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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일하는 사람이 덜 불행하다.

일이란 행복의 원인인가?, 불행의 원인인가? 하는 문제는 까다로운 것이다. 지나치게 따분한 일도 많이 있으며 지나치게 많은 일이 큰 고통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일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만 아니라면, 대부분 사람들은 상당히 재미없는 일이라 하더라도 빈둥거리는 것보다 덜 괴롭다고 생각한다. 일이 가진 첫 번째 장점은 하루종일 무엇을 할까 신경쓸 필요가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메워 준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는 여유가 주어지면, 오히려 즐거운 일이 없을까하고 고민한다. 남다른 독창성을 가진 사람이 아닌 한,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지시 받는다는 것은 상당히 기분 좋은 일이다.  물론 이것은 그 지시가 지나치게 불쾌해서는 안된다는 전제하에...

 

할 일 없는 부자 중에도 단조롭고 고된 일에서 벗어난 대신에 말할 수 없는 권태에 시달리는 사람이 많다. 부자 중에서도 영리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 처럼 열심히 일한다. 부유한 여성들은 수없이 많은 사소한 일들을 하느라 분주하게 살아간다. 권태의 예방책으로 가장 적절하고 바람직한 것은 일이다.  재미는 없지만 꼭 필요한 일을 하는 동안에 느끼는 권태는 하는 일 없이 허송세월 하는 사람이 느끼는 권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일이 있기 때문에 다가오는 휴일이 훨씬 더 달콤한 것이다. 원기를 잃을 정도로 힘든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아닌 한 일을 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자유시간에 대해 훨씬 많은 열정을 가지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보수를 받는 일이나, 보수가 없는 특정한 일이 가진 두 번째 장점은 성공을 이룰 기회와 희망을 달성할 기회가 열려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볼때 가사에 전념하는 여성들은 남성들이나 밖에서 일하는 여성들보다 훨씬 불행한 사람들이다. 가정에 묶인 아내는 임금을 받지도 못하고, 자기 자신을 향상시킬 방법도 없다. 대부분 일은 시간을 보낼 수 있고, 별 볼일 없는 야망이나마 배출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준다. 이런 만족감이 있기 때문에 지루한 일이나마 할 일이 있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에 비해서 대체적으로 더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일을 재미있게 만드는 주요 요소로 두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기술 발휘'고, 다른 하나는 '건설'이다. 남다른 기술을 익힌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가진 기술을 발휘하는데서 기쁨을 느낀다. 하지만 그 기술이 평범한 것으로 인식되거나 더 이상 자신의 기술을 향상시킬수 없게 되면, 기술을 발휘하는 것은 아무런 기쁨을 주지 못한다. 일이 즐거움을 줄 수 있으려면 그 기술을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거나, 끝없이 향상 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즐거움을 주는 일에는 건설이라는 또 하나의 요소가 있는데, 이것은 기술 발휘보다 훨씬 중요한 행복의 원천이다. 모든 일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일을 끝내고 나면 기념비적인 것이 세워지는 경우가 있다. 파괴적인 일을 할 때도 건설적인 일을 할 때와 마찬가지로 즐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파괴적인 일을 할 때 느끼는 기쁨은 건설적인 일을 할 때 느끼는 만족감을 따라갈 수는 없다.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건설적인 업무에서 성공을 거둔 끝에 느끼는 만족감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얻을 수 있는 큰 만족감 중의 하나다.

 

위대한 일을 종사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행복을 누린다고 말할 수 없다. 절실한 환경이 필요를 만들고 그 절실한 필요가 뭔가를 성취하게 한다. 현대 지식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 원인중 하나는 상당히 많은 지식인들 특히 문필에 재능있는 사람들이, 독자적으로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찾지 못하고 속물스런 경영자가 운영하는 회사에 고용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속물스런 경영자는 지식인들이 보기에 해롭고, 시시하기 짝이 없는 것들을 만들라고 강요한다. 몸담고 있는 회사의 정책이 옳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어 보면, 옳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 재능을 팔아,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목적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을 달래가며 하기 싫은 일을 마지못해 한다면,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냉소적인 태도를 가지게 되고 결국은 어떤 일을 하더라도 더 이상 뿌듯한 만족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보수가 많다는

이유로 노력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일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인가하는 관점에서 곰곰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자부심이 없는 사람은 결코 행복을 누릴 수 없고 자기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자부심을 가질 수 없다. 맡은 일을 주도적으로 하는 그리고 자기가 맡은 일이 쓸모가 있을 뿐 아니라, 상당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인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를 가지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양하게 나누어진다. 마땅히 그런 태도를 가져야 하며, 그런 태도를 가지고 만족하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인생은 일정한 방향성도 없고, 원칙도 없는 고립된 사건들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앞의 사람들이 후자에 비해 훨씬 쉽게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후자는 어떤 안식처도 찾지 못하고, 환경의 거센 풍파에 이리저리 떠밀려 다닐 뿐이다. 인생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태도는, 인간이 갖추어야 할 지혜와 침된 도덕의 근간이며

교육을 통해서 길러져야 할 덕목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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