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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의 시대 (장 지글러 지음, 양영

지식인의 임무

수치심에 대한 정의를 내려보자.  “ 창피스럽게 만드는 불명예....  상대방에 비추어 자신이 열등하다거나  무능하다고 느끼는 고통스러운 감정, 혹은 남 앞에서 자신이 창피하다고 느끼거나,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느끼는 감정.. 등의 자신의

의식의 소심함에서 비롯되는 거북한 감정” 굶주린 도시 빈민들이 쓰레기 통을 뒤지려면  우선 자신으로부터 수치심을 떨쳐내야 한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빈민촌에는 전세계 인구 40%가 밀집해 살고 있으며,  이곳에서는 가족의 식사를 담당하는  주부들이 변변치 않은 먹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쥐들과 전쟁을 벌여야 하는 형편이다. 이곳 주민들은 사는동안 줄곧 열등감이 주는 고문에 시달린다. 누더기를 걸친 실업자는 창피하다는 생각 때문에,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지역에는 감히 발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부유한 지역에 드나들여야 일자리를 구할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그래야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수치심 때문에 지나가는 따가운 행인들의 시선에 맞설 용기를 내지 못한다. 배고픔에 시달리는 자식들을 보면서 그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지 못하는 어미가 느끼는 수치심을 감히 무엇으로 가늠하겠는가?

 

전세계에서 가장 막강한 500대 거대 민간 다국적기업들이 2006년 현재 전세계 총 생산량의 52%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요컨대 지구상에는 한 해 동안 생산된 부의 절반 이상을 이들이 장악하고 있다는 말이다. 세계화 지상주의를 표방하는 자들, 그들은 한 인간이면서 동시에 부자가 되고 싶고 시장을 지배하고 싶으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거나, 세계의 주인이 되고 싶다는 모순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잠재적인 경쟁자들을 상대로 '경제전쟁'이라는 이름의 계엄령을 내렸다. 내가 타인에게 연민의 감정을 표하거나 연대감을 보인다면, 나의 경쟁상대는 그 즉시 이를 나의 약점으로 여겨 이용하려 들것 이다.  나를 무너뜨리려고 할 것이다. 나는 하루 24 시간, 밤이든 낮이든 가리지 않고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최대이익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이익을 축적하고 최단시간에 최저비용으로 가장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안간 힘을 써야 한다.

 

서구에서는 조잡스러운 여러 이론이며,  이념들이 본래 선의 의지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의 의식을 흐리고 있다.  그러므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재 세계를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질서를 움직일 수 없는 불변의 진리'로 받아들인다. '경제'란 한낱 도구에 불과하므로 인류 공동의 행복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 인간에게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음을 가장 먼저 주장한 사람은 벤저민 프랭클린과 토머스 제퍼슨이다. 이들의 정신은 곧 프랑스 혁명의 과격파 자크 루에게로 전파되어 마침내 프랑스 대혁명의 주요 동력으로 작용했다. 인류가 이제까지 만들어낸 것 중에 가장 앞서가는 첨단기술과 막대한 자본, 강력한 연구소들로 무장한 민간 다국적기업들이 바로  정의롭지 못하고 치사한 질서를 고착시키는 주역이다. 지식인의 의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증언하는 것이다. 레지 드브레 교수는  “지식인의 임무는 민중을 현혹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들을 무장시키는 것이다.” 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