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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루덴스(요한 하위징아 지음, 이

현대문명에서 발견되는 놀이 요소

젊은 세대들이 옛날이라고 말하는 시대는 늙은 세대에게는 우리들의 시대인 것이다. 늙은 세대는 그 시대에 대한 개인적 추억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여전히 그 문화를 실천 중이라 생각한다. 이렇게 시간 감각이 달라지는 것은 자신이 어떤 시대에 속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옛날 것과 현재의 것에 대하여 어떤 지식을 갖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현재라는 아주 비좁고 근시안적인 순간에 잡착하는 사람들에 비해 역사 인식이 뚜렷한 사람은 과거의 상당 부분을 현대로 인식한다. 19세기 후반부터 스포츠라는 게임은 점점 더 진지한 색깔 띠었다. 전문 선수의 정신은 더 이상 순수한 놀이 정신이 될 수 없었다. 프로에게는 자발성과 무사무욕의 정신이 없었다. 프로의 등장은 아마추어에게도 영향을 주어 열등감에 시달리게 만들었다. 프로는 점점 더 스포츠를 놀이영역으로부터 멀리 밀어 내었고, 그리하여 스포츠는 그 자체로 특별한 종이 되었다. 프로 스포츠는 놀이도 진지함도 아니다. 현대사회 생활에서 스포츠는 문화의 옆자리를 자처하면서도 실은 그 과정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카드 게임을 능숙하게 잘한다는 것은 쓸모 없는 기술이다. 특정 정신의 능력을 날카롭게 만들긴, 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풍성하게 해주지는 못하며, 다른 곳에 사용되었더라면 좋았을 정신적 에너지를 낭비시킨다. 기업도 놀이가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아주 심도있게 진행되어 일부 대기업들은 생산량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놀이정신을 주입시키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이 놀이가 되었다. 대기업들이 회사를 축구클럽 처럼 만들어 놓고, 전문 기술을 함양하기보다는 베스트 일레븐에 들어가도록 만들고자 하는 사례들이 많이 발견된다. 이렇게 하여 변화의 바퀴는 다시 돌기 시작한다. 게임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고 했다. 게임 이외의 다른 현실과는 접촉하지 않으며, 그 게임은 놀이하는 동안만 지속된다. 일상생활의 긴장으로부터 기분 좋게 이완되는 그런 즐거운 느낌 수반된다.

 

진정한 문명은 특정 놀이요소가 없는 곳에서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명은 자아의 제약과 통제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이기적 경향을 더 높은 궁극적 목표와 혼돈해서는 안되고, 자신이 자유롭게 받아들인, 일정한 한계에 의해 둘러싸여 있음을 잊어서는 안된다. 어떻게 보면 문명은 일정한 규칙에 의거하여 놀이가 되는 것이며, 진정한 문명은 언제나 페어플레이를 요구한다. 페어플레이는 놀이의 관점으로 표현된 신의, 성실을 말하는 것이다. 인간의 일은 아주 진지하게 대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행복은 별개의 것이다. 

 

 .... 나는 인간이 진지한 사항에 대해서 진지하게 대해야 하고, 그 반대로 대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 올바른 생활방법은 무엇인가? 인생은 놀이처럼 영위되어야 한다. 일정한 게임들을 놀이하고, 희생을 하고 노래하고, 춤춰야 한다. (플라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