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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조지 베일런트 지음, 이덕남

사람은 어떻게 성숙하는가?-2

 애덤 카슨의 일생

* 정체성: 부모로 부타 독립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스물다섯살에 하버드대 의과대학을 나와 종합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했다. 그 후 학교로 돌아와 학생을 가르치고 연구에 열중했다. 

* 친밀감: 스물두살에 결혼하여 시간이 갈수록 결혼 생활은 무미건조 했으며 부부간의 싸움이 잦아졌다. 서른 여덟살에 결혼생활에 지쳐버린 카슨은 자살을 떠올리기도 했다. 그 뒤로 15년 동안 그 상태로 결혼 생활은 지속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침밀감이 유지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직업적 안정: 연구에 열중하여 날이 갈수록 연구에서 얻는 기쁨이 점점 더 커지고 보람을 느꼈다. 마침내 의과대학에서 종신 재직권이 있는 부교수가 되었다.

* 생산성: 47세 카슨은 이혼한 뒤 새 아내를 맞아 행복하게 살고 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카슨은 변했으며, 연구자가 아닌 개업의로 환자들과 생산적인 관계를 맞는 것에서기쁨을 만끽하고 있었다. 병원을 개업한 후 그는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는 진정 나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다고 했다. 50세가 되어서도 카슨은 카슨의 눈에는 가족, 부모, 교회 일만 눈에 들어 올 뿐이었다. 국가적 혼란도 모두 관심 밖이었다.

* 의미의 수호자: 65세가 된 애덤 카슨은 단순히 환자를 돌보는 것을 넘어 의학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폭넓어졌으며,  의학의 전통과 윤리적 기초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다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환자들과 의사가 소통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는 의미의 수호자가 되어 있었다.

* 통합: 75세가 된 카슨은 인생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것 중의 하나는 너무 쉽게 지쳐버린다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카슨은  우리 모두 땅에서 태어나 땅에서 성장하고 다시 땅으로 돌아가게 될 거라면서, 이제 자기만의 자잘한 걱정꺼리에서 멀찌감치 물러나 있었다.

 

카슨이 각 삶의 과업을 성취해 가는 과정 역시 여느 사람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불완전 했다. 그러나 카슨은 삶의 여섯가지 과제를 훌륭히 완수 했다. 인간의 상장은 흑 아니면 백으로 구분되기보다 회색을 띤다. 노년이라고 놀고 마시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아니다. 나이가 들면 신경도 둔해지고 반사작용도 느려진다. 40대가 되면 훌륭한 유격수가 되기 어려우며, 75세를 넘기면 눈과 귀가 어두워지고 기억력이 떨어지고 관절이 쇠약해져서 활동에 제약이 오기 시작한다. 그러나 인간은 평생 동안 무의식 방어기제를 통해 스스로를 치유할 수 있다.

 

오래전 플라톤은 현명한 마부는 ‘욕망’과 ‘복종이라는 말을 균형있게 다룰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위험에 처할 때 사람들은 감정이나 욕망을 못본척하고 지나친다. 성공적인 삶은 지나친 욕망과 모험, 또는 과도한 경계나 자기보호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언제든 기쁜 마음으로 남에게 베풀고, 자기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며, 자아를 발전시키기 위해 어느정도 까지는 욕심도 부려보면서 균형감있게 살아갈 때 성공적으로 늙어갈 수 있다.

 

무의식 방어기제들 중에는 투사, 수동 공격성, 분열, 행동화, 환상 처럼 나쁜 영향을 끼치는 기제도 있다. 우리는 흔히 이런 기제를 인격장애와 연관짓기도 한다. 투사가 일어날 경우 받아들이기 힘든 감정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한다. 수동공격성을 가진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향해 매우 도발적인 방식으로 화를 풀기도 한다. 사춘기나 인격장애 환자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이러한 방어기제들은 때로는 죄악의 형태에 이르기도 한다. 사회적 비난 대상이 되는 행동들로는 자기도취, 사디즘이나 마조히즘(수동공격성), 편견이나 흠잡기, 범죄행위나 아동학대(행동화), 과음이나 무관심(분열) 등이 있다. 이러한 미성숙한 방어기제는 단기적으로는 위안을 주지만, 결국 이전 보다 한층 더 상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성숙한 방어기제들은 좀 더 바람직한 방어전력들로 발전된다. 승화, 유머, 이타주의, 억제가 그 예이다.

 

철없는 행동을 일삼는 사춘기 아이들도 모범적이고 성숙한 성인으로 자라날 수 있다. 그러나 성숙을 위해서는 정서의 발달과 수년에 걸친 경험,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뇌는 생물학적으로 끊임없이 발전한다. 우리는 본대로 느끼지만 모든 것을 행동에 옮기지는 않는다. 유머를 잘 이용한다면 고통도 웃음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타주의는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품으로써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다. 억제 또는 금욕은 이타주의나 승화,  유머와 같은 깊은 인간애와는 관계가 없다. 실제로 심리치료사들은 억제가 어떤 성과라기 보다는 일종의 실패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효과적으로만 사용하면 억제는 균향을 잘 잡는 돛대 역할을 할 수 있다. 모든 제약들은 욕망이라는 바람을 덮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욕망을 불러일으키게끔 되어 있다.

