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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화학비료와 석유의 딜레마 1

땅을 간다는 것은 작물을 심기위해 땅을 파헤치는 일이다. 잡초는 뿌리 뽑히고 작물은 더 잘 자라날수 있을 것이다.

작물의 생장을 돕는다고 해도 땅을 갈면 땅은 헐벗고, 빗방울의 충격을 흡수하고, 침식을 막아주던 식물군락의

보호를 받지 못하게 된다. 농부들은 땅을 갈아서 더 많은 식량을 길러내고, 더 많은 사람을 먹일수 있다. 시행착오를

으면서 영농방식이 개선되고 농업이 발전했다. 중요한 혁신은 똥거름 주기와 지역마다 특색있는 돌려짓기다.

기계화된 농업이전에 농부들은 다양한 작물을 길렀고, 흙의 비옥함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밭에 작물 그루터기,

똥거름 때로는 인분도 주면서 손으로만 농사를 짓곤 했다.

 

지리학자 월터 멀로리가 보기에 1920년대초에 중국의 기근을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여러분야에서 많이 제안되었다.

토목공학자들은 작물에 손해를 끼치는 홍수를 줄이려면 강물을 조절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농업공학자들은 간척사업으로

경작지를 넓히고, 관개시설을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경제학자들은 새로운 자금 지원방식으로 도시자본의 시골지역 투자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있는 자들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의 사람들을 몽골의 드넓은 초원으로

이주시키고자고 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에만 관심을 두다보니 불모지에서 지나치게 공격적으로 농사를 짓는

근본원인을 지적하는 이는 없었다.

 

1920년 대 중국은 한해에 한사람을 먹이는데 거의 1에이커의 땅을 썼다. 땅을 갖고 있는 거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3분의 1은 반 에이커도 안되는, 다시말해 한 사람이 먹고 살기에도 모자란 땅을 가지고 있다. 개인이 가진 땅 가운데

반 이상이 1.5에니커에도 못미쳤다. 중국인들은 늘 굶어죽을 위험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었다. 일모작의 실패로 흉년은

기근을 불러왔다. 중국은 자급능력이 한계치에 와 있었다.

 

멀로리는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소작농들이 4000년 넘게 집약적으로 농사를 지으면서 흙의 비옥도를 지켜온 점에

감탄했다. 그는 중국농업의 긴 수명과 미국의 급속한 토질 고갈을 대비시켰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도시와 마을에서

나오는 인분을 밭에 되돌려줌으로써 유기물질을 풍부하게 한 것인 듯했다. 화학비료를 구할수 없는 중국 소작농들은

그들 스스로 땅을 기름지게 했다.

이제 농부는 흙에 적절한 화학비료를 주고, 씨를 뿌린 뒤에 작물이 자라는 것을 뒷짐지고 자켜보면 될 일이다. 식물생장을

촉진하는 화학비료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 세심한 손길을 밀어냈고, 돌려짓기나 땅에 맞는 농법을 실천한다는 생각은

별스러워 보였다. 오랜 세월에 걸쳐 발전되고 다듬어진 농법과 전통을 화학비료 혁명이 뒤집어 버리자 대량으로 비료를

살포하는게 관습적인 농법으로 자리 잡고 오히려 전통적인 방식은 대안농법이 되었다. 19세기 실험들은 초식동물들이

식물을 섭취하고, 거기에 들어있는 질소 가운데 4분의 1에서 3분의1만 처리한다사실을 밟혀냈다. 따라서 그

똥에는 질소가 가득 들어있다. 그러나 똥거름은 모든 질소를 흙으로 돌려주는 것은 아니다. 비료가 없다면 주기적으로

콩류를 심어 기르는 것만이 흙에 질소를 보존하고, 오랜기간 에 걸쳐서 작물을 거둘 수 있는 길이다.

 

남북전쟁 직전 미시시피 주정부 지질학자 힐가드는 미시피주를 여행하면서 쳔연자원 목록을 정리하여 현대토양학을

탄생시켰다. 원시의 흙을 찾아다니던 힐가드는 흙의 종류마다 사로 다른 특징을 보이는데, 그것이 식물이

뿌리를 내리는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흙이 화학적인 과정과 생물학적인 과정의 상호작용에

따라 변화하고 유지되는 역동적인 체계라고 보았다.

 

지질학과 화학을 모두 전공하 힐가드는 흙을 기름지게 하는 비결은 흙의 양분을 유지하는데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가 기르는 작물이 빼앗는 무기질 성분을 우리가 규칙적으로 땅에 보충해주지 않는한, 영원한 비옥함을

유지할 수 있는 땅은 하나도 없다. 힐가드는 인분을 땅에 되돌려 주어서 양분을 재순환 시킴으로써 흙의 비옥함를

유지하는 아시아 농법을 높이 평가했다. 그는 미국의 하수시설이 흙의 양분을 바다로 그냥 흘려 보낸다고 했다.

그는 또 플랜테이션들이 검은 겉흙을 침식시킨 뒤 미시시피의 구릉지 농부들이 고원의 흙이 퇴적된 골짜기 아래쪽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해마다 최대이익을 내야하는 대규모 사업적 플랜테이션이나 소작농보다는 작은

가족농장이 농업을 지속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선진 공업국가들의 농작물 수확량은 20세기 후반기에 거의 곱절로 불어 났다. 불어난 양의 대부분은 인공

비료를 나날이 더 많이 쓴 결과였다. 제2차 세계대전 반발이후 1960년대까지 질소비료 사용은 세곱절로 불어나고,

1970년까지 다시 세곱절로 늘었으며, 1980년까지 한번더 곱절로 불어났다. 값싼 질소를 손쉽게 쓸 수 있게되자

부들은 전통적인 돌려짓기를 하거나, 주기적으로 밭을 묵히는 데에서 벗어나 쉼없이 농작물을 길러냈다.

산업화된 농화학덕택에 수확량이 치솟으면서 흙의 생산성은 더 이상 땅의 조건에 좌우되지 않았다. 대규모 단일경작과

비료사용으로 나아가면서 목축과 작물재배도 분리되었다. 비료가 넘치는 세상에서 흙의 비옥함을 유지하는데 똥

거름은 더 이상 필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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