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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좋은 부모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자녀의 부모에 대한 사랑은 행복의 가장 큰 원천 중의 하나이다. 하지만 요즘 부모와 자녀 관계는 대부분 양쪽 모두에게, 혹은 어느 한쪽에게 불행의 원천이 되고 있다. 가족은 원래 근원적인 만족을 줄 수 있는 것인데, 현대의 가족은 그러한 만족을 주지 못하고 현대인의 보편적인 불만족을 빚어내는 가장 뿌리 깊은 원인이 되고 있다. 옛날에는 독신 여성에게 주어진 견디기 힘든 생활 조건이 여성들을 결혼으로 몰아갔다. 독신 여성들은 경제적으로 가족에게 의존한 채 살아야 했다. 그들은 처음에는 아버지에게, 다음에는 그들을 성가시게 여기는 남자 형제들에게 의존해야 했다. 이들에게는 하루하루를 메워나갈 직업이 없었고, 집 울타리 밖에서 즐거움을 추구할 자유도 없었다. 현대 여성은  제대로 교육을 받은 여성이라면, 어렵지 않게 안락한 생활을 할만한 소득을 올릴 수 있고, 따라서 일일이 부모의 허락을 구할 필요가 없다.

 

요즘에는 전문직이고, 지성이나 매력이 평균 이하가 아닌 젊은 미혼 여성은 아주 즐겁게 살 수 있다. 물론 이것은 이 여성이 자녀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에 빠져들지 않는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다. 그러나 자녀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억누르지 못한다면, 이 여성은 결혼을 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거의 직업을 잃게 될 가능성이 많다. 그렇게 되면  이 여성이 누리는 안락함은 이미 몸에 베인 안락함과 비교하면 훨씬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이 여성은 이미 독립적인 생활을 누려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필수적인 지출에 필요한 돈을 타기 위해 남에게 손을 벌리는 것을 성가시다고 느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결혼에 뛰어드는 여성은 이전 세대의 여성들과 비교할 때 새롭고 엄청난 문제에 부딪치게된다. 그것은 가사노동 서비스의 양적, 질적 저하라는 문제다. 

 

자녀 양육도 큰 문제다. 여성은 엄청난 양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게 되고, 얼마가지 않아 모든 매력을 잃고 지성의 대부분을 잃게 된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력과 지성을 잃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운이 좋은 여자다. 꼭 해야만 일을 할 뿐인데도 이런 여성들은 남편에게는 따분한 아내, 자녀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에게 치러야 했던 여러 가지 희생들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게 되기 쉽다. 민주주의 이론이 보편적으로 확산 되면서 고분고분하게 굴던 노예들은 순종적인 태도를 버렸고, 이제까지 노예를 부리는 자신의 권리에 대해 전혀 의심을 갖지 않았던 주인들은 확신을 잃고 주저하게 되었다. 주인과 노예 생활에 마찰이 생기면서 양쪽 모두 불행해졌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의 변화도 민주주의가 보편적으로 확산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모들은 자신에게 자녀들의 의사를 막을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확신을 잃어버렸고, 자녀들은 부모의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점점 출산율이 줄어드고 있으며, 머지 않아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계에 이르렀다. 문명에 동화될수록 사람들의 출산이 낮아진다. 국가 구성원을 출산해야 하는 '공적인 의무가 있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앞으로 공적인 의무감에서 자녀를 낳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남녀가 만나 자녀를 낳는 것은 자녀가 자신들을 행복하게 해 줄 것이라고 믿고 있거나, 피임 방법을 모르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국가나 종교가 출산율이 계속 감소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오늘 날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인간의 본성만 놓고 본다면, 부모가 된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볼 때 인생이 제공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하고도 지속적인 행복이다. 환경 때문에 이러한 행복을 포가할 수 밖에 없는 남성이나 여성은 근본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에, 원인 모를 불만과 무기력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젊음이 지나간 뒤에는 더욱 그렇겠지만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곧 인생의 막을 내릴 고립된 개체가 아니라, 최초의 세포로부터 멀고 먼 미래로 이어지는 생명의 흐름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마음가짐이다.

