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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트로피(제레미 리프킨 지음,이창희

엔트로피 사회의 가치와 제도1

우리에게 현실이란 측정, 계량화, 실험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질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것을 외면한다이원주의가 온세상을 뒤덮고 있다. 여기서 이원주의란 우리 마음이 몸과 서로 떨어지고, 우리의 몸이 주변환경으로 부터 괴리되는 것을 말한다.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물질적 진보, 효율, 전문화 같은 개념을 숭상했다. 이 과정에서 가족 공동체 전통은 파괴 되었다. 생물학자들이 옛날부터 알고 있던 진실을 우리는 매일 실감한다. 그것은 어떤 생물도 자신이 쏟아놓은 쓰레기 한가운데서는 오래 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E.F. 슈마허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시대의 가장 긴급한 과제는 형이상학의 재건이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어디서 왔는가? 인생의 목적은 무엇인가? 등의 의문에 대한 우리의 깊은 신념을 분명히 밝히려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저엔트로피 환경에서 인생의 목표는 다르다. 저엔트로피 세계관의 윤리적 기준은 에너지흐름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지나친 물질적 부는 소중한 자원을 돌이킬 수 없이 낭비하는 행위로 인식될 것이다. 저 엔트로피 사회는 물질적 소비를 줄일 것을 강조한다. 검약은 주요한 덕목이 된다. 욕구가 늘어날 때마다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외부의 힘에 더욱 의존하게 되며, 따라서 존재의 공포가 늘어난다. 욕구를 줄여야만 인간은 갈등과 전쟁의 궁극적인 원인인 이러한 마음의 긴장을 줄일 수 있다. 마하트마 간디는 이렇게 믿었다. “ 문명의 본질은 욕구를 증가시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의도적이고 자발적으로 포기하는데 있다” 우리 찬양해야 할 것은 절제, 단순함, 자발적인 가난, 한계의 인정 같은 것이다.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은 결국 우리를 소유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거기에 집착한다. 소유물을 빼앗길까봐 두려워한다. 바가바드 기타(힌두교 교전이런 말이 있다. "물질에 대해 생각하면 인간은 거기에 집착한다. 집착함으로써 욕심이 생기고, 욕심이 생김으로써 분노가 발생한다. 분노함으로써 망상이 생기고 망상은 기억을 지워버린다. 기억을 잃으면 분별력이 없어지고 분별력이 없어지면 파멸하는 것이다. "

 

현대적이고 좀 더 친숙한 말로 표현하면 이렇게 된다. 차가 없으면 주유소 줄서기, 교통혼잡, 차량도난 따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저엔트로피 사회에서 우리는 더욱 검소하고 절박한 생활을 해야 한다. 소비는 더 이상 인간존재의 목표가 되지 못한다. 고엔트로피 문화에서 인간의 노동은 큰 가치를 갖지 못한다. 사회의 목표는 생산 과정의 전단계에 걸쳐 인간의 노동을 없애고, 자동화를 도입하여 에너지의 흐름을 증가시키는데 있다. 생산성과 성장은 경제의 유일한 목표가 된다. 인간이 서비스와 재화의 생산에 관여해야 할 자리에 과학적 운영방식이 들어선다. 과학적 방식을 표준화 하여 개인의 창의력을 밀어낸다. 육체노동은 저급하고 피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우리 사회는 인간의 손에서 모든 노동 기능을 앗아가는 노동절약 기구에 깊이 중독되어 있다. 소득 체계만 봐도 노동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알 수 있다. 세계 어디서든 손발로 일하는 사람의 소득이 가장 적다. 노는 시간의 대부분을 책상에 앉아 보내는 화이트칼라의 소득이 높다. 현대 사회에서 노동은 필요악이다. 우리가 즐기고 싶은 것을 얻게 해주는 수단인 돈을 벌기 위해 짊어져야 하는 짐인 것이다.

 

무엇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시장만 개척할 수 있다면 기어코 생산한다. 그래서 사회는 자동차, 약품, 가전제품으로 널려있다. 산업사회는 생산의 목적이 소비에 있고, 노동은 이것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보지만, 저엔트로피 사회에서는 노동이야말로 의식의 계몽상태에 도달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있어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 고엔트로피 사회에서 노동은 시간과 생산량에 의해 분할되고 측정된다.  저엔트로피 사회에서 인간의 노동은 ‘우리는 진정으로 누구인가?’를 아는데 도움을 주는 활동이 된다. 그러므로 노동은 긍정적인 가치를 갖는다. '불교경제학'이라는 글에서 E.F. 슈마허는 이러한 가치가 세가지 측면을 갖는다고 했다. 첫째 인간이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고, 개발할 기회를 주는 것. 둘째 공동 과제를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노력함으로써 자기 중심적 사고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 셋째 자신에게 걸맞는 삶을 위해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가져다 주는 것. 저엔트로피 문화에서 노동은 수면, 명상, 놀이와 마찬가지로 적절한 삶의 균형을 위해 필요한 활동으로 인식된다. 노동 없이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다. 노동을 절악하는 데만 집착하고, 끊임없이 여가만 추구하는 사람은 소비와 소유에 대한 집착으로 부터 비릇되는 환각의 밀림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결코, 진실을 바로 보지 못할 것이다. 노동은 무엇보다도 그 일을 하는 사람에게 존엄성과 목적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한다.

 

엔트로피 법칙에 의하면 기계나 공장 등 노동의 도구가 크면 클수록, 이들은 더욱 자본 및 에너지 집약적이 되며, 더 많은 엔트로피를 만들어낸다. 도구의 크기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도구가 크고 집중화 되어 있을수록 인간은 단순한 생산요소로 전락해 버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조립라인에서 작업자는 기계가 원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생산공정 자체가 인간이 아닌 기계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살아남기 위해서 기계에 더욱 의존해야한다. 여기서 인간의 노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노동의 결과인 생산물만 있을 뿐이다. 경제적이든, 정치적이든 통치에 있어서 저엔트로피 문화는 최소한의 통치를 하는 정부가 가장 좋은 정부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소수에 의한 지배 대신 대중 민주주의가 도입 되고, 각 개인이 직장과 공동체에서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일에 대해 평등한 투표권과 의사 발표권을 갖는 경제체제가 강조된다.

 

생태계의 움직임에서 인간을 격리시켜 놓은 오늘날의 관점은 저엔트로피 시대가 되면, 모든 현상 상호간의 관점을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관점에 자리를 내어줄 것이다. 저엔트로피 문화는 인간을 자연의 일부로 생각하여  결코 분리하지 않는다. 자연은 착취의 대상 아니라 총체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생명의 원천이다. 인간이 자연과 하나라는 사실을 일단 이해하면, 모든 인간 활동의 적합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윤리적 기반이 생긴다. 생태계 제1법칙은 모든 것과 다른 모든 것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가르치고 있다. 따라서 자연 한군데를 파괴하면, 그것은 인간을 위시한 다른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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