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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정복(버트런드 러셀 지음, 이순희

열정

 

모든 유형의 인간들이 건강한 식욕을 가진 사람을 멸시하고, 자신이 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배가 고파서 식사 를 하거나, 여러 가지 재미있는 볼거리와 신기한 경험을 찾아서 인생을 즐기는 태도를 천박하다고 여긴다. 그들은 득도를한듯 고고한 태도를 고수하면서, 자신이 경멸하는 사람들을 단순한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라고 멸시한다. 나는 이런 견해에 전혀 수긍할 수 없다. 내가 보기에 득도를 한듯한 행세야말로 큰 병이다.  축구관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축구 관람을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 그만큼 즐겁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책읽기를 싫어하는 사람에 비해 훨씬 더 즐겁다.  왜냐하면 책읽을 기회는 축구를 관람할 기회보다. 훨씬 많기 때문이다.  관심 분야가 많은 사람일수록 행복해질 기회는 그만큼 많아진다. 어떤 한가지를 잃는다고해도 다른 것에 의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은 모든 것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큼 길지 않다. 하지만 죽는 그날까지 인생을 채워줄 수 있을 만큼 많은 여러가지 대상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무수히 많은 사건들은 우리가 관심을 기울일 때만 비로소 경험이 된다. 우리는 관심을 끌지 못하는 사건들을 가지고 아무것도 만들 수 없다. 관심이 내면으로 쏠려 있는 사람은 자신의 관심에서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기 어렵다.  하지만 관심이 외부로 향하고 있는 사람은 한번씩 자신의 영혼으로 눈을 돌릴 때면, 자신의 내면이 대단히 다채롭고, 재미있는 종류의 원료를 분류하고 재결합하여 아름다운 혹은 발전적인 조합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우연히 손에 넣은 물건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의 인생은 결코 지루하지 않다. 시골길 걷는 사람들이 저마다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얼마나 다른지... 새에 관심이 있는 사람, 식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 토질에 관심이 있는 사람, 농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 그 밖의 여러사람이 있을 것이다.  어느 것 하나라도 그 사람의

관심을 끄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재미있는 것이다. 다른 조건들이 모두 비슷할 경우 이렇게 어느 것 하나라도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것에도 관심이 전혀 없는 사람에 비해 훨씬 성공적으로 세상에 적응할 수 있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 알아내는 것은 저마다 다르다. 또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느끼는 감정도 각각 다르다.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해서 지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며, 특별히 좋지 않은 감정을 느낄 이유가 없는한 자신이 만나는 사람들에 대해 따뜻한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누가 어떤 것에 흥미를 가질지 미리 짐작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것에 열정적인 흥미를 가질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것에 대한 관심이 생기는 순간 인생은 권태에서 벗어나게 된다. 술이나 여자를 지나치게 밝히는 사람들도 중용을 모르는 열정의 위험을 부여주는 사례다. 술과 여자 문제에서 가져야 할 원칙은 너무나 분명하다. 어떤 것에 대한 취미나 욕망은 모두 전체적인 인생의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취미와 욕망을 통해서 행복을 얻으려면, 그 취미와 욕망은 건강과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정 그리고 사회적 명예를 해치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런 한계를 넘어서지 않고도 마음껏 빠져들수 있는 욕망이 있는가 하며 그렇지 않는 열정도 있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만일 그가 자신의 재산만으로 살 수 있는 독신자라면, 바둑에 대한 열정을 제한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처자식이 있고 충분한 재산도 없는 사람이라면, 바둑에 대한 열정을 엄격히 제한해야 할 것이다. 사회적인 속박이 없는 사람이라고해도, 술이나 여자를 지나치게 밝히는 것은 자기 몸을 아껴야 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어리석은 행위다. 지나친 탐닉은 건강을 해치고, 찰나의 쾌락을 즐긴 대가로 오랜 불행을 겪게 만든다. 어떤 열정이 불행의 원천이 되지 않기 위해서 결코 도를 넘어서는 안될 몇가지 요소들이 있다. 그것은 바로 건강을 유지하는 것, 자신의 능력을 전체적으로 유지하는 것, 생계유지에 충분한 소득을 유지하는 것, 처자식에 대한 의무 같은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임무를 완수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버리고 바둑에 매달리는 사람은 본질적으로 보면 알콜 중독과 똑 같이 위험하다. 물론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야 한다고 정당화 할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고귀한 행동도 있다. 비록 처자식이 거지로 살아간다해도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을 비난할 수 없다. 과학적 발견이나 발명을 위해서 연구에 종사하는 사람이 그 노력의 대가로 마침내 성공의 영광을 안게되었다면, 비록 가족이 가난에 시달렸다하더라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은 극단적인 좌절에 빠지지 않는 한 외부세계에 대한 자연스러운 흥미를 유지할 것이며, 흥미를 유지하는 한은 자유가 부당하게 침해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인생은 즐거운 것이라고 할 것이다. 우리 삶에는 반드시 자유가 필요하다. 문명화된 사회 속에서 열정을 잃게 되는 주된 원인은 바로 자유에 대한 제한이다. 동물들은 배고프면 사냥을 나간다. 이것은 직접적인 충동에 순종하는 것이다. 아침마다 일정한 시간에 일하러 나서는 사람들도 근본적으로 같은 충동에 의해서 움직인다. 생계를 유지하고자 하는 욕망이 바로 그것이다. 막 출근길에 나선 사람은 방금 아침을 먹었기 때문에 배가 고프지 않다. 그러나 배가 고파질 것을 알고 있고 직장에 나가는 것은 앞으로 맞게될 허기를 충족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도 알고 있다. 문명인은 삶의 모든 순간마다 충동을 억제해야 하는 상황에 구속된다. 다른 사람에게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생존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어려서는 학교에서, 어른이 되어서는 직장에서 내내 자유의 제한을 받는다. 결국 열정이 유지되기 어렵다. 이런 지속적인 제한들이 피로와 권태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능적인 상당 부분을 억제하지 못할 경우 문명 사회는 유지될 수 없다. 열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작업에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보다 많은 양의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런 에너지를 얻으려면 심리적 기능이 원만하게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여성이 남성에 대해서 솔직하게 관심 표현을 하거나, 남들 앞에서 자니치게 활발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져 왔다. 남성에 대한 관심 없는 태도롤 몸에 익히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모든 일에 대한 관심을 잃거나, 기껏해야 특정 종류의 바른 행동을 제외하고는 다른 어떤 일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다. 여성들은 자신이 남들과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자랑으로 이야기한다. 다시말하면 여성은 남에게 관심없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물론 이것은 여성들 탓이 아니다. 여성들은 수백년 동안 통용되어 온 여성과 관련된 도덕 교육을 감수해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여성들은 애석하게도 억압 체제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억압체제가 부당하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이런 여성들은 엄격한 것은 다 옳고, 너그러운 것은 다 나쁘다고 여긴다. 이런 여성들은 사람들과의 교제에서는 기쁨을 감소시키는 방향으로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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