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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을 버리면 병 안 걸린다.(아보

6장 생명력을 만들어 주는 생활 습관-1

 

고령자에게 암만큼 두려운 병은 치매일 것이다. 몸이 건강해도 치매에 걸리면 어찌할 도리가 없다. 주변에 치매 걸린 사람이 있으면 알겠지만 몸이 아픈 것 이상으로 심각하다. 면역력이란 관점에서 보면, 치매는 호기심을 잃거나 몸을 움직이지 않아서 생긴 결과이므로, 과로로 인해 발생하는 암 등의 질병과는 반대로 지나치게 편안한 상태가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치매환자는 대개 림프구가 보통 사람보다 많다. 고령자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어버리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치매위 위험이 높아진다.  직장생활을 할 때 부하직원에게 시키기만 하던 사람이 은퇴 후에도 계속 주변의 보살핌을 받으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치매에 걸린다. 고령화 사회가 진행되면서 건강하고 활기차게 생활하는 고령자가 늘어난 것은 좋은 일이다. 고령자라고 존경받는 시대는 지났다. 자신이 젊은이에게 짐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치매를 앓고 있는 고령자를 보면 오래 사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숟가락으로 환자의 입까지 음식물을 옮겨주고, 의식이 없으면 주사로 영양분을 주입해서 생명을 연장시킨다. 음식을 먹여주는 것은 괜찮다고 하더라도 주사로 영영분을 공급해서까지 생명을 연장시키는 것이 의미있는 일일까? 먹을 힘도 사라지고 의식도 거의 없는 상태에서 그저 생명을 유지하는 것만이 목적인 의료, 살아갈 힘이 이미 사라졌는데도 생명의 끈을 간신히 이어주는 것이 현재 우리의 의료상황이다. 면역학 이론에서는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주사로 영양분을 주입하면, 대식세포는 병을 고치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대식세포는 이물질이 침입했을 때 지령을 내릴 뿐 아니라, 조직이 손상되었을 때 그것을 복구하는 지령을 내리기도 한다. 또한 칼슘이 부족하면 세포의 물질교환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않아 신진대사가 떨어지는데, 이때 대식 세포는 지령을 내려 뼈 일부를 파괴해 부족한 칼슘을 보충하도록 한다. 영양분이 너무 많으면 이것을 축적하도록 명령한다. 영양분이 들어오지 않으면, 대식세포는 몸의 기능을 최소한의 음식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조절한다. 축적한 영양분을 다 사용했을 경우 근육이나 뼈 등 일단은 불필요한 부분까지 에너지로 전환한다. 인류 역사에서 보면 기아의 시대가 훨씬 길었다. 따라서 우리 몸은 원래 기아에 대응할 수 있는 매카니즘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기능을 담당해 온 것이 대식새포다. 스스로 식사를 할 수 없는 사람에게 주사로 영양분을 공급하는 것은 오히려 병과 싸울 힘을 없애는 것과 같다. 나을 병이라면 먹지 않는 편이 고통도 없고 빨리 낫는다. 대식세포가 영양을 처리하는 역할에서 해방되면, 병을 고치는데 집중하게 되어 면역력을 효과적으로 발휘한다.

 

야생동물이 병이 나면 아무것도 먹지 않고 회복되기만을 기다린다. 본능적인 몸의 소리를 듣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병을 고치기 위해서 먹어야 한다고 생가한다. 몸이 정말로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면 식욕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프면 식욕이 떨어진다. 그런데도 억지로 영양을 공급하니 병이 낫지 않는다. 젊을 때는 다치거나 병에 걸려도 현대 의학의 힘으로 충분히 고칠 수 있다. 그러나 고령자가 무리를 하거나 반대로 지나치게 편한 생활을 하면서 얻은 병은 서양의학의 대증요법으로 효과가 없다. 그 사람의 생명력이 중요하다. 아직 생명력이 남아 있다면, 주사로 영양을 공급받는 것은 그만 두고, 대식세포를 병과 싸우는데만 집중시키면, 병은 호전 될 것이다. 그러면 자연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힘도 회복된다. 생명력이 남아 있지 않다면 고통도 거의 느낄 수 없다. 그리고 그대로 편안히 눈을 감을 수 있다.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는 환자에게 억지로 영양을 공급하면, 대식세포는 생명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병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다. 고통도 오래 갈 수 밖에 없다. 아마존의 인디오 처럼 임종이 가까이 왔을 때는 그 사람의 생명력에 모든 것을 맡겨도 되지 않을까? 생명력이 다 소진되었다면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다.

 

장수란 몸과 마음이 다 건강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장치에 의존해 백살까지 산다해도 축하 받을 일이 못된다병원 침대에서 약에 절어 숨만 쉬고 있다면 주변 사람에게 짐만 될 뿐이다.  의학이 발전하면 수명은 길어지지만 생명유지 장치에 의지해 살아가는 노인 역시 늘어난다. 자신의 죽음 조차도 스스로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생명력이 고갈되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에게 억지로 영양을 주입하면, 대식 세포는 거기에 반응해야 하기 때문에 쓸데 없는 힘을 쓰고 결국 고통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불필요한 영양분이 없으면 고통을 느낄 에너지도 생기지 않는다. 옛 성인들은 죽음을 직감하면 단식을 하면서 꽃이 시들듯 편안하게 죽어갔다고 한다.

 

문자도 화폐도 없는 아마존의 원주민들의 세계를 우리는 미개한 문명이라 얕본다. 그러나 그들은 빈부의 격차도 없고, 몸과 마음에 부담을 주지 않는 생활을 한다. 피곤하면 사냥에 나가지 않고 며칠씩 굶는다. 지금은 자는 것이 중요하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감정 표현이 풍부해 즐거우면 웃고, 슬프면 울며, 기분이 나쁘면 화를 내지만, 행복이나 불행, 외로움 같은 복잡한 개념 같은 것은 갖고 있지 않다. 인디오들은 현대인이 잃어버린 인간 본연의 날카로운 감각을 간직한 채 대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문자가 없는 것이 기억력이나 감정을 기르는데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그들은 아주 멀리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시력이 좋으며 울음소리를 듣고 어떤 동물인지, 그곳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심지어 그 동물이 공격할 것인지 아닌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인간은 애초에 이러한 감각을 가지고 있었어나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앞에 앉아 있기만 하면 온갖 정보를 알수 있지만 직접 보고, 만지고, 느끼는 체험의 기회는 줄어들었다.  문자 덕분에 지식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으나, 지식에 지나치게 의존한 결과 여러가지 폐단도 나타났다. 또한 자신의 경험보다 과거의 지식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