 

유난히 인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들의 입장에서는 죽음이 곧 모든 것의 끝이다. 이들은 자신이 죽은 뒤에 오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이 없고, 그렇게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을 보잘 것 없고 무의미하게 여긴다. 하지만 자녀와 손자 손녀가 있고, 이들에게 자연스러운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의 입장을 보면, 후손들의 생명이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미래는 중요한 것이다. 자신의 삶을 넘어서 후손의 삶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먼 미래까지 관심을 확대시킬 수 있을 것이다. 가족의 기반을 이루는 것은 부모가 자녀에게 느끼는 특별한 사랑이다.  이 사랑은 부부가 서로에게 느끼는 사랑이나, 남의 아이에게 느끼는 사랑과는 전혀 다르다. 물론 자녀를 아예 사랑하지 않거나 인색한 사랑을 베푸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남의 자녀에 대해서도 자기 자녀와 마찬가지로 깊은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보면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이란 평범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자녀에 대해서만 느끼는 특별한 감정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가진 특별한 가치는 다른 어떤 사랑보다 믿을만한 사랑이라는데 있다. 친구는 당신이 가진 장점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고, 애인은 당신이 가진 매력 때문에 당신을 사랑한다. 당신이 가진 장점이나 매력이 줄면 친구와 애인은 모두가 떠나갈 것이다. 그러나 부모는 당신이 불행에 처했을 때에도 가장 큰 의지가 된다. 부모가 올바른 사람이라면, 부모는 당신 병들었을 때는 물론이고 치욕을 당했을 때도 큰 힘이 될 것이다. 우라는 다른 누구와 같이 있을 때보다 부모와 함께 있을 때 안점감을 느낀다. 부모의 사랑은 성공의 길을 가고 있는 동안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실패의 낭떠러지로 떨어졌을 경우에는,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위안과 안점감을 준다. 어떤 인간관계든지 어느 한쪽이 행복을 얻기는 쉬운 일이지만, 양쪽 모두 행복해지는 것은 힘든 일이다. 부모와 자녀의 관계에서 양쪽 모두 만족감을 얻으려면, 상대방의 인격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새로 태어난 생명은 무기력하므로 부모의 마음 속에는, 새 생명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이 충동은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만족시켜 줄 뿐 아니라, 부모의 권력욕까지 만족시켜 준다. 갓난 아이를 무기력한 존재로 여기면서 기울이는 사랑은 이기적인 것이다. 아주 이른 시기부터 자녀에 대해 권력을 행사하고 싶어하는 감정과 자녀의 행복을 바라는 욕구사이에서 갈등이 일어난다. 부모가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어느 정도 까지는 자연적 필요에 의해서 규정된 것이지만, 자녀는 되도록 빨리 되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그러나 부모의 권력욕은 이것에 대해 불쾌감을 느낀다. 이러한 갈등을 겪는 순간 부모는 자녀에게서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된다. 온갖 정성을 다해 키운 자식이 기대 했던 것과 전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보는 순간, 부모의 마음 속에는 억울하다는 생각이 솟구친다. 혼자서 밥을 먹을 수 있는 자녀에게 당신이 밥을 먹여준다고 하자. 당신은 그저 아이의 수고를 덜어주려고 한 행동이라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아이의 행복 보다 자신의 권력욕을 앞세우고 있는 것이다.

 

만일 당신의 자녀의 반응을 기대하면서 사랑을 과시한다면, 당신이 그런 행동을 하는 이유는 아이의 감정을 움직여서 아이를 당신 곁에 꼭 붙들어 매려는 욕망 때문일 것이다. 자녀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보다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부모라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렇게 하면 안되고 저렇게 해도 안된다'는 식의 정신분석학 교과서는 결코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관대한 태도는 언제 어디서나 필요한 것이지만, 무엇보다도 자녀와 관련해서 절실히 요구되는 태도다. 아이들이 무력하고, 덩치도 작고, 힘도 약해서 세속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얕잡아 보기 쉬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헌신적이란 말을 자주 듣는 어머니는 자녀들에 대해 유달리 이기적인 경우가 많다. 부모 노릇을 한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일부분일 뿐인데, 그것을 인생의 전부로 여긴다면 만족을 얻기 어렵고 또 만족하지 못하는 부모는 욕심 많은 부모가 되기 쉽다. 그러므로 어머니가 되었다고해서 다른 여러 가지 관심과 직업을 포기해서는 안되며, 그것이 어머니에게도 이롭고 자녀에게도 이롭다. 여성에게 어떻게 해야 아이를 제대로 돌보는 것인지 일깨워 주는 천부적인 본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지니치게 자식을 염려하는 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에 지나지 않는다. 어머니의 무지하고 감상적인 태도 때문에 심리적인 장애를 입는 아이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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