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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 (데이비드 몽고메리 지음, 이수영

농기계와 흙의 침식

흙이 천천히 사라지기 때문에 농부들이 그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바라보기 어렵다. 게다가 기계화는 돈이 들기 때문에 든 돈만큼 뽑아내어야 한다. 군데군데 아니 모든 곳이라고 해도 조금씩 사라지는 건 모른체 해도 될만큼 흙의 값은 싸다. 드넓은 평원 트랙터를 쓰기에 이상적이다. 1900년 무럽 기관차 같은 트랙터가 처음 쓰였다. 1917년 무렵에 몇 백군데 회사에서 작고 실용적인 기종을 만들었다. 이 놀라운 기계들로 무장한 농부들은 소나 말 뒤를 따라 걸을 때 하고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넓은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토착의 식생이 변함없이 자리잡고, 버팔로 떼가 풀을 뜯고, 똥거름을 줄 때는 생기가 넘쳤지만, 경작지가 들어서고 오랜 가뭄에 말라버린 대초원은 부서졌다. 흙을 얽어맬 풀과 그 뿌리가 사라지자 몇 십년 전만해도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않고 지나갔던 강풍이 모래를 가득 품은 허리케인처럼 땅을 할퀴었다. 드넓은 땅에 흙바람이 불었고, 강풍은 시든 작물의 바짝 마른 줄기 밑에 드러난 푸석푸석한 흙을 쓸어냈다.

 

단일작물 경작지는 중장비 농기계와 집약적인 화학물질 사용에 이상적이다. 노동 집약적이기보다 기술 집약적인 방식으로 성공을 거두려면 농장 규모가 크야 한다. 현대화란 기계화를 뜻한다고 생각한 작은 농장들이 대출을 받은 뒤 빚 속에 허덕였다. 그러면 그 땅을 대기업이 사들였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농기계장비를 생산하는 기업으로 많은 돈이 흘러갔다. 기계화로 나아가는 경제적, 사회적 추세는 농업을 산업으로 탈바꿈시키고, 흙을 빠르게 잃어갔다. 새로운 농기계 덕택에 땅을 더욱 집약적으로 경작하기 쉬워져서 땅을 더 깊이 더 자주 갈았다. 고대 로마에서 그랬던 것처럼 밭은 한해의 상당기간동안 헐벗고 황폐한 채로 버려졌다. 농장이 기계화되면서 경작지 둘레의 나무, 계단식 논밭은 농기계 작동에 방해가 되었다. 흙은 이제 농업이라는 제조업에 들어가는 많은 투입물 가운데 가장 값이 싼 하나의 상품일 뿐이다.

 

미국 중서부에 옥수수를 심은 땅에서 일어난 침식의 절반 이상이 5월과 6월에 생겨났다. 이때는 옥수수가 자라서 땅을 보호하기 전이다. 겉흙이 사라지면 수확량이 줄고, 농부들은 유기물질과 양분 함유량, 수분 보유량이 적은 밑 흙까지 깊게간다. 아프리카 사헬지역은 적도의 숲과 사하라 사이의 반건조 기후지역이다. 사헬의 연간 강우량은 평균 15에서 50센티 미터이다. 19세기 말 프랑스 식민권력이 사헬지역에서 빠른 속도로 팽창하면서 지나친 방목을 막고, 똥거름 주던 사회습관을 바꾸어 놓았다.

 

유목민이 프랑스 시장에 공급할 상품을 생산하고, 농부들은 불모지에서 작물을 길러 유럽으로 수출했다. 사헬은 집약적인 방목과 농업에 꾸준히 이용되어 갔다. 1930년부터 1970년까지 방목하던 가축의 수가 곱절로 늘어났다. 그러다가 1972년에는 비가 한 방울도 오지 않았고, 풀 한포기 자라지 않았다. 지나친 방목이 쉼없이 이어져서 가축 사망률이 높았다. 살아남은 몇 안되는 과일나무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 10-25만명이 굶주려 죽었다.

 

가뭄이 이 재난의 직접적인 원인이지만 땅을 착취하고, 건기에 땅이 먹여살릴 수 있는 수준을 훌쩍 넘어서 인구가 증가하게 한 장본인은 바로 식민지시대 문화와 경제의 변화였다. 대농장에서 재배한 작물은 기근때도 변함없이 수출되었다. 지나친 방목으로 뒤덮고 있던 여러해 살이 식물이 사라지자 맨 땅이 바람과 빗물에 시달리면서 사막으로 변해갔다. 흙의 침식은 땅의 생명력을 파괴하지만, 땅은 치유될 수도 있다. 나이지리아 일부 자급농들은 단순하게 몇가지를 바꾸어 경작지를 되살렸는데 돈은 한 푼도 들지 않았다. 그들은 양을 이리저리 돌아다니지 못하게 매어놓고 작물의 그루터기를 먹였다. 양들은 밭에 똥거름을 주었고, 그것으로 다음 작물을 길렀다. 돌려짓기로 작물을 심어서 흙의 비옥도를 높혔다. 흙과 돌을 개어 경작지 둘레에 낮게 담을 쌓아서 비가 퍼부어도 흙이 사라지지 않게 하였다. 화학비료를 주지 않았는데도 수확량이 곱절에서 세곱절 까지 뛰었다. 필요한 건 노동력이었다. 흙의 비옥도를

되살리는 노동집약적 기술덕택에 밀도가 높은 인구 부담이 자산으로 바뀐 것이다.

