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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 양영

부채탕감

 

부채에 의한 지배현상을 조사해보면 가난하고 개발이 이루어지지 않고, 국민소득이 메우 낮은 나라들만이 부채로 허덕이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게된다. 2400억 달러의 부채를 안고 있는 브라질(이 액수는 국가총생산의 52%에 해당한다) 은 남반구 국가중 두번째로 부채가 많은 나라다. 브라질은 세계11위의 경제대국이다. 브리질이 만들어내는 비행기외 자동차, 의약품 등은 과학기술 수준이 첨단을 달린다. 또한 브라질의 대학들은 세계에서 우수한 대학에 속한다. 하지만 브라질 인구 1억 7천6백만명중에서 4400만명은 만성적인 기아와 영양결핍에 시달리고 있다. 이 부채의 채권자들은 누구인가?  해당 국가들은 대부분 이자를 비롯해서 상환해야 할 부채의 원금을 충실하게 갚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이들 나라의 외채는 여전히 증가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은 대부분 일반적으로 채무국들은 원자재, 특히 농업제품을 생산하는 나라들이다. 이 나라들은 필요한 공업제품의 대부분을 수입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 20년동안 세계시장에서 공업제품의 가격은 6배 이상 뛰었다. 반면에 농산품 가격은 지속적으로 내려가고 있다. 그리고 제3국가들은 국고횡령, 부패확산, 스위스, 미국, 프랑스 등지의 일부 민간은행들과 협조하여 조직적 배임행위 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아이티는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가난하며 전 세계적으로 세 번째로 가난한 나라다. 24년 넘는 독재기간 동안 뒤발리에 일가가 국고서 황령하여 서구 은행의 개인계좌로 옮겨 놓은 돈은 9억2천만 달러나 된다. 오늘날 아이티의 외채와 맞먹는 액수이다. 그리고 오늘날 거대 다국적 농가공 식품업체, 국제적 은행, 거대 다국적 서비스, 제조, 유통업체들이 남반구 국가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나다. 대부분 이들은 천문학적인 이윤을 남긴다. 이들이 벌어들인 엄청난 액수의 이윤은 유럽이나 북아메리카, 일본 등지 있는 본사로 이송한다. 해당국 통화로 현지에서 재투자되는 액수는 지극히 미미하다. 제3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대 다국적 기업의 대다수 지주회사들이 보유하고 있는 특허들을 활용 한다. 특허를 사용하려면 그 대가로 이른바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기업의 이윤과 마찬가지로 로열티도 유럽이나 일본, 북아메리카, 또는 카리브해 인근의 세금 천국으로 유출되며, 이때도 당연히 외화로 바뀌어 송금된다. 세계자본시장에서 볼 때 제3세계 채무국들은 매우 위험도가 높은 국가들이다. 따라서 서구의 은행은 북반구 국가들에 비해 높은 이자를 남반구에 요구한다. 비싼 이자는 남반구 국가들의 자본 출혈을 거들게 된다. 공격 당하거나 상처를 입으면 피를 흘리듯

남반구 국가들의 실질적 부는 채권자들과 그들의 동조자인 콤프라도르 계급들에 의해 국가 밖으로 빠져 나간다.

 

30년 동안 라틴아메리카 대륙은 해마다 자신들의 원자재와 서비스를 수출함으로써 벌어들인 돈의 30-35%에 해당하는 액수를 부채 상환에 할애했다. 원칙적으로 외채를 요청한 나라는 외채를 얻어서 자국에 투자를 함으로써 다시말해 자국내 사회기반 시설을 확충하고, 제반 생산력을 향상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해서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차츰 빌려 쓴 돈을 갚을수 있게 된다. 그런데 오늘 날 제3세계 국가들은 점점 더 높은 이자를 물어야 하고, 원금은 원금대로 갚느라 점점 더 가난해 지고 있다. 외채는 마치 치료하지 않고 방치한 종양과 같다. 돌이킬 수 없이 불어난다. 이러한 악성 종양은 제3세계 국가의 주민들이 가난과 비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방해한다. 아니 오히려 이들을 죽음으로 몰고간다. 한 나라가 북반구 은행이나 국제통화기금 등의 채권기관에 이자지불이나 원금 상환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는가? 지불을 거부하는 국가에 대해 파산을 선고하는 공식적인 절차는 없다. 이 문제에 대해 국제법은 침묵한다. 하지만 관례적으로 볼 때, 지불 불능상태 국가는 전부 또는 일부 변제불능 선고를 받은 민간기업이나 개인과 똑같은 대접을 받는다자국민이 완전한 자치주의를 고수하며 폐쇄정책을 밀고 나갈 작정이 아닌 한, 오늘 날 제3세계의 그 어떤 채무국도 고의적이고 일방적으로 채무변제 불이행을 선택할 수 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럴 경우 모든 국제경제교류의 단절을 각오해야 한다. 채무 불이행은 궁핍과 굴욕이다.

