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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사랑

사람들이 열정을 잃게 되는 주요 원인중 하나는 자신이 사랑받지 못한다고 느끼는 데 있다. 반대로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은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열정을 크게 북돋워준다. 인간의 본성은 사랑을 조르지 않는 사람에게 가장 쉽게 사랑을 베푼다. 그러므로 친절한 행동을 대가로 사랑을 사려고 애쓰는 사람은, 은혜를 모르는 인간의 배은망덕을 경험하면서 환멸에 빠지게 된다. 사랑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소심한 절망에 빠져 가끔씩 질투와 적대감을 분출함으로써,  이런 절망감을 누그려뜨릴 뿐이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사람의 생활은 극단적으로 자기 중심적이다. 사랑받지 못하면 불안감을 느끼게 되는데, 그는 본능적으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철저하고 완전하게 지배하는 습관을 들인다. 자진해서 변함 없는 일과의 노예가 되는 태도는 대개 냉담한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대로 살아가며, 위험에 부딪히지 않으려는 믿음 때문이다.

 

높은 계곡에 걸린 좁은 외나무 다리를 걸어서 건너는 사람이 겁을 먹으면, 겁을 먹지 않을 때보다 떨어질 확률이 더 높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용감한 사람도 뜻하지 않은 재난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용감한 사람은, 겁많은 사람이라면 넋을 잃을 정도의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들을 아무런 어려움 없이 뚫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인생에 대한 일반적인 자신감은, 무엇보다도 자신이 필요로 하는 만큼 올바른 사랑을 받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때 생긴다. 물론 안정감은 호혜적인 사랑에서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정확히 구분하자면 안정감은 베푸는 사랑이 아니라, 받는 사랑에서 나온다. 엄격히 말하자면 사랑뿐만아니라 존경심도 안전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겁 많은 어머니는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난에 대해 조심해야한다고 아이들에게 끊임없이 경고한다. 이러한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것과 똑같은 소심함을 심어주고, 아이들이 어머니나 유모가 곁에 있지 않으면 안심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지나치게 자식을 독점하려는 어머니는 아이가 이러한 감정을 갖는 것을 좋아할 수도 있다. 이런 어머니는 아이가 세상에 대처하는 능력을 갖기 보다는 자신에게 의존하기를 바란다. 이런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아이는 결국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보다도 불행하게 되기 쉽다. 어릴 적에 형성된 정신적 태도는 평생동안 지속되기 마련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지나친 걱정은 자기 자신에 대한 지나친 걱정에 비해 크게 나을게 없다. 그것은 소유욕의 위장된 형태인 경우가 많다. 그런 태도가 의도하는 것은 두려움을 불러일으켜 상대방에 대한 보다 완전한 지배권을 획득하는데 있다. 이것은 남자들이 겁 많은 여자들을 좋아하는 이유중 하나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하는 과정에서 그 여자를 지배하는 것이다.

 

맑게 갠날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 배를 타고 항해하고 있는 사람은, 해안의 장관에 감탄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 이러한 즐거움은 오직 밖을 보는데서 나오는 것으로, 그 사람의 간절한 욕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한편 배가 난파되어 해안을 향해 헤엄쳐 가고 있는 사람은, 해안에 대해 새로운 애정을 느낄 것이다. 해안은 위험한 파도와 대비되는 안전한 곳으로 의미가 있기 때문에, 해안의 경치가 좋으냐 나쁘냐는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게 된다. 바람직한 사랑은 안전한 배에 탄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견줄 수 있고, 배가 난파 당해 헤엄치는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그보다 못한 사랑에 견줄수 있다.  첫 번째 사랑은 어떤 사람이 안정감을 느끼고 있거나,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위험에 대해서 무관심한 경우에만 가능한 사랑이다.  하지만 두 번째 사랑은 불안감에서 비롯된 사랑이다. 불안감으로 인한 사랑은 안정감으로 인한 사랑에 비해서 훨씬 주관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불안감을 느끼는 사람은 상대방을 본질적인 특성으로 평가하지 않고, 그 사람이 베푸는 봉사로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랑이 인생에서 어떤 중요한 역할도 하지 못하다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인 사랑은 이 두가지의 성격을 모두 함께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랑은, 서로를 단순히 자신의 행복에 도달하는 수단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결합체로 보는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에 이르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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