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된 공동체

전통 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이 서로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서로를 보살펴 주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경제체제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간격이 더욱 벌어지게 되어 더 이상 서로를 필요로하지 않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물론 궁극적으로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는 하지만 예전 가족, 친구, 이웃들 사이에 존재하던 직접적인 유대감은 보이지 않는다. 상호협동의 정신이 멀리 있는 외부세계의 통제력에 의해 밀려남에 따라,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의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는 때에도 무기력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모든 상황에 수동적인 태도와 무기력함이 파고든다. 사람들은 개인의 책임의식을 포기하고 있다. 전통마을에서 관개수로를 보수하는 일은 공동체 전체가 분담하여 처리하던 일이었다. 수로에 누수가 생기는 경우 지역 주민들이 삽들고 현장에 모여 보수작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런 일은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정부가 고쳐 놓을 때까지 방관하기만 한다. 정부가 자신들을 위해 더 많은 것을 해 줄 수 있도록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는 태도는 더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지난 날에는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들과 직접적인 교류가 있기 때문에 개인들은 실질적인 힘이 있었다.

 

매체를 통해 나타나는 문화의 중앙집중화로 인해 사람들 사이에 불안감과 수동적 생활태도가 두드러졌다. 전통적으로 라다크에는 노래하고 춤추는 하는 문화가 활발했다. 남녀노소의 구분없이 모든 사람들이 그랬다. 사람들은 화로나 모닥불 주위에 둘러 앉아 춤을 추고, 노래를 했고, 아이들까지도 함께 했다. 모든 사람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법을 알고 있었다. 깊이 있고 오래도록 지속되는 타인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안정감과 정체성을 유지해오던 라다크 사람들은 그것을 잃어버리게 되었다.  모든 소비상품이 그 사회가 문화사회임을 알게 하는 선행조건이 되었고, 현대의 욕실과 주방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높은 신분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소극적이 되고 불안감을 갖게 되면서 상황에 순응해야 하고, 또 이상적으로 보이는 이미지를 쫓아 살아가야 한다는 압력을 받게 되었다.  그렇게 보면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생김새로 느껴지던 전통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여유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고, 자신이 정체성에 충실할 수 있는 자유를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긴밀하게 연결된 공동체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에 충실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친밀했던 인간관계는 피상적이고 간편한 것으로 변질되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대신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의해 평가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입고 있는 옷과 다른 소유물 뒤에 숨어있다. 그래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뭔가를 소유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증가시킨다. 그리고 실제로는 누군가가 멋진 승용차를 새로 구입한다면, 그 사람은 그런 것을 갖지 못한 사람으로부터 멀어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신들보다 현대화가 덜한 사람들은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산업화 진행되면서 세계전역에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은 남성들이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인 농촌지역을 떠나 도시로 몰려든다는 것인데, 가정의 외부에서 기술기반을 둔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남성들만이 가족구성원 중 유일하게 생산력을 갖춘 존재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 속에서 아이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 끊임없는 보살핌을 받았을뿐 아니라, 공동체에 속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로부터 살아가는 방법과 지혜를 배우면서 성장했다. 아이들에게도 자기들보다 어린아이를 돌봐야한다는 책임감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형성 되었다. 어린 아이의 입장에서도 어른들에 대한 존경심과 친밀함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중앙으로 편향된 사회구조 속에서 일자리와 정치권력을 얻기 위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라다크 사회는 더욱 극명한 분열을 보였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집단들 사이의 갈등은 정치적인 차원까지 떠올랐고, 그들 사이의 적대감은 예전에는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확대되었다. 취업의 기회 역시 한정되어 있어 공동체 연대감은 파손되었으며, 구성원 간의 경쟁의식은 높아져만 가고 있다. 특히 도시지역에서 현대식 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생존경쟁의 사슬에 묶여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종교나 인종집단 사이의 이질감은 아주 자연스럽게 과장되고 왜곡된다. 또한 권력을 가진 집단은 필연적으로 자기 집단의 이익에 편향되기 마련이고, 나머지 집단은 차별이라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개발은 사람들에게 인위적인 결핍감을 느끼게 했고, 그 결과 구성원 사이의 경쟁의식은 더욱 커졌다. 사람들은 서구식 모델을 표준으로 삼아 모든 행동과 사고를 그에 맞게 따르라는 압박을 받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금발이 아니고 푸른 눈을 갖고 있지도 않고, 자동차를 두 대씩 갖고 있지도 않다. 강요된 서구의 표준 이미지를 추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고유문화와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