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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 양영

제국의 존재 이유, 전쟁과 폭력

 

인간이 사는 세상에서 전쟁은 하나의 특이한 현상이 아니라 정상적인 일상이다. 전쟁은 일시적인 이성의 부재로 치부되지 않을 뿐 아니라, 제국의 존재 이유라 할 수 있다. 나는 이같은 구조적인 폭력성과 그로인한 새로운 풍습을 모두 구조적인 폭력이라고 부른다. 오늘날의 폭력은 봉건화 되어가는 자본주의의 이념, 군사적, 경제적, 정치적 표현이다. 요컨대 폭력이 세계의 질서를 좌우한다. 폭력은 나름대로 세계화 지상주의적 질서를 만들어 내며, 그것을 적법화 하기 위한 이론을 생산한다타인이란 우리에게죽음의 위협을 가지고 오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말할 수 도 있다. 즉 우리는 그가 추구하는 바를 대략 이해한다. 그가 추구하는 바란 결국 우리가 추구하는 바와 같다. 그가 사용하는 수단도 우리가 사용하는 수단과 같다.

 

구조적인 폭력은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자원의 배분체계에서 여지없이 드러난다. 1950년 노벨상을 수상했으며 1959년부터 1971년까 유엔부총장으로 일했던 랠프 번치는 "평화라는 말이 평시와 전시를 구별할 것도 없이, 늘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던 많은 사람들에게 의미를 가지려면, 자유나 인간의 존엄성 뿐만 아니라 빵이나 쌀, 안식처, 건강, 교육 등의 용어로 번역되어야만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모든 국가의 군비지출 총액은 2004년 1조 달러를 넘어섰으며, 그중 47%를 미국이 집행한다.이 지출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가난이야말로 소규모 테러 집단의 자양분이며, 모멸감과 빈곤, 불안으로 가득찬 미래에 대한 전망은 이들의 가미가제식 행동을 부추긴다. 2006년 미래 보고서에 따르면 해마다 850억 달러씩 10년동안 투자를 한다면, 지구상의 모든사람은 기초적인 교육과 의료, 적절한 영양, 식수, 기본족인 위생시스템 등을 보장 받을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예방차원의 전쟁 뒤에는 모두들 잘알고 있듯이, 거대 자본주의 다국적기업의 금전적인 이익이 도사리고 있다. 이것이 예방차원의 전쟁을 수행하는 동기다. 이라크의 유전은 북부나 남부를 구별 할 것도 없이 모두 지표면에서 아주 가까운 층에 위치하고 있다. 몇 미터만 파내려가면 검은 금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텍사스유의 배럴당 생산 단가가 15달러라고 할 때 북해산 생산 단가는 15달러인데 비해, 이라크유의 생산단가는 1달러도 안된다.  미국의 대형 TV방송국들의 대다수는 무기 제조회사가 소유하고 있다. 세계는 국제법의 규범적 성격이 무시되고 있는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우선 세계화 지상주의자들, 즉 전 세계 주요다국적 거대기업들의 독재에 좌지우지되는 글로벌 경제의 영향을 들수 있을 것이다. 이들 현대판 신흥 봉건제후들은 최단기간에 최대한의 이익을 내기 위해서라면, 국가도 유엔 따위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세계무역기구, 유럽연합, 국제통화기금 같은 기구들만 있으면그것으로 족하다. 그들은 이같은 기구들을 자신들의 야심을 실현하려는 전략의 유순한 실행자로 이용하면 그만이다. 그런데 국제법의 주요 주체는 어디까지나 국가다. 하지만 현대판 봉건제후들이 이끄는 글로벌 경제하에서는 이들 국가의 권위가 봄눈 녹듯 녹아버리고 있다.

 

미국의 국무장관이었던 헨리 키신저는 민족자주권과 국가주권을 지나치게 엄격히 존중하는 것으로는 평화를 보장할 수 없다고 믿었다. 오로지 범지구적인 열강만이 위기가 닥쳐을 때, 모든 지역에 신속하게 개입할 물질적인 여건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열강만이 평화를 확립하고 유지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라예보는 21개월 동안 세르비아로부터 포위되어 폭격을 당했다. 이는 사망자 11000명, 부상자 수만명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빚었으며, 희생자 대부분은 민간인들이었다. 더구나 민간인 희생자 중에서 상당수가 어린아이들이었다. 유엔과 유럽연합은 밀로세비치가 이끄는 살인마들을 이성의 세계로 이끄는데 완전히 무력했다. 적어도 미국의 제국적인 힘이 사라예보 인근에 포진한 세르비아 포병대에게 포격을 가하기로 결정하고, 데이턴에서의 회합을 강제로 갖기 전까지, 다시 말해서 무력으로 발칸반도에 평화를 재수립하기 전까지 그랬다. 이 상황을 놓고 보면 키신저 이론이 잘못되었다고 볼 수 없다.

 

지난 10년간 소위 저강도 전쟁이라고 분류되는 전쟁이 43차례나 일어나 지구를 초토화했다. 유엔은 이 전쟁을 하나도 저지하지 못했다. 키신저의 주장은 하나의 가정을 전제로 한다. 바로 제국의 도의적인 힘, 평화를 쟁취하려는 의지, 사회를 조직하는 능력은 다른 모든 국가의 힘과 의지, 능력에 비해 월등하다는 것이다.  이 가설이 반대파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그리고 유엔의 P-5급 이상되는 유엔공무원들 중에 백악관의 확실한 동의없이 승진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세계화 지상주의자들과 그들의 시종무관이 된 정치가들이 득세하는 제국의 반대편에는, 성전을 내세우는 알카에다, 알제리무장 이슬람단체, 이집트의 가마알이슬라마야 등의 이슬람 테러리즘 세력이 자리잡고 있다. 이슬람 테르주의자들은 수치의 제국의 근간을 이루는 구조적 폭력과 끝없이 이어지는 전쟁을 자양분 삼아 독버섯처럼 자라난다. 우리는 18세기말 미국과 프랑스의 혁명주의자들로부터 속박에서 풀러나는 무기를 물려받았다.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권리, 보통선거, 민의에 의해 언제든지 소환 가능한 대리 정치 등이 바로 우리가 물려받은 무기다. 이러한 무기들은 우리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다.  국민주권을 회복하고, 인류공동의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일이 오늘날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