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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함을 버리면 병 안 걸린다.(아보

현대인은 일을 너무 많이 한다

아보도루:면역학의 세계적인 권위자, 니가타 대학 대학원 교수

 생활이 풍요롭고 편리해 졌는데도 여전히 병에 걸리는 사람이 많고, 수명은 길어도 병석에 누워 생을 마감하는 사람 역시 많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두가지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시대와 함께 병의 원인과 종류가 변한다는 사실을 의사도, 환자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50년 전에는 추위, 기아, 육체적 중노동 같은 가혹한 생활환경에서 비롯된 병이 많았다. 현대인이 병에 결리는 원인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

 

작은 일에도 끙끙대고 고민하거나, 지나친 성실함으로 인한 일상적인 부담이 오랫동안 누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아이들이 단것을 너무 많이 먹거나 과보호를 받으며 자란 탓에 스트레스를 견디는 힘이 약해지기도 한다. 병의 원인과 과정을 알면 여기에 맞게 생활방식이나 습관을 바꿔서 병을 고칠수 있다. 병의 본질이 생활방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려면, 유전자의 이상보다는 몸 전체를 관장하는 조절계나 방어계, 순환계 등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야 한다. 조절계의 기본은 자율신경이며 방어계는 백혈구 시스템을 가르키고 순환계는 체온과 대사수준을 결정한다. 여기서 병의 원인이나 진행 과정이 밝혀진다. 지금의 의학은 약으로 병을 치료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약은 고통스러운 증상을 덜어주기 위한 대증요법  (겉으로 들어난 증상에 대응하여 치료하는 치료법)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치료에 장시간 의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의사나 일반인 모두 인식해야 한다.  주변사람을 신경쓰는 사회적 특성 때문에 다른 직원들이 남아서 야근을 하면, 혼자 퇴근하기가 눈치보여 괜히 덩달아 야근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퇴근이 늦어지면 취침도 늦어지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기도 힘들어 진다. 이런 생활이 계속되면  피로에 지친 우리 몸은 어느 순간 더 견디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이 소리를 무시하면 병에 걸리고 만다.

 

과로만큼 건강을 해치는 것이 또 있다. 컴퓨터를 장시간 사용하는 일이다. 최근에 컴퓨터가 가정과 직장에서 거의 필수품이 되었다. 전등이 밝은 사무실에 오래 앉아 있으면, 시신경에 자극을 계속 주게 되어 눈이 피로해진다.  거기다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을 두드리다 보면, 눈에 피로가 계속 쌓인다. 병이 걸릴 위험도 자연히 커질 수 밖에 없다.  컴퓨터 앞에서 오랜 시간 집중을 하게 되면 자율신경 중에서 교감신경의 긴장 상태가오래 지속된다.  면역력을 가장 크게 떨어뜨리는 행동은 장시간 일어서 있거나, 점멸하는 빛을 계속 보면서 눈을 피로하게 하는 것이다. 밤 늦게 컴퓨터로 일을 하는 것은 이 두 가지 행동을 동시에 하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보더라도 낮에 보는 것이 훨씬 낫다.

 

자율신경이란 스스로 의식해서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신경을 말한다. 자율신경에는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이 있는데,  이 두 신경계는 상호작용을 통해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흥분 상태일 때는 교감신경이 작용하고, 안정상태일 때는 부교감신경이 작용한다.  낮에 활동할 때는 교감신경이 우위가 되며 식사나 휴식을 할 때는 부교감신경이 우위가 된다. 건강한 사람은 자율신경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침이 없고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장시간 일하고 밤 늦게 자는 생활이 지속되다 보면 아무래도 교감신경의 우위가 오래 지속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몸은 낮에 활동 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활동을 쉬는 밤에는 부교감신경 우위 상태로 바뀐다. 그러나 밤에도 쉬지 않고 일하면 교감신경 우위 상태가 계속되므로 당연히 건강을 해치게 된다. 아침형 생활이 건강에 좋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퇴근후 스트레스를 푼다고 인터넷이나 컴퓨터게임을 하면서 밤 늦게까지 눈을 혹사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밤에는 되도록 일찍 잠자리에 들어 수면 시간을 확보하고, 휴일에는 충분히 쉬어주는 등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자기 몸을 지킬수 밖에 없다.

