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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어린 시절이 인생을 좌우하는가?

유년기는 두가지 방식으로 노년에 영향을 끼친다. 유년기에 아이는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믿음, 자율성, 독창성을키워 나간다. 그 사건들은 아이들이 지닌 희망과 자의식을 폭넓은 인간관계와 사회적 유대로 확장 시키며, 그것이 결국 풍요로운 노년의 밑받침이 된다. 수면자 효과( 같은 정보가 일정한 간격으로 거듭 들어오지 않으면, 애초 정보가 지워진다는 심리학 이론)도 있다. 유아가 강하게 애착을 가졌던 일들이 우연이나 비극적인 사건을 거치면서 잊혀졌다가 몇십 년이 지난 뒤 기억이 다시 살아나기도 한다. 오래 지속해 온 행복한 결혼생활과 성공적인 노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둘다 인내와 희생, 성숙과 유머 감각이라는 영양제가 있어야 성취될 수 있다.

 

성공적인 노년의 비결을 묻자 홈스 판사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소개했다.

“ 정답이 없다는 걸 알더라도 소크라테스처럼 끝없이 진리를 탐구하라. 뇌세포를 움직여라. 프로이드가 말하듯이 일하고 사랑하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를 사랑하고 돌보아라. 우울할 때 말고는 절대 지난 날을 깊이 생각하지마라. 이겨내기 어려워 보이는 문제들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해라. 미래를 걱정하지 마라. 모든 것이 끝나기 전까지는 끝난게 아니다."

 

유년기가 성인기의 행복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의 과학적 관점들에 따르면 그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것 만큼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버드 연구 대상자 중에서 가장 훌륭하게 노년을 보낸 사람과 최악의 노년을 보낸 사람의 유년기를 비교해 보왔을 때, 둘 사이에는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 어린 시절 손톱을 물어 뜯는 습관이 있었다거나, 일찍 대소변을 가렸다거나 늘 감기를 달고 살았다거나, 신경이 예민한 어머니를 두었다고 해서 모두가 정서가 불안해진다거나, 불행한 노년을 맞이하는 것은 아니었다. 만족스러운 노년으로 이끄는 가장 중요한 요소증 하나로 수입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 연구의 세 집단을 살펴본 결과 정서적인 풍요로움이 훨씬 중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훌륭한 정신건강과 성숙한 방어기제, 온정이 넘치는 친구관계, 존경하는 아버지와 사랑하는 어머니 등의 요소들은 미래의 고소득을 예측하게 하는 요소들이다. 알콜 중독자를 부모로 둔 아이들은 열이면 열 모두 불행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해 보면 유년기의 불행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덜 중요해진다.

 

유년기에 불행했느냐, 행복했느냐에 따라 대학 생활에 적응해가는 양상은 매우 다르게 나타났다. 중년에 들어설 무렵에도 유년기를 어떻게 보냈느냐 하는 점이 중요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노년기에 접어들면 유년기의 행복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행복한 유년기는 미래의 고통을 물러칠 수 있는 힘을 키워주지만, 그렇다고해서 하바드 졸업생이나 이너스티 출생자들에게 불우한 유년기가 반드시 불행을 안겨주지는 않았다. 50세가 되자 하버드 연구대상자중 80명이 정신질환(심각한 우울증, 알콜이나 마약남용 등)을 앓았다. 정신질환을 앓았던 이들중 절반 가량은 75세 이전에 사망했다. 정신질환을 앓지 않았던 사람은 111명 중 75세 이전에 사망한 사람은 단 12명 뿐이었다.

 

공격성을 통제하는 것은 성적인 친밀감을 확득하는 것만큼이나 섬세한 자아의 균형감각이 필요한 행동으로서, 미래에 성인으로서 이루어야 할 주요과업, 즉 친밀감, 작업적 안정, 생산성에 영향을 끼친다. 건강한 70세의 대부분은 화가 미치는 상황에서 느긋하게 마음을 가라앉힐 줄 알았다. 이런 차이는 모두 어린시절 부모가 슬픔이나 사랑, 분노의 감정을 잘 다독여 주고 자상하게 보살펴 주었는가, 아니면 아이의 다양한 감정 표현을 부정적으로 치부해버렸는가 하는 것에 좌우된다. 노년의 신체건강에 악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는 우울증 뿐만 아니라 알콜중독, 흡연, 자기방치, 만성질환, 불행한 유년기 등을 들 수 있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러나 특정한 암이 박탈감 때문에 고통을 겪을 수는 있지만, 병이라고 까지는 볼수 없다. 사랑했던 사람을 잃으면 눈물을 흘릴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환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톨스토이의 말처럼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만이 크게 슬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슬픔을 치유하는 것도 역시 사랑이다. 노년의 삶은 이제까지 사랑해온 모든 것들을 합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어느 누구도 잃어버리지 않고, 고이 간직하는 것은 소중한 일이다. 인생의 후반기에 이루어야 할 과업중 하나는, 인생전반에 사랑했던 모든 이들을 다시 찾아내어 그 사랑을 회복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