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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폭넓은 관심

 

평범한 남자들이 늘 걱정하고 진지하게 생각하는 주된 관심사는 아내와 자녀, 일, 그리고 개인적인 경제상태이다. 과학자는 자신의 전문적인 관심 분야가 아닌 전혀 다른 분야의 글을 읽을 때는 태도가 전혀 달라져서, 전문적인 관점을 버리고 덜 비판적으로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읽는다. 신경을 써서 읽어야 하는 것도, 자신의 책임과 관련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편안한 마음으로 읽을 수 있다. 자신의 생활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 대해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태도는 불행과 피로 그리고 정신적인 긴장이 원인이 된다. 사람은 피곤해질수록 외부적인 관심이 줄어드는데, 그럴수록 외부적 관심이 제공하는 안도감이 사라져 점점 더 피곤해진다. 외부적인 관심사에 대해서 초연하다는 것은 외부적인 관심사가 아무런 작용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정을 내리고 의지력을 발휘하는 과정은 피곤한 일인데, 이런 일을 잠재의식의 도움 없이 서둘러 해야 할 경우에는 피로감이 심해진다. 중대한 결정을 하기 전에 하룻밤 자고 생각하는 것은 현명한 태도다. 이튿날 다시 시작할 때까지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일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줄곧 일을 걱정하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일을 잘 할 수 있다. 남성들은 직장인 사무실을 떠날 때 새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지만,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성들은 일터가 곧 집이기 때문에 장소의 변화에서 오는 기분 전환을 할 수 없다. 집밖에서 일하는 여성은 자신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일에는 좀처럼 관심을 갖지 못한다. 목적의식이 사고행동을 지배하기 때문에 이런 여성은 자신의 업무와 관련없는 일에는 좀처럼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모든 종류의 폭넓은 관심사는 긴장을 이완하는 중요한 역할 외에도 여러기지 효용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로 사람들이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자신의 목적이나 자신이 속한 집단 그리고 자기 나름의 일의 방식에 지나치게 몰입하다 보면, 그러한 모든 것들이  인간이 수행하는 전체 활동 중에서 얼마나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세상에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잊기 쉽다. 세상이 보여주는 구경거리에 흥미를 갖지 못하는 사람은 삶이 베푸는 여러 특권 중의 하나를 포기하는 셈이다. 다시말해 균형 감각은 매우 소중한 것이며, 때로는 큰 위안을 주기도 한다. 우리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의 조그마한 모퉁이가 갖는 의의와 자신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짧은 순간의 의의에 대해서 지나치게 흥분하고, 긴장하며 감동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존재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런 식으로 흥분하며, 과대평가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자신이 맡은 일에 지나친 관심을 쏟는 사람은 늘 극단주의로 빠져들 위험이 있다이런 극단주의자들의 특징은 흥미를 갖는 한두가지에 집중하며 나머지는 모두 잊고 산다. 이런 극단주의적인 경향을 예방할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인간의 삶과 우주 속의 인간의 위치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젊은이들이 과거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가지고, 인류의 미래는 지나온 과거에 비하면 헤아릴 수 없을만큼 길다는 점을 분명히 알고, 우리가 살고 있는 행성이 얼마나 작은지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이 얼마나 순간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지를 정확히 인식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싶다. 나는 이런 사실들을 통해 개인이 얼마나 미미한 존재인지를 마음속 깊이 새겨주고 싶다. 위대한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은 우주의 구석구석으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도록 마음의 창문을 활짝 열어놓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인간적 한계가 허용하는 만큼 올바르게 자신과 인생과 세계를 바라볼 것이다. 행복한 생활에도 꼬일 때가 있는 법이다. 기혼 남성 중에 부부싸움을 한번도 해보지 않은 남편, 아이가 아파서 큰 걱정에 시달려 보지 않은 부모, 경제적 곤란을 겪어보지 않은 사업가, 실패와 정면으로 대결해야 하는 시기를 모르고 살아온 전문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이런 어려움에 처했을 때 걱정의 원인이 아닌, 다른 일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큰 은혜다. 

 

걱정은 되지만 당장 아무런 해결방법이 없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떤 사람은 장기를 두고, 어떤 사람은 소설을 읽고, 어떤 사람은 유적 발굴에 대한 서적을 읽으면서 마음을 달랜다. 이런 사람들은 모두 현명한 사람들이다. 반면에 기분을 전환할 수 있을 만한 일을 하지 않고, 걱정에 치여서 꼼짝못하는 사람들은 현명하지 못하다. 이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한 순간에 발휘해야 할 힘을 소진하고 있는 셈이다. 아주 하찮은 것이라도 좋으니 반드시 기분전환할 꺼리를 찾아라. 이제까지 극히 작은 관심사에만 생활이 집중되어 있고, 얼마안되는 관심사마저 슬픔에 압도되어 버린 경우에는 이런 긍정적인 기분전환방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불행이 닥쳤을 때 불행을 제대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행복할 때 폭넓은 관심사를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럼으로로써 현재상황을 견디기 어렵게 만드는 생각과 감정이 아니라, 다른 생각과 감정을 제공할 수 있는 평온한 마음가짐을 가질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죽음이 불시에 찾아와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쓰러뜨릴수가 있으며,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대상들은 죽음의 처분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처지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인생의 폭을 협소하게 해서는 안된다. 인생의 폭이 협소할수록 우연한 사건이 우리 인생의 모든 의미와 목적을 마음대로 주무를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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