 

군발두통이라는 것이 있다. 군발두통이 일어나는 매카니즘은 다음과 같다. 과로, 스트레스 등으로 피로를 느끼면 탄산가스가 몸에 쌓인다. 이 때문에 혈관의 산소분압 (혈액중 단위 부피당 탄산가스양)이 떨어져 탄산가스 분압이 올라간다. 그러면 우리 몸은 이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혈관을 넓혀 산소를 몸 속에 많이 들여보내려고 한다.  이때 통증이 발생한다.  즉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때는 두통이 일어나지 않는다.  긴장이 풀리고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때 프로스타 글라딘이나 히스타민 같은 화학 전달물질이 분비되어 혈관을 확장하고 혈류를 회복하는데, 이 과정에서 두통이 일어난다.  군발두통에 산소흡입이 효과적인 것은 통증의 가장 큰 원인이 산소부족이기 때문이다. 산소를 공급하는 방법은 어디까지나 응급처치 일뿐이다.  두통의 근본 원인은 스트레스나 과로이므로 생활습관을 개선하지 않으면 응급처치로 당장은 고통을 모면하더라도 머지 않아 다시 일어난다. 아무리 젊다고 해도 생활을 바꾸지 않은 채 습관적으로 약을 먹고 통증이 심할 때마다 산소를 흡입하다 보면  두통은 점점 악화돼 군발두통이 더 자주 일어난다.  이러한 증상은 우리 몸이 내지르는 비명이라고 봐야 한다.  이런 생활을 계속하다가는 '큰 병에 걸리고 말거라'는 경고인 것이다. 건강을  지키려면 이 소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한다.

 

몸이 피로할 때 혈액을 체취해보면 색깔이 검붉다. 혈액 속에 산소가 적게 분포하기 때문이다.  즉 몸이 피곤하면 혈액의 산소분압이 떨어지고, 탄산가스 분압이 올라가므로 혈액의 색깔도 검붉어진다.  여기에 산소가 들어가면 혈액은 다시 선명해지고, 깨끗한 붉은색을 띤다. 일시적으로 산소를 마시면 산소분압이 올라가므로 피로가 풀리는 효과를 느끼게 된다.  산소는 무조건 많이 마시는 것이 좋을까? 꼭 그렇다고할 수는 없다. 산소를 너무 많이 마시면 노화가 빨리 진행될 수 있다. 노화를 촉진시키는 활성산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호흡수가 잦은 것도 산소를 많이 마시는 것이므로 마찬가지다. 반대로 산소가 적은 상태는 어떻게 될까? 고산지대처럼 산소가 희박한 지대에 가면 우리 몸은 활동성이 떨어진다. 이것은 몸에 부담을 덜 주는 방향으로 우리 몸이 알아서 조절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곳에 가면 잠이 자꾸 온다. 일본의 나가노현은 장수지역으로 유명한데, 그 이유중 하나가 공기의 양이 적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활동성을 억제하여 몸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인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한다.  목욕으로 몸을 따뜻하게 해주면 산소를 호흡하는 것만큼 급격하지는 않지만,  피부를 통해 산소가 흡수되면서 혈액 속의 산소분압이 서서히 올라간다. 목욕하면 피로가 풀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이 정도의 산소흡수는 노화를 촉진하지 않는다.  건강을 해치지 않는 적당한 피로란 목욕을 하고 푹자면 풀리는 정도를 말한다. 목욕을 하고 잠을 푹 자도 다음 날까지 피로가 풀리지 않는다면, 과로를 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