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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라다크로 부터 배우다

티베트를 포함한 히말라야 인근의 다른 지역 처럼 라다크는 수세기 동안 외부의 영향에서 독립되어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온 곳이다. 혹독한 기후와 척박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라다크 사람들은 별일 없이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살았다. 그것은 분명 그 곳 사람들의 강한 자립심에서 비롯된 검소한 생활태도와 그를 둘러싸고 있는 불교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최근 수세기 동안 라다크 사회에 나타난 급격한 변화는 세계화 추세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가 점점 더 작아지고 사람들 사이의 거리가 점점 더 가까워짐에 따라, 예전에는 고립된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지구촌 가족의 영역안으로 들어오게 된 것이다. 각국의 정부와 대기업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 경제성장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 과정은 위에서 아래로 향하는 획일성을 지닌 것이며, 지역의 문화 및 생물학적 요구에 지극히 무감각한 들이다.  글로벌 경제화에 의해 파생된 문제점들은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다. 지역경제 부흥운동을 통해 상호보완과 협동의 터전이 되는 공동체의 기초가 마련되 아직 희망은 있다.

 

사회의 지배구조가 지역차원으로 복원됨에 따라 사람들은 관료체제하의 비효율적이고, 파괴적인 정책들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풍요로운 자급생활을 지속하면서 자신들의 경제적 미래에 대해 책임의식을 갖게 된다. 가족과 공동체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자연친화를 유지함으로써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민간주도의 아래로부터의 영향력이 인간주의의 자연스러운 요구에 뿌리를 두는 것이 중요하다. 막강한 파워를 과시하는 독점 거대기업들은 투기성향을 조장하는 경제구조를 확산시키고 있으며, 그것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삶까지도 숨가픈 속도경쟁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거대기업 조직내에서의 전문화 확산 현상은글로벌 경제 성장을 추진하는 주도 세력의 편협한 시각을 더욱 편협하게 만들고 있다. 

 

결론적으로 경제전략가들은 한 세기가 넘도록 거대기업에 수익을 가져다 주는 무역 확대를 장려하는 중간상인의 역할을 수행하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다국적기업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오늘날 이 다국적 기업들은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 웬만한 정부를 넘어서고 있다.  그러한 기업들의 영향력은 자유무역 조약들에 의해 더욱 강화되고 있다.  그로인해 기업들은 환경규제가 느슨하고, 임금과 세금이 더 낮는 곳을 찾아 이 나라 저 나라의 국경선을 넘나들 수 있게 되었다.  또 경제 성장을 바라는 저개발국의 경우 정부측에서 오히려 다국적 기업들에게 사업부지 무료제공이나 세제 혜택, 자본대여 등 갖가지 혜택을 제안하면서 사업의 유치와 기업의 잔류를 유도하기도 한다.

 

정부는 기업들에게 글로벌 경제체제로서의 동침을 장려하고,  다국적 기업들로의 합병을 부추기는 동시에 그러한 경제체제가 유지되고, 활성화 되는데 필요한 인프라 구축에 적극성을 보이고 있다. 심각한 것은 첨단기술을 앞세워 지구촌 자연환경의 생물학적 요구와 경고, 문화적 다양성을 무시한 채, 획일화된 개발을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생명이 지속되는 것이 궁극적 으로 다양성에 근거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인류 문화는 지역적 적응과정을 통해 세대를 이어가며, 자신과 자연의 욕구를 서로 충족시켜왔다. 그런 과정에서 생태계에 변화를 가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안전성을 손상시켰던 적은 없었다. 세계화라는 것은 지역과 국가경제를 하나의 세계체제속으로 통합시키려고 한다.  지역적응 형태의 농업생산 체계들을 균일화 하려고 시도하는 한편, 그것들을 중앙통제와 살충제 과다사용, 수출위주의 단작 생산의 특징을 갖는 산업형 농업 생산 구조로 대치하려고 하며, 이것은 세계시장으로의 수송이 용이한 한정적 품종이라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 과정에서 농부가 하던 일은 자본 집약적 기계류가 대신하게 되었고, 자유공동체에 의해 이루어지던 다채로운 품종들의 생산은 수출에 유리한 단품종 수익작물로 대체 되었다.

 

