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에드워드 L. 데시 교수는 사람을 어떻게 하면 잘 다룰 수 있는지를 연구하여 '자기 결정성 이론'을 내놓았다. 데시 교수 이론은 '통제와 순종'으로 행동을 관리하는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론'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은 동물과 달리 통제와 순종으로 다루기는 어렵고, 자율과 책임에 중점을 둔 행동관리가 바람직하고 효과적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람은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질 때 동기부여가 잘되고, 최고로 몰입하며 성취감이 가장 크기 때문에 열심히 노력한다는 현상을 실생활에 가까운 심리 실험으로 검증해냈다. 사람들이 가장 받고 싶어하는 보상은 바로 '스스로 만족하는 힘'이란 것이다. 무책임한 행동을 한 사람은 마땅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문제는 그들의 무책임한 행동 때문에 가까운 사람까지 고통 받는다는 것이다. 무책임한 부모는 자녀에게 해를 입히고, 무책임한 직장상사나 의사는, 교사는 부하직원과 환자, 학생에게 해를 입힌다. 자기 삶의 긴장과 스트레스를 고스란히 다른 사람의 삶으로 떠넘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미쳐 날뛰면 자기를 삼켜버린다고 느낀다. 그러다 보니 규율과 질서를 따르면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을거라고 기대한다.
통제는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해결책이다. 보상을 약속하거나 처벌로 위협하면, 규칙을 따른다는 것이 그들의 논리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는 것은 고사하고, 무엇이 문제인지 생각해 볼 시간도 의지도 없는 이들에게 이 논리는 강력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논리는 그럴듯하지만 통제를 한다고 해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엄격한 규율을 도입하려는 시도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보상과 처벌로 책임감을 키우려는 노력도 성과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비난과 통제를 할 것이 아니라 먼저 질문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왜 무책임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 왜 폭력을 휘두르고 건강에 해로운 행동을 하고 감당도 못할 빚을 지는 것일까? 이런 질문을 먼저 해야 개인의 무책임한 행동에 숨어있는 동기와 그 동기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요소를 알아낼 수 있다.
자율성은 자신을 스스로 통제한다는 뜻이다. 자율적인 사람은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행동한다. 자율적인 사람의 행동은 전적 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른 것이고, 흥미를 느낀 것에 열성을 바친다. 진정한 자아에서 나온 행동은 진실하다. 반면에 통제 당한 행동은 압박을 받은 결과로 나타난다. 통제된 사람들은 개인적인 열정없이 행동한다. 그것은 자아의 표현이 아니라, 통제의 결과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소외되고 만다. 자율적이지 못하고 통제된 행동에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첫째 순종이다. 권위에 바탕을 둔 해법이 기대하는 결과가 바로 순종이다. 순종은 남이 시키는대로 남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이다. 통제에 대한 또다른 반응은 저항이다. 저항은 '기대되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기대되는 것과 정반대로 행동하는 것이다. 순종과 저항은 통제에 대한 반응으로 짝을 이뤄 나타난다. 하나가 있으면 다른 하나도 늘 함께 존재한다. 반항, 즉 통제에 저항하려는 인간의 성향이 겉으로 드러난 행동은, 통제에 순종하는 순응 성향과 불안정하게 공존한다. 통제를 바탕으로 하는 우리시대의 권위는 기대했던 만큼의 순종을 이끌어 냈으며, 어느 정도 반항 또한 만들어 내었다.
진실성은 자율적으로 행동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곧 내면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여 자기 행동의 주인이 된다는 것을 뜻한다. 어떤 행동을 시작하고 관리하는 과정들이 자아에 통합될 때 비로소 그 행동은 자율적이고 진실할 수 있다. 행동 원인이 자아가 아니라, 인간 내부의 다른 어떤 곳에 있을 수도 있다. 정신병리적 행동을 보고 그것을 진실한 행동이라거나 스스로 결정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사회비평가들은 현대문화가 자기애적 집착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그 자기애란 남들의 인정을 갈구하는 것, 진정한 자아 에게서 멀어져 남들의 생각이라는 외부 요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자기애적 집착을 보이는 이유 또한 자아로부터 소외 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아와 결별했기 때문이다. 통합된 건강한 자아를 발전시킬 건강한 자양분을 갖지 못한 탓에 사회가 권장하는 자기애의 가치를 수용하고만 것이다.
자유로운 사람들은 극단적으로 고독하고 정서적 온기를 잃어버린 사람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이런 주장은 자기자신과 온전히 만나려는 사람, 더 자유롭게 행동하려는 사람, 사회의 통제에서 벗어난 사람은 외부와 연결되기보다 고립되기를 선택한다는 오해에서 나온다. 진실하게 행동하고 자율적으로 자신을 통제하는 사람이 다른 이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만들수 있다. 진실성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만 가지고 파악할 수 없다. 그 행동에 깔린 동기를 보아야 한다. 행동의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고 얼마나 자율적인지 분석해야만 진실성과 더 나아가 책임의 문제를 논할 수 있다.
