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조화로운 삶( 헬렌 니어링, 스코트

함께 사는 사람들

외부인들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며 인정하기를 꺼리는 토박이들이 그 사람들을 침입자라 부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어떤 공동체든지 외부에서 온 사람에게 공동체 법을 따를 것을 요구하고, 그곳의 풍습을 받아들이기를 바란다. 그리고 자기 자식말고는 낯선 곳에서 침입해 온 어느 누구도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는 난롯가에 오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외진데 있는 작은 마을일수록 이런 애향심이 다른 어떤 생각보다 앞선다. 우리는 조화로운 삶을 살려면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받아줄 것인가? 우리는 대체로 법을 잘 지키는 시민이었지만, 그곳 인습을 하나에서 열까지 곧이 곧대로 따를 생각은 없었고 ,또한 그곳 토박이의 자손도 아니었다. 처음 우리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웃사람들은 우리를 아래위로 훑어 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우리 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아냈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그곳에서 무엇을 했는지, 나이가 몇인지, 어떤 차를 몰고 다녔는지, 우리가 무슨 옷을 입는지, 무슨 음식을 먹는지 등 많은 사실을 알아냈다.

 

우리는 이웃들과 사이좋게 살기를 바랐지만 그들의 생활방식을 따를 생각이 없었고, 그들도 우리 방식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그래서 우리는 사로 다르게 사는데 동의 했으며, 서로의 독특한 취향을 인정했다.그들은 자기의 전통을 지켰고,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계획에 따라 그곳 사람과 다르게 살았다. 그때 우리는 배워야할 것이 많았고, 생각하고 있는 것들 가운데 그곳 실정에 맞지 않는 것도 있었다. 우리는 이웃과 함께 힘을 합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이 생각을 실천에 옮기려고 애섰다. 처음부터 이웃들과 함께 일했는데 사정에 따라서 이웃집이나 우리 집에서 일했다. 원칙을 세울 때 우리는 임금을 주고 받는 관계를 거부했다. 서로 일을 돕는 노동교환으로 임금을 피할 수 있다면 , 실제로 임금을 주고받는 관계를 맺지 않았다.  노동력을 사고 파는 것은 건강한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우리는 시간과 생산물을 공평하게 교환하는 것을 훨씬 좋아했다. 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힘을 모아 함께 일하고 서로 도우려고 했다. 사회라는 차원에서 보면 이러한 관계는 서로 노동시간을 교환하는 평등주의 원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저마다 똑 같은 시간을 투자해서 자기힘 닿는대로 최선을 다해 일한다는 것이다.

 

서로 돕는 우리 전통을 세우려는 우리 노력이 성공했다면, 주민들이 함께 일하는 것이 마을에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다. 몇 사람은 서로 돕고 힘을 합쳐 일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지만,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그것에 깊은 관심이 없었고, 그런 방향으로 가려는 생각도 별로 없었다. 우리가 살던 골짜기는 외따로 떨어져 있어 자급자족하는 경제생활을 하도록 자연이 만들어 준 곳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공동사업을 했다면 더욱 번창할 수 있었을 것이다. 조직이 잘 꾸려지고 이상과 열정을 가지고 힘을 모았다면, 이 일은 백여명에 이르는 마을 사람들에게 충분히 먹고 마실 수 있는 돈과 어느 만큼 만족스러운 생활환경을 만들어 주었을 것이다. 이런 일이 이루어지려면 마을 사람들이 공동목표, 서로 돕고 힘을 모으려는 마음, 원칙을 지키는 정신, 그리고 적어도 십년 넘게 계획을 밀고나가려는 굳은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했다.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우리가 함께 한 것이라고는 서로 만나 떠들고 노는 일 뿐이었다.

 

사실 사교모임은 골짜기 전체 사는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마을 공동경제활동은 없었지만, 여러 가지 다른 차원에서 이웃을 한데 모으려는 노력은 계속 되었다. 공동체 사업에 계속해서 힘을 모아 일해 나갈 수 있으려면, 모든 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정신의 공감대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겪어면서 깨달은 것은 태어나면서부터 사람은 자기만의 일에 몰두하도록 습관들게 마련이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이 남들과 효과있게 협동할 기회는 가뭄에 콩나듯 드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