 

이 네가지 성숙 방어기제들은 성숙뿐만 아니라 미덕과도 연관된다. 이타적으로 행동하고(이타주의), 예술적 창조로 갈등을 해소하거나 쇳조각을 황금으로 변화시키며(승화), 밝은 면만 보려고 인내하거나(억제), 지나치게 심각한 태도를 취하지 않는(유머)행동이 모두 미덕에 포함된다.

 

수잔의 어머니는 에릭슨이 말하는 유아기에 꼭 성취해야하는 세가지 발달 과업, 즉 기본적 신뢰, 자율성, 주도성을 성취하지 못하도록 딸을 가로막았다. 수잔은 스스로 좌절함으로써 어머니를 이길수 있었다. 친구들은 수잔을 괴롭히길 좋아했다. 수동 공격성은 자아를 위축시키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학대를 불러일으키는 방어기제다. 하지만 수잔은 사춘기의 수난을 극복하고 닮고 싶은 조언자를 발견했고, 어머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죄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감정의 표출이라고 받아들였다. 사랑하는 배우자를 만나 40년 이상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유지했으며, 마음속에 사랑하는 사람을 담고 사랑하는 감정을 그대로 인정하며 안전하게 그 감정을 지켜갈 수 있게 되었다. “ 나는 이제 초라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아요. 결혼한 뒤에야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달았어요. 내 능력의 한계를 깨달을 때가 많았지만, 아들을 키우는 일만큼 즐거운 일은 세상에 없어요.” 원한 이나 회한을 품고 사는 인생보다는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는 삶이 더 재미있다. 수잔은 주부로 살아가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했다.

 

경쟁하다(copmpere)라는 동사는 어원을 따져보면 함께 추구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competere'에서 나온 말이다. 경쟁은 놀이로 변환될 때 흥미로운 것이다. 이타행위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가 해주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바라는 일을 해주는 것이다.

 

빌 러먼은 음주와 미성숙한 방어기제가 삶을 폐허로 내몰다. 나이가 든다고 해서 반드시 성숙해 지는 것은 아니다.  가뭄으로 인해 잘 익은 곡식이 메말라 버리기도 하고, 불량 코르크 마개 하나 때문에 최상급 보르도 와인의 질이 떨어져 버리기도 한다. 사고나 질병, 사회적 재난을 겪지 않고 늙어가는데에는 어느 정도 행운이 따라야한다.  성인이 성숙한 방어기제를 가지지 못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하는가? 에릭슨이 제시했던 삶의 과업들을 모두 무시해 버리는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인간의 성숙은 결국 중년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두뇌발달에 달려있다. 두뇌에 손상을 입을 경우 정상적인 성숙과정이 파괴되거나 역전되며, 한 개인은 영원히 위태로운 미성숙 상태로 남는다. 우리 연구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었던 두뇌 손상 원인은 알콜 중독이나 심각한 우울증이다. 빌 로먼은 불행하게 살아왔지만 상류계급의 관습에 얽매여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했다. 그의 침착하고 세련된 겉모습은 사교를 위한 위장일 뿐 자세히 살펴보면 불안한 기색이 역력한데다 사람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로먼은 다른 사람이 자기 삶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수입은 많았지만 휴가를 즐기지도 않았고 시민활동에 참여하지도 않았으며, 자신 말고는 그 누구도 믿지 않았다. 빌 로먼 아버지는 1929년 사업에 실패한 뒤 자살했다. 하지만 로먼은 아들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어머니 품안에서 성장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사랑했으며 아들이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2차 세계대전에서 로먼의 지휘관은 로먼에 대해 “ 충성심이 투철하며,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침착하고 냉정한 자세를 잃지 않았다. 또한 언제나 유머감각이 있었다” 라고 묘사했다. 로먼은 전쟁이 끝난뒤 하버드 법데로 다시 돌아왔고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뉴욕으로 건너가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으며 주말마다 골프나 브릿지 게임을 즐겼다. 사교생활을 즐겼던 로먼은 주말마다 술을 마셨다. 술 때문에 사나흘 씩 우울증에 시달리고 했다.

 

여자 친구가 청혼을 거절한 이유가 자기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와 같이 비난의 화살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행위는 투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로먼은 청혼을 거절한 이유가 자신의 지나친 음주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시인했다. 그는 어머니의 시골집의 보호막에서 그리고 배타적인 사교클럽 안에서만 살아왔다. 로먼은 한번도 다른 사람들과 친밀하게 어울려 살아본 적이 없었다. 1982년 로먼의 알콜 중독 증세는 계속 심각해졌다. 로먼의 상실감은 그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었으며, 친구나 친지들 중에 ‘기쁨과 슬픔을 나눌만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돈은 성공적으로 노년을 맞이하는 것과는 연관이 없다. 그러나 알콜 중독은 불운한 노년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