개발도상국의 경우 도시화라는 것은 혼잡한 빈민가 실업, 빈곤, 열악한 위생시설, 오염 등과 같은 수많은 사회문제의 원인과 동일한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선진국마저 대단위의 도시화는 공동체 해체의 직접 원인이 되고 있으며, 그 부작용으로 소외현상에서부터 범죄, 폭력, 마약 등의 사회문제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최근 연구에서 광고와 소비중심 문화에 지나치게 노출된 아동들에게 우울증과 불안감, 자존심 상실, 심신 불만족이 원인이 되어 두통이나 복통증세가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보고 하고 있다. 우울증은 심장질환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대표적인 선진 산업사회 질환 요인으로 자리 잡을 전망이다. 다양성이라는 것이 생태계에 있어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주는 것처럼 인류의 문화에 있어서도 다채로움과 서로의 다른 점을 수용하려는 태도는 풍요롭고 조화로운 발전에 진정한 기초가 된다.  그리고 기초생활의 자급자족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거대기업과 대중매체를 통해 광고된 유토피아적 개발의 허상에 대항할 수 있는 강력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서구형 경제개발 모델이 현실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문화와 정서 그리고 환경적 측면 모두에 지속성을 갖지 못할 것이다. 토산식품은 먼 지역에서 수송되어 온 식품에 비해 더 신선하고 더 맛있고 영양이더 풍부하다는 것이다. 거대기업이 대중들과 정부정책을 조정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참여 민주주의가 강화될 수 있으며, 정부가 자유무역과 거대 기업들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떻게 소규모 농경인들과 그들이 운영하는 지역매장들이 발전할 수 있겠는가? 공원을 가로질러 새 도로가 나거나, 200년된 교회옆에 철제와 유리로 된 건물이 들어서거나, 길모퉁이 가게 대신 현대식 대형 마트가 들어서는 것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며, 현대생활이라는 것은 그렇게 매일매일 힘들고 숨가쁘게 계속되는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우리가 속한 사회/경제적 시스템과 보다 근본적이며, 자연과 인간의 공동진화에 기초를 둔 또 다른 시스템을 비교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부정적 현상들이 우리의 영향력 밖에 있는 자연적 혹은 진화적 요인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 속해있는 산업문화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우리는 그저 인류는 본질적으로 이기적인 심성을 가지고 있어서 생존을 위한 경쟁은 당연한 것이며 서로 돕는 사회라는 것은 유토피아적인 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새로운 정보에 눈을 뜬 것은 사실이지만 결국 나 자신은 본질적으로 산업사회의 산물일 뿐이며,  자신의 영속성을 위해 편향적인 교육을 받는 존재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을 뿐이다.  가치관, 역사에 대한 이해, 사고의 유형 모두 산업사회형 인간의 세계관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세상 모든 사회는 스스로를 우주의 중심에 두고 색깔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다. 또 모든 사람이 자신과 같거나 자신처럼 되고 싶어 한다고 전제한다.  오늘날 제3 세계국가가 겪고 있는 많은 사회문제들은 주로 식민주의와 잘못된 개발의 결과물이다.  지난 수십년 동안 알라스카에서 오스트레일리아에 이르는 세계 전역의 다채로운 고유문화들은 산업화가 조장하는 획일화 된 문화로부터 침략을 받았다.  그런 침략의 주역이 되었던 현대의 정복자들은  우리가 개발, 광고, 미디어, 관광이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다양한 인종들이 정체성을 위협받게 되면서 필연적으로 갈등과 사회붕괴 과정이 뒤를 이었다. 서구의 문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단 하나뿐인 표준적인 문화로 인식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성향이 더욱 경쟁적이고, 탐욕스럽고 이기적인 모습으로 변해감에 따라  그런 성향들을 어쩔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치부해 버린다. 인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공격적인 것이며, 진화론적 투쟁 논리갇혀 있는 것이라는 가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서구 주류 문화에서는 발생하는 문제점의 원인을 인간의 내재적 결함탓으로 돌리면서, 개발이나 진보로 불리는 구조적 변화에 있어 자신이 정말 해야 할 역할은 무시해버린곤 한다. 사람들은 서양인들이 전통적 문화권의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많이 진화 되었다고 주장한다.  개발진행 과정에서 탐욕과 경쟁과 공격성의 경향이 가속화되었고, 사회 붕괴의 가능성이 증가했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기후를 변화시키거나 바다를 오염시키고, 산림이나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 불가능했고, 지금 처럼 사회와 문화를 붕괴시키는 일을 상상하기도 힘들었다.  대규모의 환경파괴, 인플레이션, 그리고 실업사태 같은 문제들은 좌익이나 우익같은 정치문제와 상관없는 기술/ 경제적 요인으로 생겨난 것들이다.

 

내가 처음 알게된 라다크 사회는 폐기물이나 공해 그리고 범죄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무척이나 건강하고 강했으며, 어머니나 할머니에게 다정한 말을 건네는 십대소년의 모습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던 곳이 라다크였다. 그런 라다크 사회가 현대화 압력 때문에 붕괴되어 간다는 사실은,  그것이 라다크에게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지금의 이 복잡한 문화상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한 기준이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진보라는 것에 의해 사람들이 자신이 알고 있는 대지와 분리되고, 이웃들과 분리되고, 결국 자신으로 부터도 분리되는 모습을 지켜 보았다. 오늘날 우리는 갈수록 편협해지는 근시안적 시각으로 인해, 수 많은 사회문제들의 근본 원인을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다. 말 그대로 나무는 보고 숲은 보지 못하는 것이다. 또 서구의 문화는 장기적이고, 폭넓은 시야 대신에 보다 전문적이고 즉각적인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전문가들에게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경제개발과 자본의 힘은 사상 유례없는 전문화와 집중화와 자본과 에너지 집약적인 생활방식쪽으로 이 세계를 몰고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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