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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서로 다른 길을 간 섬들의 운명


1722년 부활절 일요일 어느 네덜란드 제독이 인도네시아와 스파이스 제도로 가다가 태평양 먼 바다에서 작은

화산섬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뒤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이 이스터 섬은 반세기 뒤에 에스파냐에 합병되기까지

외로운 섬으로 남아 있었다. 이스터 섬에는 거대한 석상들이 섬 곳곳에 흩어져 있다. 오갈데 없는 소수 식인종들이

그 거대한 석상들들 어떻게 세울수가 있었을까?

 

고고학자들이 섬 환경의 역사를 짜맞추면서 발달한 사회가 어떻게 야만의 상태로 후퇴했는지, 오늘날 이스터

섬의 이야기는 환경악화가 어떻게 한 사회를 멸망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놀라운 역사적 우화이다. 이스터

섬의 토착문명은 하룻밤 사이에 사라진게 아니다. 환경이 나빠지면서 섬이 먹여 살릴 수 있는 능력은 이미 그들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나고 있었다. 섬은 침식되고 있었다. 한 순간에 대격변이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호수 퇴적물에 보존된 꽃가루는 몇 십명 밖에 안되는 사람들이 이스터 섬에 정착했을 때, 드넓은 숲이 펼쳐져

있었음을 증언한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5세기에 섬에 왔고, 그 뒤 몇 천년에 걸쳐 숲을 개간하여 농사를 짓고

땔감을 얻고 카누를 만들었다는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이야기다. 인구가 점점 늘어나서 15세기에 거의 만명에

이르렀다. 인구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한 세기동안에 목재가 부족해서 사람들이 동굴에 살기 시작했다.

유럽사람들이 처음 도착했을 때 섬에는 나무가 없었다.

 

그때 마지막 남아 있던 나무들은 사람이 닿을 수 없는곳, 섬의 가장 깊은 사화산 바닥에서 자라난 것이었다.

숲이 베어져서 맨땅이 드러나자 흙의 침식이 가속화되고 수확량은 줄었다. 토종 야자나무 섬유질로 그물을

만들어 썼기 때문에, 야자나무가 사라지면서 고기잡이도 힘들어졌다.  식량 구하기가 어려워지자 사람들은

돌담을 둘러서 닭을 길렀다. 닭은 섬에서 나무와 겉흙이 사라지더라도 직접 영향을 받지 않는 마지막

식량 공급원이었다. 카누를 만들지 못하게되자 사람들은 섬에 갇히고 되었고, 점점 줄어드는 자원을 둘러싸고

끝없이 전쟁을 벌였다.

 

폴리네시아 사람들이 태평양에서 노를 저어 섬에 닿았을 때, 그곳에는 토착식물과 동물이 거의 없었다. 토착

식물군과 동물군에서 먹을거리를 찾지 못한 새 정착민들은 그들이 가지고 온 닭과 고구마를 주식단으로 했다.

섬의 덥고 습한 환경에서 고구마 농사는 손이 거의 가지 않기 때문에 섬사람들은 여유롭게 남는 시간동안,

거대한 석상을 세우는데 집중하는 복합사회를 일구어 갔다. 기형적인 석상은 채석장에서 조각되어 섬을 가로질러

운반되었고, 또다른 채석장의 붉은 돌로 만든 거대한 모자를 씌웠다. 석상을 만든 목적은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섬사름들이 어떻게 석상을 만들어 세웠는지 오랜세월 동안 수수께끼였다. 숲이 사라진 뒤 빠른 속도로

토질이 낮아지자 빗물이 겉흙을 쓸어갔다. 그 뒤로 섬에서 경작할 수 있는 땅은 아주 조금만 남았다.

 

히스파니올라 섬 서쪽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는 아이티의 역사는 농장들이 허리케인 없이도 참혹하게 흙을

잃어버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섬의 잠재 농지 가운데 여전히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절반 밖에 안되기 때문에

점점 늘어난 인구는 스스로 먹고 살 수가 없다. 자급하기가 힘들어 지자 농가들은 남은 나무들을 베어 숯을

만들어 팔고 먹거리를 샀다. 궁지로 몰린 소작농들은 도시로 몰려들어 거대한 빈민촌을 이루었고, 2004년

정부를 무너뜨린 폭동의 기반이 되었다.

 

시골 가구의 4분의 3이 넘는 수가 빈곤선 아래 생활을 하고 있으며, 아이티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유엔식량

농업기구의 최소영양 기준에 못미친다. 인구가 늘면서 상속되는 땅은 점점 더 좁아졌다. 농가 소득이 줄면서

흙 보존방법에 투자할 여력도 사라졌다. 먹고 살 길이 막혀버린 최하층 농민들은 더 가파른 산허리를 개간하고 

몇 해만 이어갈 수 있는 침식의 사이클을 되풀이 한다. 농경지가 부족해지고 시골이 점점 가난해지자 소작농은

끝내 산허리의 자급농지를 버리고, 일자리를 구하러 도시로 떠났다. 살길이 막막해진 이들이 도시의 빈민가에

모여들어 내전이라는 비극적인 역사를 만들어 낸다.

 

일반적으로 녹색혁명은 관개 석유, 화학비료, 살충제 사용을 기반으로 지구적 농업을 이루었다. 쿠바

정부는 그 녹색혁명과 거이 반대의 방향으로 농업을 지역 조건에 밎게 변화시키고, 비옥화와 해충방지를 위해

생물학적 방법을 개발했다. 쿠바전역에서 200군데가 넘는 지역 농업 공개강좌 네트워크가 마련되어 농부들에게

저투입 무경운 농법과 생물학적 해충 방지법을 퍼뜨렸다. 쿠바는 사탕수수 수출을 멈추고, 자급할 식량을 기르기

시작했다. 10년도 안되어 쿠바 식단은 수입이나 화학비료에 기대지 않고서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상업적 도시텃밭이 쿠바전역에 생겨났다. 개발이 예정되었던 땅이 드넓은 채소밭으로 바뀌어 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고 지역주민들은 시장에서 토마토, 양배추, 감자 그리고 갖가지 채소를 산다. 2004년 무렵 아바나에서는

과거에 빈땅이었던 텃밭에서 거의 도시전체에 필요한 채소 공급량을 생산했다. 쿠바가 농업적 자급자족으로

나아간 건 필연적일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오늘날 농업을 지탱하고 있는 값싼 석유를 우리가 다 태우고

났을 때, 더 큰 규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내다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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