 

국제통화기금은 외국 투기자본가들에게 이익을 보장하는 보증인이기도 하다. 태국의 경우 1997년 7월 외국의 투기자본들은 태국 통화인 바트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약세에 놓인 바트화를 공략함으로써 단시간에 거대한 이익을 챙기려는 의도에서였다. 방콕의 태국 중앙은행은 당시 외환보유고에서 수억 달러를 풀어 시장에 나온 바트화를 사들였다. 자국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3주동안 적극적으로 환율 방어에 주력했던 중앙은행은 마침내 투쟁을 포기하고, 국제통화기금에 손을 내밀었다. 국제통화기금은 태국 정국에 새로 외채를 도입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는 새로 끌어들인 외채로 외국 투기자본에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러므로 외국투기자본은 태국에서 단 한푼도 손해보지 않았다. 외국 투기자본은 헐값으로 나온 부동산이나 주식의 시세차익을 노리는 자들이다. 이와 동시에 국제통화기금은 수백개의 공공병원과 공립학교를 폐쇄하고, 공공부문 지출을 삭감하며 도로 보수공사를 중지하고, 공공은행이 태국 민간기업에게 대출해준 돈을 조기 회수할 것을 종용했다. 그 결과는 어떠했는가?  불과 두달 사이에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문을 닫은 공장도 수천개에 이르렀다. 지구상의 수억명은 앞으로도 상당히 오랜시간 굴욕적인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오늘 날 세상은 사이버 공간이 온 세상을 하나로 만들었다. 전자통신이 보편화되었으며 덕분에 모든 일은 실시간에 진행된다. 인터넷을 통하면 전 세계로 부터 수십억개의 정보를 접할 수 있다. 지구상의 오지를 찾아 이동하는 일도 쉬워졌고, 그곳에서 세상의 비참한 모습과 굴욕과 기아를 대면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북반구 국가들이 온갖 부와 자본을 독점하는 식의 불평등한 분배를 납득시키기는 어렵다. 자본의 흐름을 지배하는 자연적인 법칙이라는 이론을 신자유주의 신봉주의자들이 고안해냈다. 지난 10년간 제3세계의 122개국에서 부채에 대한 이자 및 원금상환을 위해 북반구국가와 이들 나라의 은행으로 송금한 돈의 총액은 채권국 전체의 국민총생산을 합한 액수의 2%에 약간 못미친다. 2000년부터 2002년 간에 몰아친 전 세계 증권거래소에 몰아친 강력한 충격으로 수천억 달러와 자산이 증발하면서, 거의 모든 지역의 금융업계가 위기에 빠졌다. 증권거래소에 등록된 대부분 주식의 가치가 65%이상 하락한 것이다.  이 기간 동안 증권거래소에서 증발한 가치는 제3세계 122개국의 외채를 합한 액수보다 무려 70배나 큰 액수였다. 하지만 2000-2002년의 증권거래에서 위기는 이토록 어마어마한 액수의 자산이 증발해 버렸음에도 전 세계 은행체제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단시일 내 금융업계는 정상을 회복했고, 북반구 국가의 경제, 고용, 저축의 대대적인 추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막연한 추론에도 불구하고, 세계경제체제는 위기상황을 넘긴 것이다.

 

새로운 위기가 2007년 8월 초에 전 세계증권거래소를 위협했다. 무려 3조달러가 증발했지만 별문제 없이 위기를 넘겼다. 그렇다면 왜 부채탕감을 할 수 없다는 말인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이며 완전히 외채를 탕감해준다고 해도 서구 경제가파산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뿐 아니라, 그 어떤 채권은행도 망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물론 국제기구나 민간기업들이 어느 정도 손해는 보겠지만, 그 손해라는 것이 극히 제한적이며 전체 체제 안에서 얼마든지 수용가능한 것이다. 제3세계의 부채를 탕감하더라도 산업사회의 경제와 그 경제체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복지는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다. 부자들은 여전히 부자로 남을 것이고, 가난한 자들은 약간 덜 가난해질 뿐이다. 부채를 얻고 그 부채를 갚기위해 이자를 지불하고, 원금을 상환하는 일련의 과정은 봉건시대에 유행하던 충성서약의 가시화된 표현과 다르지 않다. 노예는 국제통화기금으로부터 협정서 혹은 구조조정 확인서를받을 때마다 무릎을 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