우리는 지위와 권력, 통제력이 서로 다른 상하관계 속에 둘러쌓여 있다. 그 관계에서는 한쪽이 위에 한쪽은 아래에 있다. 부모와 자녀, 상사와 부하, 교사와 학생, 의사와 환자가 모두 그렇다. 이 관계에서 한 쪽 즉 부모와 상사, 교사, 의사는 사회화를 시키는 존재라고 볼 수 있다. 상대방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책임을 지우는 것이 이들이 하는 일이다. 남의 권위 아래서는 그들이 시키는대로 다양한 역할을 해내면서도 제 목소리를 찾고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은 끝이 없다. 겉으로는 친밀하고 평등해 보이는 관계라 해도 자율과 통제 문제는 늘 있게 마련이다. 다만 이런 관계에서는 양쪽 모두 서로에게서 자율성을 확보하려할 뿐아니라, 상대방이 자율성을 갖는 것을 도와주어야 한다. 나도 자유롭다고 느끼고 상대방도 자유롭다고 느끼게 하려면 섬세한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들이 사로 관계를 맺으며 개인의 자율성 이라는 천을 짜 나간다. 우리가 더 자율적이고 자신에게 진실해지려면, 위사람과 아랫사람의 상하관계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다시말해 그 관계를 뛰어 넘어야 한다.
삶의 활력을 지키고 키워나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노예처럼 느끼는 직장인은 흔하지만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일하는 노동자들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관리자가 이런 노동자를 도와주는 것도 아니다. 아이들의 경우도 자신을 선원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은 많아도 선장이라고 느끼는 아이들은 드물다. 부모와 교사가 늘 그런 아이를 돕는 것도 아니다. 만일 아랫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사회에 자율성과 책임감을 퍼뜨리고 싶다면 바로 이런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가장 효과적인 동기부여는 다른 누군가에게서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선수대기실에서 코치가 어르고 달래서 아니면 창피를 주거나 격려를 한 끝에 챔피언으로 만들었다거나, 선생님이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여 학생을 얌전히 공부하게 만든다 등등...하지만 우리가 연구한 결과는 정반대다. 외부에서 주입된 동기보다 스스로 동기부여가 창의성과 책임감, 건전한 행동을 낳았고 그 변화도 더 지속적이었다..
책임감 있는 행동의 가장 강력한 동기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의사나 교사처럼 지시를 내려야 하는 사람들은 환자나 학생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남들이 스스로 동기를 부여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 수 있는가? 그것은 몸소 보여주는 행동이 부하직원이나 환자, 학생들의 동기부여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의 역할이 사실상 자율성과 진실성을 결정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늘 우리 행동이 스스로 선택한 것인지 아니면, 외부 어떤 요소나 내면의 강한 힘에 통제당한 결과는 아닌지 끝없이 고민한다. 사회적 쟁점에서는 환경을 문제삼는다. 어떤 물리적, 정신적 환경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질수 있을까? 법률가들은 바로 이 문제를 물고 늘어지면서 저울추를 이쪽으로도 밀어보고, 저쪽으로 밀어보기도 한다. 자율과 진실성의 문제는 개인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사회의 문화나 인간관계까지 함께 들여다 볼 때, 그 개념이 한층 더 풍부하고 흥미로워진다. 주인과 노예 관계는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존재하게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을 자율적이고 진실하게 이끌 수도 있고, 반대로 억압하고 학대하고 통제할 수도 있다.
중독이 되었다는 것은 중독성향이나 중독집착에 종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중독은 다른 많은 행위자들과 관련되어 있다. 중독은 가정이나 학교에서 다른 사람들과 부대끼는 과정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 어떤 이들은 그것을 건전한 방식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하다. 내면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과정이기도 한 이 과정을 이해한다면, 금연에 성공할 수도 있고 공부에 집중할 수도 있다. 유혹과 강제가 넘치는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이해 없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 자율성과 진실성을 개발한다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현재 우리 사회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비판할 것이다. 인간의 에고를 서서히 침범해 들어오는 광고, 높은 지위에 있다고 사람들을 통제하고 깔보는 태도,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도구적 가치관, 물질만을 최고의 가치로 숭배하는 배금주의, 흔적없이 사라지는 공동체 의식 등등. 하지만 이러한 사회 비판이 근본적인 관심사는 아니다, 그보다 사회 분열이 개인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파악하고,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우리는 인간의 자율과 진실성, 책임에 대해 연구하면서 동기부여 과정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율적인 행동이란 무엇이며 그 행동을 이끌어낸 동기부여 과정이 무엇인지 살펴본다면, 사회적 차원에서 그 행동과 결과가 낳은 선행요인을 밝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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