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생을 좌우하는 굳은 결의를 하게 되는 것은 주위 생활을 타성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이성과 의지에 따라 살아가려는 결의다. 톨스토이는 두가지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자신을 성장시키기 위해 공부와 수양을 쌓는 일이고, 또 하나는 지주로서 농장을 경영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톨스토이적 사상이란 인간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귀족 대신 소박한 민중을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보아, 그것이 자연과 융합한다고 생각하고 그 자연의 저편에 신을 설정하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참된 예술의 사명이란 인류의 안녕과 행복이 그들의 융합 일치에 있다'는 진리를 차디찬 이성의 범위에서 따뜻한 감정의 밭으로 옮기기 위해, 어떤 사람이라도 읽어서 이해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양식과 언어에 따르지 않으면 안된다는 어디 까지나 인간적이 되게 하려고 했다.
대도시라면 어디든지 박물관, 미술학교, 음악학교, 연극학교를 위해서 그리고 예술작품을 위해서 커다란 건물이 세워져 있다. 수십만의 노동자가 예술의 욕구를 충족시켜주기 위해서 가혹한 노동속에서 일생을 보낸다. 아마 모든 인간 활동 가운데 전쟁을 제외하고 이만한 노력이 기울여지는 것도 없을 것이다. 예술을 한다는 사람은 대개 그 바탕이 선량하고 영리해서 어떤 유익한 사업이라도 능히 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바보가 되는 특수한 일에 종사하면서 점점 편협해지고, 생활상 모든 일상적인 일에 둔감해지며, 아울러 일면적인 사람이 되어버린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만 발이나 혀나 손가락을 놀리는 것 밖에 하지 못하는 전문가로서 만족하는 정도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훌륭한 악장은 으례 '그렇게 한다'든지 그것이 위대한 예술가의 전통이며 자기 예술에 열중하게 되면, 악사들의 기분은 고려할 여지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지주에게 야단을 맞으면서 유순하게 있는 소작인처럼. 대체 어떤 일을,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하고 있는 것일까? 어떤 악장은 아마도 노동자와 같이 기진맥진 하여 지쳐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도대체 누가 그토록 고생하라고 그에게 시키고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그는 마음 졸이고 있는 것일까? 얼핏 머리에 이런 의문이 떠오른다. 이것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구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일까?
교육을 받은 사람에게는 참을수 없이 진저리나는 일이며, 노동자에게는 도무지 속을 알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이것이 마음에 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상류사회 물이 들기는 했지만, 아직은 만족하지 못하고 자기교양을 자랑하고 싶은 직공들 뿐이리라. 그런데 이것을 가리켜 예술을 위한 활동이라고 하며 예술이란 아주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과연 이것이 예술이고, 예술이란 그만한 희생을 강요해도 좋을 만큼 중요한 것인가?' 이 문제가 특히 중요한 것은 예술이란 미명아래 수많은 인간의 노력과 생명이 희생되었을 뿐아니라, 인간상호간의 애정까지도 희생되는데도 불구하고, 예술 그 자체는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 점점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것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서로 다른 종파에 속하는 신학자들처럼 유파가 다른 예술가들은 서로 배척하고 서로 부정한다. 그러고 보면 예술이란 것은 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생명을 요구할 뿐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 인간상호간의 애정까지 파괴하면서도, 그 본질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다. 또한 예술한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 해석이 모순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예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수가 없다. 훌륭하고 유익한 예술, 그것을 위해 희생을 받쳐도 좋다고 생각되는 예술이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지 쉽게 말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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