가의 개입이 최소화 된다는 것을 이미한다. 임의적인 제약 없이 원하는 곳에서 살고 원하는 것을 구입하고, 원하는 지역을 여행하고, 원하는 전공을 공부할 자유다.

 

윗사람이 만드는 직접적인 인간관계 환경 또한 제도가 가하는 제약과 마찬가지로 자유를 제한할 수 있다. 인간의 자유를 제약하는 방식은 또 있다. 그것은 사회제도가 가하는 직간접적 통제에 비해 훨씬 중요한데 바로 내적 제약, 경직된 내적 구조가 가하는 제약이다. 은행계좌를 채우는대 정신이 팔린 여성과 늘 지각하는 교수는 개인적 자유상실의 다른 측면을 보여준다. 여성은 사회가 요구하는 내사된 가치에 순응하고 있고, 교수는 거기에 저항하고 있다. 두 사람 모두 내적인 힘에 억압받고 떠밀리고 있다. 

 

인간의 자유는 진정으로 자율적인 상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내사된 가치에 묶이지 않고, 경직된 내적  힘에 떠밀리지 않거나, 자기비판에 마비되거나, 제약하려는 힘에 무조건 저항하지 않으면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유로울려면 자발성을 느껴야 한다. 진정한 자아가 행동을 느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 소유에 큰 가치를 부여한다. 그래서 조건부 금전보상이나 조건부 사랑에 통제당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난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이런 조건을 통제로 사용하는 경우 자녀와 학생, 직원, 환자들에게 명백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윗사람들이 보상을 통해 통제수단으로 동원하는 경우에도 이런 사회적 작용이 가속화 되어 사람들의 심리적 자유가 제약될 수 있다. 자유롭다는 것은 남을 희생시키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남을 배려하고 주변환경을 존중한다. 이런 것들이 바로 인간적인 관계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자유는 인간의 본성이며, 그것은 관계욕구와 자율성 욕구다. 관계욕구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적, 물리적 환경을 존중하게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주변사람들에게 대장 노릇을 해야 속이 시원한 사람들은 자율적이지 않다. 진정으로 자율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주변 사람들을 존중한다.

 

심리적으로 자유로운 상태라면 남들을 받아들일 자세를 취한다. 진정한 자아는 자율성 욕구와 관계욕구라는 두 가지 경향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아가 발달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환경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동시에 남들을 받아들이고 존중한다. 사회 통제가 그대로 내사된 사람은 순응하거나 저항한다. 하지만 순응도, 저항도 진실하지 않다. 권위가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자유에 저항하는 것도 무책임하다. 하지만 권위가 요구한다는 이유만으로 순응하는 것 또한 무책임하다. 사회적 환경은 지나치게 통제하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방임하고 있다. 억압이 끝없이 강해지고 사람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무책임하게 반응한다. 그럴수록 더 강한 통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회비평가들, 정치인들, 평범한 시민들은 자신들도 무책임하게 행동하면서 더욱 더 통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통제하면 할수록 상황은 더욱 더 나빠질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자유의 핵심에는 선택이 있다. 자울적인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선택하지만 통제받는 사람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내적, 외적 힘은 인간의 선택 가능성을 축소시키고, 삶의 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살아있는 유기체인 우리는 여러가지 약점이 있다. 그 약점들 때문에 기본적인 욕구충족이 차단되면, 자유를 느끼기가 극히 어렵다. 굶주린 사람들이 먹을 것을 얻을 수 없는 상황에서, 자유와 진실성을 지킬 수 있을까? 이를 두고 먹을 것 때문에 인격을 팔았다고 쉽게 비판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