 

산림개간 탓에 에티오피아는 1930년대부터 원시림 가운데 3%만 남았고, 블루나일 강에 퇴적되는 침적토는 다섯 곱절로 늘었다. 서부 고원지대의 농경지에서 평균속도로 흙이 사라진다면, 한세기 안에 토착 겉흙은 침식될 것이다. 필사적으로 작물을 수확하려는 농부들이 쉼없이 집약적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황토가 침식될 뿐 아니라, 흙의 비옥도가 해마다 1%씩 떨어져 왔다.  에티오피아 환경 난민사태는 오랜 세월에 걸쳐 흙을 보존하는 것이 바로 나를 지키는 것임을 알려준다. 오늘날 정치난민보다 많은 환경난민들이 날이 갈수록 지구적 문제가 되고 있다. 사람들은 잠깐의 가뭄은 견딜 수 있지만 , 땅이 사막으로 변해서 방목도 경작도 할수 없게 되면, 대탈출을 피할 수 없다. 사막화는 비단 아프리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구의 10분의1이 넘는 곳이 사막으로 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전에 서유럽은 세계에서 하나뿐인 곡물수입 지역이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곡물수출량은 1930년대 후반에 북아메리카 곡물 수출량의 거의 곱절이었다. 소비에트연방 처녀지에서 수확한 곡물 수출량은 북아메리카 대초원 지대에서 수확한 곡물과 맞먹었다. 2차 세계대전 전 자급자족하던 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동유럽, 아프리카는 오늘날 모두 곡물을 수입한다. 1980년대 초에는 100여개 국가가 북아메라카에서 생산되는 곡물에 의존했다. 오늘날 북아메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세 지역만이 전세계로 곡물을 수출한다. 오늘날 곳곳의 흉작이 전세계 곡물값에 미치는 영향을 들여다 보면, 식량 공급과 수요사이의 균형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아메리카의 잉여 농산물은 긴급하게 이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는 지구적 안보와 관련된 문제다.

 

우리는 지구표면의 10분의 1정도에서만 농작물을 기르고 있고, 4분의 1을 방목지로 쓰고 있지만 남아 있는 땅 가운데 농사나 목축에 알맞은 땅은 거의 없다. 남아있는 땅 가운데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열대의 숲인데, 그곳의 흙의 깊이가 매우 얕아 몹시 침식되기 쉬워서 오랫동안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지속 가능한 최대한으로 지구에서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에, 지구온난화가 농업시스템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생각하면 불안하기만 하다.

 

작물 생장기때 최저기온이 하루 평균 1도만 올라가도, 쌀 수확량이 10% 떨어진다고 보고한다. 밀과 보리도 마찬가지다. 다음 세기에는 모든 곳에서 1-5도 상승할 것이라는 지구온난화 시나리오는 수확량에 곧바로 미치는 영향을 넘어서 훨씬 큰 재앙을 예고한다. 황토로 이루어진 세계3대지역, 미국 중서부, 북유럽, 중국 북부는 전세계곡물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현대농업의 놀라운 생산성은 작물을 기르기에 알맞고 농업에 이상적인 흙이 드넓게 펼쳐져있는 이들 지역의 기후에 달려있다.

 

1967년부터 1977년까지 도시화로 해마다 거의 100만 에이커의 미국농지가 농업이외의 용도로 탈바꿈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한 시간마다 100만 에이커가 넘는 미국 농경지가 농업이외의 용도로 바뀌었다. 1960년대 도시가 팽창하면서 가장 기름진 유럽 농토의 몇십 퍼센트를 먹어치웠다. 도시지역은 도시를 먹이는데 필요한 농경지를 꾸준히 소비하며 성장한다. 세계적으로 농경지는 한 해에 헥타르당 평균 10톤에서 100톤이 침식되는데,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열에서 백 곱절은 빠르게 흙이 사라지는 셈이다. 농경시대로 접어든 뒤로 지금까지 전세계 잠재농경지의 거의 3분의 1이 침식 되었는데, 그 대부분이 지난 40년동안 일어난 일이다.

 

단기적으로 농부들로서는 흙의 보존을 무시하는 쪽이 돈이 덜 들수 있다. 흙의 침식을 줄이는데 들어가는 비용은 그렇게함으로써 당장 얻을 수 있는 경제적인 이익보다 몇 곱절 더 비싸다. 온갖 빚에 시달리면서 쥐꼬리만 이익을 남기는 농부들은 흙을 보존하면서 파산할 것인가 아니면, 땅이 아무것도 길러내지 못할 때까지 농사를 지을 것이냐 사이에 하나를 고를 수 밖에 없다. 경제적 인센티브와 정치적 인센티브는 장기간에 걸쳐서 흙의 생산성을 뿌리 뽑는 영농방식을 장려한다. 그러나 문명의 농업적 기초를 보존하려면, 가속화되는 침식으로부터 땅을 지켜내고, 땅이 다른 용도로 전환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흙의 침식이 고대사회를 무너뜨렸고 오늘날의 사회도 심각하게 뒤흔들 수 있다는 증거 앞에서도, 지구적인 흙의 위기와 식량부족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경고는 허공으로 흩어진다. 전통적인 자원경제학자들은 흙의 침식이 식량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을 지나쳤다고 하지만, 침식 때문에 흙이 만들어지는 속도보다 빠르게 흙이 사라지는 현실에서 그런 관점은 먼 앞날을 내려다 보지 못하는 것이다. 농업은 다른 모든 활동의 기초이지만, 우리는 가면 갈수록 농업을 그저 하나의 산업 분야쯤으로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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