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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심리지도( 비요른 쥐프케 지음, 엄

험난한 남자의 길

왜 남자는 여자보다 자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더 어려울까? 100년전 인류의 조상과 현재의 우리는 유전형질이 거의 비슷하다. 만약  유전자의 배열이 전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고 통제한다면, 우리는 지금도 수렵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활도 역시 가치 있는 삶이될 수 있지만,  여기서 분명한 것은 생물학적인 요인보다는 환경적 요인이 개개인의 발달에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사실이다우리는 사회가 하라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부딪친다.  인생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양한 사회적 시스템에 순응해야한다는 엄청난 압박을 받는다. 사회화란 인간이 사회의 통념에 적응하는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적응은 규범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인간이 교육, 제도, 관습 등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아주 개인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생활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운 방식으로 기존 사회체제에 통합된다.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성적 편견이 존재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트럭을 운전하고,회사를 경영하고 경기장에서 난동을 부리는 사람은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도서관에 근무하거나, 노인을 돌보거나, 친구들과 전화로 수다를 떠는 사람들은 여성이라 생각한다. 만약 일상 에서 남자 양호교사를 자주 볼 수 있다면 '배려= 여성' 이라는 상투적인 등식이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 속에 자리 잡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남성적 이미지에 위배되는 사람들은 언제나 비난과 놀림을 받는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남자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부장적 질서에 편입되어 사회화 과정을 겪는다. 부모 혹은 보호자는 아이가 표현한 감정을 제대로 파악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을 설명해주며 적당하게 대응하는 것을 ‘감정반영’ 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어떤 놀이집단에서 따돌림을 당헤 어깨를 축 늘어떠린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을때  아이의 보호자가 보일 수 있는 감정 반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 아이에게 나타난 슬픈 감정을 확인하고,

* 이 감정을 아이에게 말로 표현하고,

* 감싸안고 위로한다.

 

어른이 아이의 감정을 전혀 인식하지 못하거나 잘못 해석할 때, 그 감정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다른 곳으로 주의를 돌리거나 의도적으로 무시할 때, 그 감정을 부적절하게 말하거나 심지어 처벌할 때 실패하게 된다. 남자아이들의 감정은 여자아이들 만큼 보호자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따라서 남자 아이들은 부정적인 감정을 자기 것으로 내면화 하기 어렵다.   결국 남자아이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파악하고, 그에 적절한 대처하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 많은 남자 아이들이 슬픔, 마음의 상처, 무기력감 같은 감정에 잘 대처하지못하는 일상과 맞닿아 있다. 만약 남자 아이가 이런 감정을 드러내놓고 표현한다면, 위로받기보다는 혼나는 일이 더 많을 것이다.

 

남자 아이의 최초 보호자는 대부분 엄마다.   남자아이들의 일상에는 유치원 초등학교,  놀이터 이웃을 모두 통털어도  정서적으로 접할 수 있는 남자가 거의 없다. 아빠는 가끔 존재하거나 부재중이다. 아빠가 아들과 정서적 유대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경우가 드물고, 설령 하더라도 표면적이고 피상적이다. 너무 바쁜 아빠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놀아줄 여력도,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집안에서 아빠들은 언제나 피곤한 모습이고 생각이 없는것 처럼 보인다. 간혹 강하고 힘센 권력자, 처벌하는 사람으로 군림하기도 한다. 남자아이들은 현실에서 자신의 성 정체성을 직접 인식할 기회가 흔치 않다. 그들의 생활 환경에는 닮고 싶은 대상으로 감정과 욕구를 모두 깆춘 이상적인 남자가 거의 없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무관심하거나 엄격하게 대한다면, 아들은 내면의 나약한 감정을 숨겨야만 한다. 아픔과 실망을 애써 외면하면서 이들은 아버지가 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무관심하고 엄격하게 행동 한다.

 

외향화란 인지와 행동발달의 기본이 되는 외부 지향적 경향을 의미하며, 남성 정체성 발달 과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다. 거의 모든 전형적인 남성적 특성과 선호행동들이 여기서 시작된다.  남성은 내면세계와 멀어지면서 어쩔수 없이 외부로 눈을 돌린다.  만약 감정이 행동 지침이라면 감정적 접근이 차단된 남성들은 행동의 동기를 직업적 목표 같은 외부에서 찾을수 밖에 없다. 섹스와 관련해서 “ 오늘 괜찮았어 ?” 라고 묻는다. 그는 섹스 그 자체가 아니라 섹스후 여자의 반응을 통해 만족을 느끼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외향화는 자기내면과 멀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이 외향적인 경향이 강해질수록 자기감정에 접근하는 일은 어려워진다. 남성 우울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수십년 묵은 상처들은 원래의 모습을 숨긴채 알콜 중독, 폭력성, 사회적 고립, 극단적인 자기 파괴 또는 과대망상 등 왜곡된 모습으로 그 존재를 드러낸다. 그리고 남자는 홀로 고통을 견뎌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